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전 -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
천빈 지음, 정유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라는 표제가 딱 들어 맞는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인데, 사진이 나오기 전에는 그림이 아니라면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는 방법이 없었겠다 싶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화가라면? 자신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니었을까. 일단 모델료가 공짜인데다, 내킬때마다 아무때나 그릴 수 있으며,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까다로운 주문을 할 필요도 없고, 완성이 되고 나면 자신에 대한 선물이 될터이니 말이다. 다른 직업군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이 영생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어쩜 화가라는 직업이 갖는 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후대에까지 얼굴을 남긴다는건 지극히 한정된 사람에 한해서나 가능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자기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니, 얼마나 잘 알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그렸겠는가. 그렇다 보니, 이 책의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거장들의 자화상 컬렉션>을 들여다 보는데,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그 다양한 얼굴들에, 생동감 넘치는 표정들, 그리고 화가 개인들의 특성에 따른 화법들이 사진에선 볼 수 없는 진정성과 동시에 개성을 느끼게 해줬다. 재밌는 것은 자화상을 그렇게 늘어 놓으니 화가 자신의 화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화가 자신의 서명이 그림 안에 들어있는 듯 했으니 말이다. 저자가 책 권두에 자화상만으로도 미술사를 한 번에 흝어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한마디로 자신의 화풍과 개성을 전력을 다해 불어넣은 것이 자화상이었다. 그들이 그것들을 그릴 적에 어떤 의도로 그렸는가는 화가가 아닌 나로써는 짐작 못하겠지만서도, 적어도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그들이 그린 것은 비단 자신의 얼굴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이야. 어때? 괜찮지 않아? " 라고...


표제에 쓰인 미술사를 산책하다라는 말에서 보듯, 거장이라 불릴만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두루두루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거기에 약간의 살을 붙여, 그 화가에 대한 이력이나 화풍, 그리고 인생사까지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어, 그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이해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있었다. 많은 화가들을 소개하려다 보니, 그들 각자의 약력이 간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쉽긴 했지만, 만약 진지하게 파고 들었더라면 아마도 이 책 두께로는 바로크 시대도 넘지 못했을 것이다. 페이지의 압박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을 것이라는 뜻. 


등장하는 화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화가들이 주르르 이어진다. 저자가 자화상에 빠지도록 이끈 장본인이라는 알브레히트 뒤러부터 시작해서, 현자에 가장 근사치로 보이는 다빈치, '초상화는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고 있는 한스 홀바인 2세, '플란더스 개' 의 화가 루벤스, 읽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철학하는 화가 푸생, 말년에 돈이 떨어지자 궁여지책으로 자화상을 주로 그린 렘브란트, <만종>의 주인공 답게 화려하지 않은 자화상을 남긴 밀레, 자화상을 무대 삼아 연기를 하고 있던 구스타프 쿠르베,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반 고흐, 죽음의 그림자를 달고 다닌 뭉크, 몽환적인 화풍이 그대로 드러나던 샤갈, 창작에 있어서만큼은 치열했던 피카소, 그리고 미친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그림을 그리던 달리까지...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미술사 전체를 한번 휙하고 둘러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림을 이해하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화가들마다 자화상을 그린 시점들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에 자화상을 통해서 그들의 인생을 개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인간으로써,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풀려 나갔는지 그림만으로도 추측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고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화가들은 천재다! 라는 것? 어쩜 그리도 그림을 잘 그리는지, 그들의 섬세한 표현과 무자비한 개성들, 도저히 인간이 그려낸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은 완벽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런 재능들이 별다른 교육 없이도 붓을 잡은 지 수년만에 만개해서 자신만의 족적을 남긴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 없었다. 우리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절로 경배하게 되는 게 바로 그때문이 아닐런지. 도무지 감출 수 없는 , 아니 감춰지지 않는 재능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거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음악적 재능과 마찬가지로, 회화적인 재능도 남자 뇌와 관련이 있는가 보다 싶어서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집안에 화가나 음악가가 많으면 자폐아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던데, 아마도 필시 그런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한다.  미켈란젤로가 자폐아의 전형적인 증상을 갖고 있었고, 아마도 사방트였을 거라 추측하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럴듯하다 싶다. 아,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 하여간 그림들이 너무 아름답다. 다른 미술사 책을 보면 그림들이 흐릿해서 알아보기도 힘들다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일단 도상들이 뚜렷해서 좋았고, 저자가 선택한 그림들이 다들 각각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녀서도 좋았다. 이 저자의 의도대로, 가장 적은 가격에 거장들의 자화상 전람회를 관람하시고 싶으신 분들에게 안성맞춤일듯... 왜 이 저자가 다른 것도 아닌 자화상에 매료되었을지 이해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저자에 공감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걸 아시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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