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후안 호세 캄파넬라 감독, 길예르모 프란셀라 외 출연 / 블루키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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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소처럼 평범하게 사건 현장에 들어선 검사보 벤야민은 참담한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만다. 마지막까지 저항을 한 흔적이 뚜렷한 여인의 처참한 시신을 보게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강간 살인, 분노한 벤야민과 수사를 위해 나와있던 사람들은 다들 숙연해진 마음에 발끝으로 걸어다닌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의 남편은 부들부들 떨면서 꼭 범인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아침에 벌어진 일임에도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고, 단서가 나타나지 않자 조급해진 경찰은 그곳을 얼쩡대던 남자 셋을 잡아 들여 고문을 하기 시작한다. 70년대 독재국가 아르헨티나에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었고, 옳지 않은 일이라는걸 알면서도 다들 쉬쉬하면서 살았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자백을 했다는 말에 벤야민은 하는수 없이 가서 그들을 풀어준다. 고문이 시킨 말이라는걸 알았기 때문이고,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엉뚱한 사람을 잡아 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한편,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온 신입 검사 이레네를 본 벤야민은 마음이 설렌다. 똑똑한 것은 물론이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어렵다.하지만 학력차, 집안 차를 고려해보면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상책, 더군다나 약혼자가 있다는 말에 그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강간범을 잡기 위해 조그만 실마리라도 찾으려 애를 쓰던 벤야민은 살해된 여인의 옛 사진속에서 수상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직감 하나 믿고 벤야민은 어렵사리 그를 잡아들이지만, 다들 왜소한 그가 범인일 수 있을까 의심을 한다. 하지만 이레네의 기지로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 낸 수사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범인은 종신형에 처해진다. 그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생각한 벤야민은 우연히 TV를 보다가 그가 석방되었음을 알게 된다. 정부가 반게릴라 소탕 작전에 쓰기 위해 그를 내보낸 것이었다. 이제 정부의 고위직이 된 강간범은 일당들을 이끌고 벤야민을 습격한다. 이에 기겁한 이레네는 그를 멀리 떠나 보내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뒤, 과거의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있던 벤야민은 이레네를 찾아간다.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취지였지만, 오랜만에 이레네를 만난다는 것 역시 무시못할 이유였을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던 둘은 잃어버린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궁금한 것을 풀어 보려 사건을 캐고 다니던 벤야민은 자신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첫 장면, 남자를 기차에 태워 보내는 여자의 눈길이 심상치 않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끝까지 인상적인 영화였다. 간만에 보는 집중력 넘치는 영화. 우선 이야기 자체가 탄탄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전개 자체도 개연성 넘치고 흥미진진한 덕분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궁금해서 뒤의 장면들이 기다려 졌던데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전개 역시 마음에 든다. 특히나 두 주연 배우들의 사랑이 참 공감이 되더라. 사랑을 놓친 뒤 공허함을 견디면서 사는 모습이나, 놓쳐 버린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 용기를 내는 모습이나, 둘 다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자신의 아내를 강간 살해한 범인을 잡아 자신이 만든 사설 감옥에 집어 넣을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그 기고 만장하던 강간 살인범이 25년 만에 만난 벤야민에게 처음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제발, 저 사람에게 말 좀 붙이라고 하셔요. '라고... 그렇게 비열하고 잔인한 녀석도 애걸복걸 할때가 있다니, 침묵도 무서운 고문이구나 싶다. 어렸을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를 강간할 때는 자신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애원하는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잡히고 난 뒤에도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던 악당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장면의 섬뜩함은 그렇다치고, 과연 그것이 신빙성이 있을까는 의문이었다. 동네 친구를 그렇게 잔인하게 강간해서 죽일 정도로  타인과 공감능력이 부족한 강간범에게 단지 갇히고 무시당한다는 것으로 그의 기를 꺽어 놓을 수 있을까? 그를 고문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고통이란 적어도 보통 정도 상식은 있는 인간이여야지나 누릴 수 있는 사치인 것은 아닐까.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가 그렇게 비루해진 것에 대해 통쾌하게 느꼈었지만서도... 흥미롭지 않나. 그게 불법이라는 것을 뻔연히 알면서도, 그것이 한 인간에게 내려진 가장 잔인한 형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정의가 실현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말이다. 단지 그것이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 내린 형벌이라는 점이 안타까웠지만서도. 하지만 사랑이 아니라면...자신의 인생을 바친다 해도 아깝지 않다고 결심한 진실하고 지독한 사랑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그에게 그런 정의의 심판을 내리려 했겠는가 싶다. 아마도 살해된 여인의 남편이 그랬던 것은, 아내가 죽던 순간 자신의 인생도 끝나 버렸다는 생각을 해서가 아닐런지.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잘 만든 영화다. 특히나 나는 두렵다--te mo--라고 썼던 글자에 a 를 적어 넣은 뒤,( teamo)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가던 주인공이 너무 멋졌다. 이해가 가는 설정 아닌가.  맞다. 사랑이 제일 두렵다. 두려움이야말로 사랑을 막아서는 최악의 방해물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드디어 사랑을 찾아 가던 벤야민과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당당하던 이레네란 캐릭터가 눈길을 잡아끌던 영화, 어린 아이들의 유치한 사랑 놀음이 아니라 깊이 있고, 배려 하는, 사려 깊고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라 마음에 더 와 닿지 않았는가 한다.  이런 어른스런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이지 싶다.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마음을 울리는 이런 영화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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