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 텃밭 옆 작은 통나무집 88세, 85세 노부부 이야기
츠바타 슈이치.츠바타 히데코 지음, 오나영 옮김 / 청림Life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표지를 들면 정면으로 사진기를 바라보고 수줍게 웃고 계신 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눈에 뜨이는데, 그들의 미소가 싱그럽기 그지 없다. 저렇게 깨끗하게 나이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노동으로 군살 없는 몸매에 선한 표정이 이들이 얼마나 인생을 잘 살아왔을지 쉽사리 짐작하게 한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분들이야말로 그 말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분들이 아닐런지 싶다.


어렸을 적, 내가 가장 많이 심부름을 가는 곳은 할머니 댁이었다. 할머니 댁에 이런 저런 심부름을 하러 가면 ,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할머니는 나를 반기시며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고, 장독대에 다녀오고, 옥상에 있는 텃밭에 올라가 먹을만한 것들을 따오셨다. 그리곤 정말 순식간에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뚝딱하고 내오셨다. 내가 밥을 먹었다고 해도 언제나 다시 먹여서 보내려 하시던 그 고집을 난 한번도 꺽지 못했다. 거기에 밥을 먹었다고 해도 여전히 들어가게 만들던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가히 동네에서 전설급이었다. 대단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도, 힘들여서 만드는게 아니라 그냥 설렁설렁 하시는 듯한데도, 어쩜 그리도 맛있던지...내가 살아오면서 먹었던 어떤 고급 음식점 요리도 따라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요리들은 내가 어릴 적을 회상할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그 부지럼함과 선량함,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는 이유였고, 그런 할머니를 볼때마다 늘 의문이었다. 왜 할머니는 저렇게 부지런하게 사실까? 이제 늙으셨으니 조금은 게으름을 피워도 좋을텐데...하지만 할머니는 중병이 들어서 드러눕지 않으시는한 결코 손에서 일을 놓으시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을 보면서 난 할머니가 떠올랐다.  뜨거운 여름의 한 낮만 아니라면 하루종일 동동 거리면서 일거리르 찾아 다닌다는 두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의 일상이 자연스레 내 할머니를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바지런을 떠시면서 1년을 보내시는지...200평이 넘는 밭에 할아버지가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는 ( 할아버지의 직업은 전직 건축가!) 소박한 집에서 두 노부부가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자신들만이 아니라 주변에도 챙겨줄만큼의 먹거리를 직접 생각해 내는데, 그 체계적임에 놀라고 말았다. 그저 소일삼아 하는 심심풀이가 아니라, 밭을 구역 단위로, 계절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그들은 조금의 낭비도 없이 그렇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1년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엔 주변에서 흔히들 보는 그렇고 그런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했다가 이 양반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분들은 절대 보통분들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래 보일지 모르지만서도 말이다.


일단 결혼생활 60여년동안 싸움 한번 해본 적이 없다 하니, 요즘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충돌 없이 산다는게 좋은건지, 내진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큰소리 내면서 싸움을 하는게 좋을게 없다는 점에서 두 분의 지혜가 놀랍다. 거기에 아무리 부부라지만 서로를 배려하면서 늙어간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이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배려하고, 할머니를 그런 할아버지를 존경하고...부부 단 둘이서 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오손도손 살고 있는 모습을 보려니 저절로 숙연해졌다. 아~ 삶이 이렇게 단순하고 소박하며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은 이란 생각이 들게 하시는 부부였다. 하여간 누가 그들을 보건 간에 아마 인상을 찌프릴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때문에 나의 삶이 반성이 되면 되었지 말이다. 아마도 평생 서로에게 감정의 적금을 많이씩들 부으셔서, 지금 그렇게 마음의 부자로 사시는 것이겠지 싶다.


20대를 지나 30대를 넘어서고 나면 슬슬 걱정이 된다. 죽는 것도 그렇지만 늙어 가는 것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그런 것 때문에 말이다. 늙는 것을 생각할때마다 즐거운 것은 없고, 오로지 나쁜 일만 있을 것 같아서 미리 겁부터 났는데, 이 두 부부를 보고 나니 희망이 보이는 기분이다. 이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늙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다. 죽어가기 전까지 힘들여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남에게 나눠 주는 삶에 감사하고, 즐거워 한다면 어쩜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쁘기만 한 젊은 시절과는 달리 인생을 진짜로 즐길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노년이 아닐런지... 그런 희망을 갖도록 모범 답안을 보여 주던 츠바타 노부부, 두분의 행복한 일상이 지금처럼 무리없이 이어져 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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