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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사랑일까 - 불륜에 숨겨진 부부관계의 진실
리처드 테일러 지음, 하윤숙 옮김 / 부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철학자인 저자가 불륜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주는, 불륜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의 숨은 의도를 심도있게 분석해 준다는 점에서 믿을만 한데다, 비난이나 설교조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불륜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해 준다는 것에 있다.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불륜은 실패한 결혼의 징후일 뿐이라고 한다. 불륜때문에 결혼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결혼이기 때문에 불륜이 생겨난다는 것! 사람들은 불륜이야말로 결혼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고 생각하지만서도, 실은 사랑의 부재나 관계의 실패야말로 더 큰 폐해라고 한다. 한마디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 결혼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 물론 외도야말로 간과하기 힘든 실패 사례일테지만서도 말이다.
" 불륜은 부도덕하지(만은) 않다." 라는 말을 해서 불륜 옹호자로 오인을 받기도 했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간통을 비난하려는 사람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혼인 서약의 가장 기본은 사랑이라는 사실이다...여기서 강조해야 할 점은 불륜을 저지르는 쪽에서 먼저 배신을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애초에 결혼 생활이 시작된 이유이자 둘 사이에 약속했던 사랑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한 것이야말로 맨처음 근본적으로 배신을 저지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간통은 배신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배신에 자연스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265
부부관계를 저금 통장에 비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지 않는가 한다. 부모 자식이건 형제 자매이건 부부간이건 친구, 그리고 사제간이건 간에 나날이 확인해 보는 대차대조표에 오랫동안 한쪽으로 마이너스만 찍혀 있다면 언젠가 파산 선고를 받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것을 혈육이란 이름으로, 서약을 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쌓아온 우정이나 권위라는 말로 선고를 막을 수는 없다. 실체보단 외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서도, 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관계를 오래 유지할만큼 강하거나 무신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달리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적인 의미에서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던 책이라 보심 되겠다. 불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 보시길. 아마도 이 책 하나면 궁금증이 대체로 해소되지 않을까 한다. 비록 불륜을 중점적으로 논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 관계를 설명하고 있던 책으로, 읽는 내내 저자의 통찰력과 휴머니티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여태껏 내가 본 불륜을 다룬 서적들 중 단연 최고인 듯...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절대 불륜 옹호자가 아니라고 하소연하는 저자의 서문이 귀엽게 느껴지실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