죽어 가고 있는 시인이 있다. 아내가 죽은 뒤 그의 인생은 빛을 잃었지만 그는 그것을 애써 외면한다. 아내의 원망을 사면서까지  집착했던 책과 글자에의 열정이 자신의 인생에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죽은 천재 시인의 미완성 시를 완성시킨다면서  "흩어진 시어"를 모으던 그는 그것으로써 자신이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과연 그런 거짓과 거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시간앞에선 그저 힘을 잃게 마련 아니겠는가.


환상처럼, 마치 꿈을 꾸듯,  죽은 아내가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이라고 말했던 과거의 그 날로 걸어 들어가게 된 그는 비로서 그날이 자신에게도 최고의 날이었음을 알게 된다. 앎에의 동경, 책에의 집착, 정신 세계에 몰두하느라 외면했던 아내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그는 인생에서 남는 것은 사랑뿐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곤 평생토록 그가 그렇게 간절히 찾아 헤매던 시어들이 실은 정신 속에서가 아니라 사랑속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그를 보는 아내는 환희에 젖은 목소리로 말한다. 

" 당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 라고... 그렇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바보 미련 곰탱이 같은 고집스런 남편이 언젠가는 진실을 직시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 날은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남편을 만나게 된 아내는  " 내일이 뭐지?" 라고 묻는 남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 내일은 영원과 하루 " 라고.


우리가 지나온 과거는 영원이며 내일은 그에 더해진 하루일뿐이다. 평생 찾고 갈구하던 시어를 마침내 얻게 된 시인은 이제 자신이 홀가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깨달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철학적이고, 다분히 몽환적이며, 그리스다운--어쩌면 감독 자신만의 정서일지도 모르지만서도,---정서가 듬쁙 담겨 있던 영화였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저런 세상도 있겠구나 싶은, 상상속이지만 너무도 실재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영상들이었다. 그 영상속을 묵묵히 걸어다니는 배우들의 아우라는 또 얼마나 근사하던지... 그런 분위기며, 느낌들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전혀 이물감없이 연기해 내는 걸 보곤 넋을 잃고 바라봤다. 너무 아름다워서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기다린 시간들은 진실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는 시인의 말에 동감한다. 우리가 거만을 떨면서 아는 척 하며 내뱉는 그 지식이란 것들은 사실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냐. 우리가 가진 감정이나 진실에 비하면 말이다. 그것들이 아무리 비루한 것이라 해도, 실은 거창한 이데올로기보다 값진 것이 아니던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겪고, 그리고 인생의 끝에 다다라서야, 평생 자신이 찾고 있었던 것이 실은 아내가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이 고독한 노 시인을 어쩌면 좋을까 싶었다. 보다 나은 영광이, 영감과 깨달음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채근하며 살아왔지만 실은 그런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건 얼마나 허무한 일이겠는가. 하긴 자신의 인생의 빛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리고 없다는 것을 , 자신은 그저 그 추억속을 거닐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도 깨달음은 깨달음이겠으나... 아마도 이 시인에겐 그것이 위안은 될 지언정, 그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어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손 안에 있을땐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뒤에야 비로서 그 가치를 알게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영화는 한없이 느리게 흐르고, 직설적이지 못한 감독의 완곡 어법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갑갑함을 느낄만큼 미묘하다. 거기에 그리스란 나라의 문학적 특성이려나? 형이 상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어렵게 풀어 나가려 한 흔적이 뚜렷하다. 한마디로 전혀 친절하지 못한 영화다.

늙은 시인을 둘러싼 짙은 고독과 외로움, 그에 대비해 그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아내가 등장할 때의 따스함을 보여주면서 인생의 가장 좋은 때는 사랑할 때라고, 그것을 놓치지 말라고 말을 하는 듯 보였지만서도, 글쎄... 과연 이 영화를 보면서 그의 말에 귀 기울일 인간들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알고보면 다들 그 시인같은 실수를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게 아니겠는가. 사랑을 외치면서도 실은 자신만 생각하면서 보내는 인생 말이다.

그래, 우린 언제나 너무도 쉽게 사랑을 놓치고, 사랑하며 살라는 말을 흘려 듣곤 하지. 마치 언제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실현될 수 있다는 듯이 줄창 내일만을 기약한다. 그리곤 그런 날은 오지않는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닫곤 말지. 어리석은가? 맞다. 어리석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다. 


영화속의 시인은 말한다. "난 그때 사랑하는 법을 몰랐어." 라고. 그건 아마 그만의 회한은 아닐 것이다. 죽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우리 모두의 뒤늦은 후회이 아니닐런지...안타깝지만, 우린 그렇게  뒤늦게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 만년 늦깍이 사랑꾼들에 불과하니 말이다.


<추신> 집에서 누워서 볼 수 있었던 것에 무한히 감사를 하며 본 영화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평이 이보단 험악해졌을 것이 분명한 영화여서...다시 말해 조금 지루하다. 아니 굉장히 지루하던가? 그래도 영상미가 아름다워서 보긴 했지만서도, 요즘의 속도감에 비하면 아주 아주 느린다는걸 감안하시고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