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십니까 ?""아뇨, 제가 볼겁니다." 그리곤 늙고 행색이 초라해져 회색 인간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서점 점원을 향해 --정확히는 카메라를 향해--자랑스레 얼굴을 든다. 감동을 억누르고 있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엔 착한 눈망울들이 영롱하게 빛이 난다. 그렇다. 누군가는 그가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었다. 그에겐 그것으로 된 것이다.>

 

한창 잘나가고 있는 정보 요원이 반체제 작가 부부의 삶을 도청하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속에 "착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란 책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제목으로도 적격이지 싶다. 왜냐면 착한 사람들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비록 시대를 잘못 만나 착한 삶을 살 수 없었지만서도 말이다.


이 세상엔 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 안다. 착한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역시 비슷하게 많고. 하긴 나 역시도 헷갈릴 때가 많으니 남 말을 해서 뭐하랴만은. 그럴 때 내가 참고하게 되는 것은  바로" 타인의 삶"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참고하지 않으면 내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삶을 주시하지 않는다면 난 결코 나아지는 일 없이 살다 죽을 것이다. 그것만큼 황량한 삶이 또 있을까?


이 영화는 굳건한 사랑과 양심과 내면의 소리를 쫓아가려 용기를 내는 작가부부를 염탐하다 동화되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황량한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개략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선의를 위해 기록을 조작하는 정보 요원이라. 영화 중반까지는 과연 이런 일들이 실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체제에  쉽게 비판 없이 순응해 버렸던 동독인들을 위한 위안 섞인 환타지란 생각에 이런 미담을 만들어내야만 했던 그들이 안스럽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주인공의 눈망울을 보면서 그런 냉소적인 생각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그 누가 알아 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알고 있다면 충분히 선하게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주인공은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눈망울들이 내가 살아온 궤적들을 보여주지 않겠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실패자의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는 절대 실패자가 아니었으니, 그 자신이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인생이라 할 수 있는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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