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긴급히 만나 의논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형 세르게의 호출에 파울은 마지못해 아내 끌레르를 데리고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석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지만, 차기 수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세르게라면, 현재 네델란드에서 가장 핫한 남자중 하나인 그라면 당일치기의 예약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형을 멍청하고 섬세하지 못하며 지적으로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파울은 그가 그렇게 성공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 무대위에서의 세르게의 카리스마만큼은 파울 자신도 인정하는 바, 질투와 아니꼬움과 냉소로 무장한 채 그는 형 내외를 기다린다. 그가 그 저녁 식사에 그렇게 꼬여 있었던 것은 비단 성공한 형을 만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그의 외아들인 미헬이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파울은 아내 모르게 그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 거린다. 가뜩이나 심사가 사나운 가운데, 마침내 세르게와 그의 아내인 바베테가 나타난다. 드디어 한 자리에 앉게 된 두 쌍의 로만 부부는 고급 레스토랑 특유의 섬세하기 짝이 없는 시중을 받으면서 식사를 시작한다. 아페리티프에서 시작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 그리고 입가심용 에스프레소까지, 풀 코스의 디너가 이어지는 동안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모여야 했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충돌에 이르게 되는데...


신경질적이고 무척이나 지적이지만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주인공 파울은 그만의 목소리로 현재를 중계한다. 속물인 정치가 형을 미워하고,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면 식사를 못하는 형의 허영을 비웃으며, 아프리카 흑인 아이를 입양하고는 생색을 내는 형 내외의 위선을 비아냥대는 파울에게 독자들은 곧 동화가 된다. 우리는 곧장 파울의 입장에 서서 인공 미소를 띄워대며 가짜 공약을 남발하던 정치가에 대한 혐오를 가공의 매력을 지닌 세르게에게 퍼붓게 된다. 그래, 속물인 정치가가 언제나 문제지, 그들이 아무런 노력없이 성공을 하고, 아무런 노고 없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바라본다는건 얼마나 좌절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단박에 파울의 편이 되어 버린 독자들은 그를 괴롭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그를 괴롭히는 것이 비단 형만이 아니라는걸 알게 된다. 그의 외아들이 사촌인 세르게의 아들과 사고를 쳤다. 열 다섯에 불과한 녀석들이 술에 취해 노숙자를 태워 죽인 것이다. CCTV에 잡힌 그들의 영상은 네델란드 전역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경찰에선 그들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문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몰라봐도, 자기 자식을 몰라 볼 부모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알아본다. 흐릿한 영상속에서 노숙자를 비웃고 때리고 불을 붙이는 아이들이 자기 자식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차기 수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형과 정신적인 문제로 교사직을 그만 둔 동생은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앙금을 뒤로하고 모였다. 과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처음 이 책의 인상은 단단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톤이나 묘사하는 어조가 단단하기 이를데 없다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논리 자체에 헛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곤 중반을 넘어가면서 알게 된다. 저자의 그 단단하고 헛점이 보이지 않는 논리가 바로 함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조금씩 드러나는 파울의 과거와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된 독자들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과연 그의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라는...그가 우리와 똑같은 루저에 보통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동질감 내진 공감을 해도 되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워 지는 것이다. 그리곤 좀더 읽고 나니 그에게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뜨악한 심정으로 말이다. 내가 당신을 알았던가요 라고 질문하고 싶어진다. 더 나아가 그가 자신이 주장하는 대로 착하고 지적이며 정직한 사람이라는 뉘앙스에 반박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인공에 대해 마지막 믿음을 잃지 않는 이유는 그가 사고를 친 아들 때문에 고민을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는 적어도 자신의 아들이 커다란 잘못을 했다는 것을 자각한다. 사람을 죽여놓고도 태연하기 짝이 없는 아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그런 그의 양심에 마지막 희망을 걸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도 논리 정연하게, 그 희망이 어떻게 배반되어 가는 지를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데...


탄탄한 논리 전개, 개연성 있게 전개되어 가는 사건들, 두 쌍의 부부간의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 각자의 이익을 두고 벌어지는 살벌한 종횡연합, 우아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단 하루 저녁의 식사 시간 동안 누구보다 지적이고 고상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위선의 가면이 벗겨져 나간다. 결국 독자들은 추악한 그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책을 덮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그 과정에서 도무지 헛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헛점을 찾고 있을 여지도 없이 스피드하게 사건이 전개되어 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각자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따른 행동 하나 하나가 섬뜩할만큼 논리적이라는 점에서도 반박거릴 찾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덧붙일만한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심리 묘사, 압권이었다. 흡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책을 일단 들기 시작하면 결론을 알기 전엔 내려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부들의 이야기가 하도 수상해서 말이다. 그들이 자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추악한 얼굴을 드러냈을때 우리는 비로서 깨닫게 된다. 논리나 이성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유대인 학살이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2급 인종들은 말살해도 된다는 논리에 의한 것이었으며, 카톨릭 이하 독일 국민들이 그에 동조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논리의 씨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설, 어떤 추리 소설보다 섬뜩했던 책이 되겠다. 근래 읽었던 소설중에서 가장 완벽했던 소설,  품격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지적이고 냉정하며 이기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과 옹졸함이 연결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지적이고 논리적이면서 포용력이 있을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그것은 가능한 조합이 아닐려나? 만약 우리가 한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걸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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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2 2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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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2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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