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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내 인생
이자벨 코이셋 감독, 사라 폴리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스물 셋에 나 없는 내 인생을 계획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열 일곱에 만난 첫사랑과 결혼해 딸 둘을 두고 있는 앤은 그럭저럭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물론 반 백수 상태인 남편을 대신해 야간청소부를 해야 하는 것이나,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가난이 심난한건 사실이지만, 사랑하는 두 딸과 남편이 있어서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앤의 엄마는 왜 일찍 결혼을 해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닥달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비록 젊은 시절의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지 못했지만, 그녀에겐 그보다 소중한 가족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난소암 말기이며,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죽음 앞에 간당 간당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록을 적기 시작한다. 그리곤 천천히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던 여인의 용기가 돋보이던 영화였다. 스물 셋이라...그 나이라면 인생에 대해 한번쯤 어리광을 부릴만도 한데,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그런가 인생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장면이 공감이 되면서도 안스럽더라. 그 나이에 인생에 더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왠지 내가 그녀에게 잘못이라도 한 듯 그렇게 미안했었다. 과연 나라면 그녀처럼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러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처지라면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했다. 쉽진 않겠지만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일테니까. 그나저나 주인공은 어쩜 그리도 쉽게 자신의 삶을 내려 놓을 수 있는지...내겐 그게 참 신기했다. 대걔는 그 지경에 되어서도 살기 위해 발악을 하는게 보통인데 말이다. 그 발악 끝에 주변 사람들을 다 지치게 하고 질리게 만드는게 흔히 보는 광경인데 말이다. 정서상, 그렇게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사회가 우리는 되지 못한다. 아니,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일까?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때에 삶에만 집착하면서 결국 모든 것을 놓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그런면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던,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간 이후에 살아갈 사람들을 배려하던 그녀의 배려와 담대함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내 죽음 앞에서 그렇게 담대할 수 있기를 ...나 없는 내 인생이 너무 참담해서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는 우는 범하지 말기를, 그런 바람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던 장면...치료를 거부하는 앤에게 주치의가 조언을 한다. 치료는 안해도 좋으니 병원에 오라고. 죽는 것도 쉽지 않다고. 고통을 겪지 않도록 내가 도와주게 해 달라고. 삐쩍 말라서 하나도 멋있어 보이지 않던 남자였는데, 그 순간, 그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더라. 역시 인간은 외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가로 멋짐이 판가름되는 것 같다. 아무리 못 생긴 사람이라도, 그렇게 인간적인 말을 내 뱉으면 그냥 잘 생겨져 보인다. 그렇게 보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은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