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하는 작별
룽잉타이 지음, 도희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필을 잘 읽지 않는데, 그건 관성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이 쉽사리 만나지지도 않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혹시나 해서 든 책인데, 의외로 참 대단한 작가를 만난 기분이었다. 동양 여성들의 수필은 더더군다나 그 순종적이고 하염없이 인생을 찬양하는 태도에 질려서 왠만하면 안 드는데 , 이 책은 그완 달랐다. 여성이라는 시선을 넘어 인간을 관조하는데 그만 반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진실들을 바라보고 통찰하며 쓸 수 있는 여류 작가는 별로 만나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놀랐다. 동양에 이런 여류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에.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중국에서 왜 그리도 인기가 있다는지 이해가 갔다.  이 정도의 깊이는 흔치 않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중국 민족의 문화적 저력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랄까. 고개를 숙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깊이는 동양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아니면 발견하기 힘들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걸 넘어서 통찰하는 시선 말이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관습, 사상, 배운 것들, 부모가 심어준 갖가지 심리적 제약을 넘어서 인간으로써 홀로이 자신의 생각을 발전해 나가는 모습들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생각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역시나 거대 대륙 중국의 힘은 함부로 볼 게 못 된다. 전혀 관습적이지 않은 신선하기 그지 없는 고찰들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아마도 인간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닐런지... 그런면에서 정신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를 한움쿰씩 들고 있는 듯한 중국 사람들을 보면 감동적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사상들을 키워 내는 걸 보면 말이다. 경제, 정치적으로 보면 아직은 개발중인 나라지만서도, 문화에 있어서만큼은 그 저력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문화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런 것인가 보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나란 과연 어떤 저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대중적인 면에서는 그래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긴 한데, 과연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자 자신의 일상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물 흘러 가는 듯 적어놓고 있는 수필집이다. 저자가 중년을 넘어서 쓴 글이라서, 인생에 대한 본인 자신의 진지한 통찰이 곳곳에서 보인다는 점이 장점이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아들과의 대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관계, 부모 자식간의 관계의 의미, 인생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등이 적혀져 있었다. 날카롭고 예민하며 현명한데다, 군더더기 없고 담백한 인간적인 시선이 좋다. 남이 뭐라 하건 상관없이 자기가 생각한 것들을 나열 한 것도 그렇고. 타인의 시선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겠지.또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고 말이다. 다만 조금은 쓸쓸한 톤이라는 점이 별로다. 인간이 중년을 넘기고 나면 조금은 쓸쓸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보다. 그나저나 수필은 내용이 요약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러니 정 궁금하시다면 그저 책을 읽어 보시길...

 

팁으로 나를 사로잡던 그녀의 혜안들을 옮겨 보기로 한다.

 

※ '너희들은 절대로 순수한 사랑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지속되려면 두 사람 사이에 ' 상호 이익'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랑은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 "  ---33

 

우체통을 열어보니 멀리서 온 편지가 있었다.

  불과 십년 전까지 , 저는 서서히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 보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신 지 팔년 째 되던 날, 들이마신 숨을 뱉지 못하고 그대로 떠나셨습니다. 팔년 동안 저는 아버지의 몸을 닦아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썩어 들어가는 육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 사랑' 클럽을 생각해냈습니다.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리스트를 만들면 회원들이 서로 집행해 주는 클럽입니다. 회원 한 명이 떠날 경우에만 새로운 회원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종의 비밀 결사압니다. 그러나 우리 클럽은 의사나 변화사 등도 확보하고 있어서, 여러분이 살인죄로 기소되지 않도록 보장합니다. 게다가 대사를 그르칠 수도있게 때문에 가족에게는 비밀로 합니다.

 

나는 곧바로 답신을 썼다.

신청서 양식을 보내주세요.---112

 

나는 천천히 , 아주 천천히 이해해 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처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우리는 골목길 이쪽 끝에 서서, 골목길 저쪽 끝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 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당신에게 속삭인다. 이제 따라올 필요가 없다고.--18

 

그는 알 것이다. 현자라면 누구나 아는 가슴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을. 어떤 일은 혼자서 해내야 하고 어떤 고비는 혼자서 넘어야 하는 것처럼, 어떤 길은 온전히 홀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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