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떼거지로 놀던 중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막대기로 후려치고 만다, 맞은 아이의 이가 두개나 나갔으니 부모 입장에선 대형 사고다. 때린 아이를 잡아다 실컷 두들겨 패도 시원찮을 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질 않는가. 배울만치 배운 우리들은 그 정도의 사건은 또래 소년들 사이에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걸 이해한다. 해서, 뉴욕 중산층을 대표하는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벌여놓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지극히 점잖고, 서로를 이해하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공기중에 떠돈다. 때린 아이의 부모는 자기 자식의 망나니 짓에 경악을 했다고 토로하고, 맞은 아이의 부모는 자신들도 얼마든지 가해자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고 맞장구를 친다. 철모르는 아이들이 벌인 일이지만, 철이 든 자신들은 지성적으로 해결해 보자고 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런데 이 부부들, 어째 분위기가 점점 수상쩍어진다. 변호사인 가해자의 아빠 앨런 코윈은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제끼느라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 놓고, 그런 남편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아내 낸시는 몸이 안 좋다고 하더니 남의 집 거실에서 토하고 만다. 이보다 더 가관인 것은 피해자의 엄마인 페넬로페다. 처음 안경을 끼고 컴푸터 자판을 두들기면서 명랑하게 사건을 정리할 때부터 심상찮던 그녀, 모든 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너그럽고 지적이며 우아하고 세계평화에 일조를 하려 노력중인지 알리지 못해 안달이 나있던 그녀는 가해자 부모의 작태에 비난을 퍼붓더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무능하고 착하기만 한 남편 마이클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이에 허허실실 좋은게 좋다는 표정으로 웃기만 하던 마이클은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아내를 코윈 부부 앞에서 까발리고 마는데...가겠다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다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다시 마이클의 집으로 끌려 들어가는 코윈 부부, 매번 다시 들어갈때마다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기만 하는데, 과연 이 소동의 끝은 어찌 될까나?


재밌을 거라는 생각에 봤는데, 결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인가 그다지 재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커풀이라면 공감의 웃음을 지으며 볼 것이라고 하던데, 글쎄...내가 위선적인 아내나 늘상 핸드폰을 손에 쥐고 놓지 않은 남편과 살아 본 적이 없어서인가, 남의 집 거실에서 신나게 싸워 대던 그들의 말싸움이 흥미진진하단 생각이 들지 않더라. 잘 모르겠다. 내가 결혼 생활을 해봤더라면 그들의 짜증이 정말 내 일처럼 느껴졌을런지. 공감이 안 되서인가, 싸움이 번지는 과정들도 자연스럽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저런 장치들을 끼워넣은듯해서 억지스러웠다. 더군다나 그들의 유치한 말장난이라니... 서로를 힐난하는 말들도 그닥 와닿지 않았다. 남의 집 안방에서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부부들이라.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에 거쳐야 하는 과정인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었다. 물론 네 배우들의 연기는 기가 막혔고,( 가장 인상적인 배우를 꼽으라면 앨런 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 )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모인 지적이고 우아한 중산층 부부들이 결국 자신의 모든 가면들을 벗어던지고 발악을 해대는 모습이 가관이긴 했다. 특히나 페넬로페의 변신은 그야말로 눈이 부셔서, 영화가 끝날 쯤이 되니 그보다 가증스러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얄밉더라. 또 그런 페넬로페의 가식과 위선에 꼬박꼬박 비아냥을 대던 앨런은 얼마나 영웅적으로 보이던지...영화가 시작될 때에는 가장 짜증나고 속물적인 사람이 앨런 같아 보였는데, 끝날때쯤 되니 가장 인간적이여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그라는건 정말로 아이러니했다. 특히 제인 폰다 같은 여자를 보면 당장 뛰쳐나가 AAA에 가입하고 싶어진다고 하는 그의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내가 유일하게 박장대소한 장면) 그래, 이렇게 털어놓자니 좀 뻘쭘하긴 하지만서도, 그런 여자들의 열성이 지나치게 느껴지는게 사실이지 않나.  워낙 정당하고 올바른 명분을 외쳐대니 뭐라 말은 못하지만서도, 반발심이 들게 하긴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어쨌거나, 사람은 절대 겉모습이나 행동 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 내리막길을 줄창 걸어가는 부부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영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어떻게 그 갈등을 봉합하려나 궁금하기도 했던 영화가 되겠다. 결론은? 아쉽게도 거기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 누구도 그 답을 내려주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가 마무리가 갑작스럽다. 마치 어떻게 종결을 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몰라서 그냥 끝내 버린 듯이. 어쩜 바로 그걸 노렸는가는 모르겠으나 왠지 더 있는데 그만 둔 듯한 기분이 들어 어정쩡했다. 연극을 원작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원작에선 그렇게 끝이 나나 보다. 연극에선 그렇게 끝이 나도 암전으로 끝을 알려주니 여운처럼 느껴질 수 있었겠으나, 영화속에선 그게 잘 먹히지 않았다. 아니 이게 다야? 맥없이 이렇게 끝나는 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다만 마지막 장면은 블랙코미디 답더라. 소동을 일으킨 주역들이 부모들과는 달리 잘 지내고 있다는 것 말이다. 이미 벌써 사건을 몽땅 잊어버리고 친구가 되어 있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혹 모르지, 이들 부부도 나중에는 각자가 친구가 될지도...남편은 남편들끼리, 아내는 아내들끼리 말이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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