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단을 통고받고도 그다지 상심하지 않는 하루코는 만화가다.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고 있는 그녀를 부추겨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남편, " 하루상은 만화만 그려, 뒷바라지는 내가 할게" 란 말로 프로포즈를 대신한 그와 결혼한 지 이제 5년째, 둘은 이구아나를 키우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츠레가 (남편을 지칭) 우울증에 걸려 비틀대기 전까진 말이다.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한 성격에 성실함과 책임감 빼면 시체인 츠레는 일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다. 점점 좀비처럼 되가는 츠레를 보다 못한 하루코는 폭탄 선언을 한다. 회사를 그만 두던지, 이혼을 하던지 양자택일 하라고...이에 기쁜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둔 츠레는 환자로써의 일상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년 남자라면, 더군다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라면 절대 놀아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뼈 속 깊이 박혀있던 츠레는 백수 생활이 영 어색하다. 집에서도 경직된 자세로 긴장을 풀지 못하는 츠레를 보곤 하루코는 가르치기 시작한다. 낮잠을 자는건 죄악이 아니라고, 어른에게도 방학은 필요하다고, 휴식을 숙제처럼 생각하라고...자신이 하루코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날마다 면목 없어 하던 츠레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 보는 하루코 덕분인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사는 우울증은 재발이 쉬운 병이라면서 좋아질때를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츠레는 과연 이 심각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루코는 골동품상 아저씨로부터 이 작은 병이라도 금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란 말을 듣게 된다. 츠레에게 금이 가지 말아 달라고,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라고 부탁을 한다.




회사에 사표를 내러 가는 날, 츠레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 위해 책임감을 내려놓기로 결심 한다. 자신을 누르고 있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그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게 보인다. 출근길에 집을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머리가 괜찮냐고 아내에게 물어보는 츠레, 이 장면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가 그간 자신의 외양조차 체크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츠레가  드디어 자기 자신을 돌보려는 마음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




남자라면 낮잠을 자선 안 된다고 울먹이는 츠레에게 하루코는 낮잠을 자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차라리 아무런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이 되고 싶다는 츠레의 말에 하루코는 그러면 인간의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쉬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던 이 소심남은 하루코 덕분에 조금씩 긴장을 풀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녀처럼 이해심이 많지는 않았는데...




면목이 없다고, 이불을 둘러쓰고 울고 있는 츠레, 그를 보고 하루코는 <츠레가 거북이가 되었다>고 그린다.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 집에서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형이 찾아와 기운을 내라고, 자신도 쉬고 싶지만 아들을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다면서 너도 그러라고 충고한다. 츠레는 " 무엇을 해야 힘이 나는 거야, 지금의 나라면 무리야, 형님 같이 어떤 것에 힘을 낼 수 없" 다면서 펑펑 운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한숨짓는 하루코, 그녀는 생각한다. " 조용히 지켜봐 달라는데, 왜 더러운 발로 발을 디디는 것일까?" 라고...우울증이나 그 외 다른 환자들을 간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익숙한 광경이 아닐까 한다. 단지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이런 저런 말을 해대는데, 실은 그것이 연못에 사는 개구리에게 던지는 돌이 되기도 한다. 아무 생각없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울증 환자들이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울증 자체가 그들의 손과 발을 묶어 놓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힘을 내고 싶어도 손발이 움직이지 않는 다는 뜻. 무기력과 그에 동반되는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없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라는 것에 미치게 된다. 이것이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다. 그들이 자살하는 것은 절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논리론 사랑하기 때문에, 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혼 동창생을 만난 하루코는 그녀가 이혼을 하느라 지쳤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제 힘 내겠다는 그녀의 말에 하루코는 말한다. 힘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괴로웠으니 힘내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까지로도 괜찮은거라고 말해 준다. 자신도 힘내지 않겠다고. 괴로워서 큰일이지만, 힘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이다...일본 드라마를 보게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간바레' 즉 힘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말에 파이팅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까. 힘을 내야 한다고, 발전하고 진보하며, 뒤지면 안 된다고, 더 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는 세상에 맞서 하루코는 말한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왜냐면 살아있으니까...그리고 이제까지 충분히 힘냈었으니까. 때론 뒤로 물러서 백기를 드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임을, 하루코는 알아버린 것이다.




하~ 츠레 드디어 웃음을 찾다. 이렇게 선하고 해맑은 사람이, 직장 생활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런 병에 걸렸을까 생각하게 하던 장면. 거북이와 눈이 맞았는데 귀엽다면서 오도방정 떨고 있는 중이다. 하루코는 <거북이가 거북이를 키우면 어쩌자는 거야?> 라고 불평하면서도, 기꺼이 새로운 가족으로 거북이를 데려 온다.




<츠레가 우울증에 걸렸으니 일을 주세요! > 예전에 만화를 연재했던 출판사에 간 하루코는 자신의 그림이 별로 인기가 없다는 말에 편집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곤 깨닫는다. 자신이 츠레의 우울증을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도 그것을 부끄러워 했기 때문이라고. 남들이 우울증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 였던 것이다. 드디어 입밖으로 그 사실을 말한 하루코는 자기 자신을 대견해 한다. 더이상 자신의 남편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그리고 그녀의 이 말은 상황을 전환시키는 한마디가 된다. 일도 얻고, 하루코 자신이 이 그림을 책으로 내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언제나 그림 그릴 것이 없다고 불평하던 하루코는 자신 가까이에 그리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을 줄은...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츠레와 자신이 겪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려 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책은 우울증환자와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찬사를 받게 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곡절을 통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좋다는 말에 보긴 했는데 이렇게 잘 만들었을 줄은 몰랐다. 일단 우울증에 대한 보고가 완벽하다. 왜 그들이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지, 증상은 어떠한지, 그들이 가장 괴로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고 있었다. 일 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우울증은 그걸 인정한다는 자체가 사회에서의 도태를 의미한다. 우울증 자체로는 그다지 고통이 없다고 해도 자살률이 그렇게 높은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당장 그들을 무가치한, 잉여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해서 여기에 나오는 츠레처럼 책임감이 절어 사는 사람들은 탈출할 구멍을 찾지 못한다. 진퇴 양난의 처지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우울증에 걸려본 적이 없는 하루코가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다, 결국엔 그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건 츠레를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루코와 츠레를 통해 부부의 힘을 보게 되었는데,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아니라면 그런 시련을 헤치고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살이라고 단정하고, 무책임하다고 일갈하고, 왜 너의 짐을 나에게 지우냐고 비난하면서 서로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이 부부는 용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더라. 그걸 잘 피해가는 하루코의 유연함과 인간미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아마도 그런점들이 읽혀졌기에 그녀의 책이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것일테지 싶다. 현대판 열녀라고 할만한 우화이자,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일화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탄탄한 극본 외에도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이 영화를 보니 미야자키 아오이가 왜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이해가 가더라. 어쩜 연기를 그리도 정감나게 하던지...어린 나이에 하는 연기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밉상인 캐릭터라도 그녀가 연기를 하면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 듯했다. 거기에 사카이 마사토는 또 어떤가. 예전부터 좋아한 배우였는데, 이 영화를 통해 더 좋아하게 됐다. 우울증 환자의 다양한 내면 연기를 어찌나 귀엽고 탁월하게 해내던지...그간 무표정하다고 불평했던 것들을 이번에 다 취소하기로 했다. 배우들이 연기도 잘하긴 했지만 특히나 드라마의 주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연기를 한 듯해서 고맙기 그지 없었다. 그들도 아는 듯했다. 이런 영화 하나가 사람들의 인식을 많이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선 이런 이해들이 꼭,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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