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타르 (이란등 중앙 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류트족 발현 악기) 아티스트인 나세르 알리는 새로운 타르를 장만하려 거리에 나왔다가 옛 애인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불러보는 나세르와 달리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쓸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악기점에 들른 나세르를 맘에 드는 타르가 없자 속이 탄다. 이것 저것 명품이라는 것을 모조리 타보지만,  그때마다 알게 되는 것은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도 그의 스승이 물려준 그의 타르만한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귀한 것인지 모르는 아내는 남편이 애지중지 한다는 이유로 부부싸움 끝에 타르를 부셔 버렸고, 그런 연유로 그가 지금 악기상을 돌아다니면서 타르를 구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마음에 든 타르를 구하지 못한 나세르를 자신이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되었는가 한없이 울적해진다. 사랑하던 여인과 결혼하려 했던 그는 딴따라라는 이유로 결혼이 성사되지 못한다. 오매불망 그녀를 잊지 못하던 그에게 그를 짝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났고, 초등학교 교사라는 이유로, 그리고 결혼은 얼굴보단 성격이 좋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제 네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이 이렇게 풀려나간 것에 대해 불만이 크다. 자신의 음악을 이해 못하는 아내와 맨날 타르만 타는 남편이 지겨운 아내, 둘의 충돌은 어쩜 불가피했을 것이다. 곰곰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던 나세르를 이제 그만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과연 그는 자살에 성공할 것인가? 그의 자살을 막아줄 것은 정녕 없을 것인가?


50년대 이란의 사회를 배경으로, 민감한 예술성을 지닌 남자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만화다. <페르세폴리스>의 작가인 마르잔 사트라피 답게 냉소적이고 건조한 톤으로, 현실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사상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한 남자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는 과정들이 설득력있게 펼쳐지고 있었다. 사랑보단 생존이, 예술성보단 보편성이 덕목인 사회에선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 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 했다.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적어도 그가 주장하는 바나 재능이 그렇게 천대를 받지는 않았으련만,  이란이란 사회에선 그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반향도 불러내지 못하는걸 보면서 말이다. 해서 민감함과 감수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이방인에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아아 했던 나세르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전체주의라는 사회에선 그가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극단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그가 속상한 마음에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었다. 사실 알고 보면 그는 조금의 인정과 조금의 이해를 바란 것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아마도 마르잔 사트라피는 과거의 답답한 이란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했던 한 인간을 보여줌으로써, 보다 개방된 사회,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나와 다름을 이해하는 사회의 장점을 설파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것들이 가능한 사회였다면 나세르가 자살을 결심할 이유가 없었을테니 말이다. 결론은,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인간에게 덜 고통스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고민을 해야 하는게 아닐까 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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