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며 거칠 것 없이 살던 여행가 에바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정착을 하게 된다. 임신 자체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그녀는 아들 케빈을 낳았음에도 여전히 기쁘지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낳지 않는 건데 라는 표정으로 넋이 나간 에바는 아이를 안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다. 후회가 되지만 어쩌랴. 이미 낳아버린 것을, 실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엄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려 한 에바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들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한다. 미치고 팔짝 뛰겠는 것은 녀석이 아빠에게만 안기면 조용해 진다는 것, 해서 아무리 에바가 힘들다고 호소를 해도 남편은 믿질 않는다. 아내가 과장을 한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한번 아내의 의견을 무시하고 도시 외곽의 멋진 집으로 이사를 한다. 한번 뿐인 아들의 어린 시절을 잘 보내게 해주고 싶다면서...성같이 널찍한 집에 케빈과 둘만 남겨진 에바는 본격적인 시련을 겪게 된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어긋나기만 하는 모자 관계는 에바가 아이의 팔을 부러뜨리는 사건을 계기로 한층 더 힘들게 꼬여간다. 미묘하게 자신을 고문하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에바는 병원에도 가보지만 의사의 대답은 케빈이 지극히 정상아라는 것. 엄마이기에 희망을 버리지 못하던 에바는 둘째로 딸 실리아가 생긴 뒤로 엄마 노릇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다. 실리아는 조금도 어렵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스러움도 케빈에겐 통하지 않는다. 오빠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여전히 오빠를 좋아하는 실리아를 바라보는 에바의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케빈이 실리아의 애완동물을 죽인 뒤 사고를 위장해 실리아의 눈까지 멀게 만들자 에바는 억장이 무너진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케빈의 소행이라는 에바의 말에 남편은 오히려 아내의 정신병을 의심한다. 결국 에바는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이혼이 성사되기 전, 케빈의 16번째 생일을 앞두고 결국 그녀를 평생토록 얼 빠지게 할 사건이 벌어지고 마는데....




< 사탄의 아들같은 케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에바, 아들과 함께 있는 에바의 표정은 늘 저렇게 심각하다.>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이여야 하는 오빠와 여동생 사이. 누가 이런 장면을 보면서 이 오빠가 여동생의 눈을 염산으로 녹이고, 조만간 화살로 쏘아 죽일 거라 짐작하겠는가. 죽임을 당하는 본인조차 믿기 어려웠을 듯....>



<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놀라서 달려간 에바는 소방관이 문을 따는 장면을 보고 그것이 아들의 소행임을 알게 된다. 이 영화 내내 에바역의 틸다 스윈톤은 섬뜩하거나 얼이 빠지거나 넋이 나가는 등의 다양한 표정들을 보여주는데, 표정만으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추측하게 하는 것이 압권이다. 그녀의 표정 자체가 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였는데, 그 자체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일등 공신이었다.>


 상황이 하도 심각하다 보니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던 영화였다. <오멘>의 현대적인 버전이라고 할까. 생각해보니 과거엔 그런 아이의 존재를 악마의 소행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지금엔 심리학 용어로 <싸이코패스>라고 카테고리화 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적어도 더이상은 미지의 영역이나 설명 불가한 영역은 아니라는 점에서 발전한 거라고 봐도 좋겠다. 물론, 싸이코패스에 대한 설명이 완전하게 충족되게 나와 있는 것은 아니라, 그들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진 못하지만서도,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와있는 싸이코패스에 대한 설명을 이 영화에 대입해 보면...


1. 우선 싸이코 패스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는 없다고 한다. 그들이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은 절대 알아챌 수 없다고. 이 영화에서 엄마인 에바 외엔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모르는 것도 그때문이다. 에바가 자신의 아들이 이상하다는걸 아는 것도 그녀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아들인 케빈이 엄마가 그걸 알아 차리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선 안 나오던데, 원작인 책에서는 왜 자신은 죽이지 않았냐는 에바의 질문에 케빈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관객이 하나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냐고...너는 내가 직접 고른 관객이라고 말이다.

2. 케빈이 그렇게 된 것이 에바의 모성애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던데, 내가 보기엔 그렇진 않은 듯하다. 에바의 모성애가 문제였다면, 둘째인 실리아와도 문제가 생겼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에바는 딸과 정말 잘 지낸다. 보통 모녀들처럼...에바가 끊임없이 아들에게 접근함에도 그녀가 퉁겨져 나가는 것은, 그녀의 모성애 문제가 아니라 케빈이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얗게 질려 가면서도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이 괴물을 자신이 낳았다는 자책감 때문이지, 그런 아들로 길러냈다는 것에 대한 점은 아닐 것이라 본다.

3. 에바가 왜 아들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는지, 그리고 케빈 때문에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박해를 꼬박꼬박 당해주는지 처음엔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녀는 피하지 않는 것일까? 알고보면 그녀 역시 피해자 아닌가. 사람들은 그녀가 잘못 키워서 아들이 그모양 그꼴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녀는 잘 키우려 노력했음에도 어쩔 수 없었던 것 뿐이다. 그런데도 왜 그녀는 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일까?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는 아들때문에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건 자신도 케빈때문에 자식을 잃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었겠나 싶다. 어린 딸이 아들에게 고문을 당한다는걸 알면서도 에바는 막지 못했다. 설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이함이 딸의 죽음을 초래했고, 그래서 그녀는 아는 것이 아니었을까. 죽은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불가하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내가 케빈의 엄마가 아니라면 나 역시도 케빈의 엄마에게 그렇게 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한게 아니었을까. 해서 그녀는 실리아의 엄마로써, 케빈의 엄마에게 복수를 하고 있던게 아니었을 런지...직장을 구한 안도감 때문에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거리를 걷다가 그녀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한대 얻어 맞는다. 이를 목격한 다른 행인이 그녀에게 고소를 할 거냐고 묻자 에바는 대꾸한다. 아니라고, 이건 내 잘못이라고...참으로 마음 찢어지는 자백이다. 아무리 그게 이성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녀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딸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게 아들일 리는 절대 없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안타까운 현실 아닌가. 진짜로 미안해야 할 사람이 전혀 미안해하지 않기에 그걸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져야 한다는 건 말이다. 아마도 그게 싸이코패스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비극이겠지.

4. 왜 에바는 케빈을 기다리는 것일까? 혹시나 그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래 보인다. 그래서 조금 갑갑도 했다.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고쳐질 수 없는 것을 고쳐보려 다시 한번 애를 쓴다는 생각때문에...사실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했었다. 본인이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럼에도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은 기 죽은 아들을 보면서 언젠가, 아들을 정상인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붙잡는 그녀를 보자니 짠했다. 과연 엄마라는 짐은 그렇게 무거워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그녀에게 그 짐을 내려놔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 없으려나? 엄마라는 이유로 얼마나 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내야 하는 것일까. 영원히?


수작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고, 화면을 꽉 채우는 색들로 비극성을 암시하는 미쟝센들도 압권이었다. 그다지 잔인하다 할만한 직접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암시만으로 토할 것 같은 상황들을 잘 포착해 내주고 있었다. 특히나 주인공 에바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도래한 비극을 상징하는 빨간색은 반복적으로 나타남에도 나올때마다 충격적이었다. 주인공의 하얀 피부에 매치되어서 그 비극성이 한층 더 두드려졌던 듯. 다만 보고 나면 찝찝하거나,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그다지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점은 각오 하셔야 할 것이다. 미국 콜럼바인 사태의 전말을 보는 듯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싸이코 패스에 대한 보고서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싶다. 그래, 당신들은 말할 것이다. 엄마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라고...아니, 막아야 했어라고. 아니, 안타깝게도 그 엄마는 막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걸 명백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헛점이 아닐까 한다. 무언가 희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한 점 말이다. 실은 그렇지 못한데, 왜 우리는 엄마들에게 그렇게 많은 짐을 지우려고만 하는지...엄마는, 그리고 가족은 절대 전능이 아닌데 말이다. 그점을 놓쳐버린 연출이 살짝 아쉬웠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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