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울타리 SE - 할인행사
필립 노이스 감독, 에블린 베나블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1930년대 호주 원주민 보호 의장인 네빌은 호주 원주민들을 점진적으로 백인화시키겠다는 생각에서 혼혈 원주민들을 격리하는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이로 인해 평화롭게 부모들과 살고 있던 많은 원주민 혼혈인들이 하루 아침에 부모와 떨어져 수용소에 격리된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은 대걔 백인들의 식모 살이를 하게 되거나 사망하거나 죽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거리를 헤메는 신세가 된다. 부모의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의 의지완 상관없이 백인들에게 끌려가 격리되어 식모로 길러진다는 자체가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자행된 이 정책으로 인해 원주민들의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혼란을 겪게 된다. 그들이 " 잃어버린 세대" , 혹은 " 도둑맞은 세대" 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영화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수용소에 감금된 몰리라는 소녀가 동생과 사촌을 데리고 수용소를 탈출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실화란 것을 알고 봤기 때문인지 처음 납치되는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바라보기가 쉽지많은 않았는데, 나중에 메이킹 필림을 보니 그 씬을 찍는 장면에선 관계자 모두 울고 있더라. 연기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두려움과 기막힘과 억울함이 느껴지자 서럽게 부둥켜 안고 울 수밖엔 없는 듯했다. 인간이라면 남의 아이를 강아지 데려가듯 하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서도, 실제 그들의 조상이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원주민들로써는 남의 일 같지 않았겠지. 또 만일 지금이라도 백인들이 그런 정책을 실시한다 해도, 지금 원주민들 역시 다른 대처 방법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때만큼이나 무기력한 것에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는 뜻. 하여간 타인의 역사라고 해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에게 자행하는 만행을 볼때마다 분노하게 된다. 그것이 무지에 의해서건 거만에 의해서건 이기심때문이건 간에 간에...


 대낮에 백인 경찰들에게 납치된 몰리 일행들은 당시 혼혈 아이들을 수용하던 곳으로 가게 된다. 자신과 같은 피부색깔의 아이들을 보면서 영문을 몰라하던 몰리는 그곳이 오래 있을 곳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탈출하느냐, 그리고 과연 집을 찾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 수용소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약 1500마일,  몰리가 14살이라고 해도 가장 어린 동생은 이제 막 7살을 넘어섰을 뿐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위험하다고 일컬어지는 극단적인 자연환경에 무더위, 사막, 그리고 무엇보다 도망간 아이를 귀신같이 잡아오는 개코 아저씨까지...그들의 탈출계획은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처음부터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몰리의 결심은 확고하다. 되도록이면 빨리 이곳을 나가야 한다고 판단한 그녀는 머뭇대는 동생들을 데리고 과감하게 탈출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과연 몰리 일행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토끼를 막기 위해 만든 토끼 울타리를 따라 수용소에서 집까지 천 오백 마일을 걸어서 돌아왔다는 호주 원주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다.한마디로 호주의 원주민들의 한이 서린 영화였는데처음엔 이런 이야기가 이제서야 영화화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기막힌 이야기라면 진작에 드라마화 되었어야 정상이여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호주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기막힌 사연에도 불구하고 그냥 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왜 그런 것일까? 그리고 호주 사람들은 왜 그들에게 미안해 하지 않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 이 영화를 보면서도 내내 들었는데, 어쩜 그다지 놀라운게 아닐지도 모른다 싶었다.


호주 사람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자. 만약 우리 주변에 원주민들이 산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들은 현대 문명과는 몇만년 정도 떨어진 종족이다. 거의 벌거벗고 다니고, 정조 관념이 희박하며, 10대에 이미 아이 엄마가 된다. 아버지가 다른 무수한 아이를 낳으며,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친다면, 과연 우리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살게끔 두겠는가? 편견이나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게 개입을 해서 무언가 달라지게 하려 노력하지 않겠는가. 과연 우리라면 호주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호주 사람들이 앱보리진에게 그렇게 무심하고 경멸에 가득찬 대응을 하는 것이 일면 이해가 갔다. 그들에겐 앱오리진들이 외계인만큼이나 다른 존재들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런 문명간의 충돌에서 이렇게 한심하고 슬픈 역사가 시작된 것은 혹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잔재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고 말이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원주민들의 한이 화면밖에서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어린 아이들 셋이 엄마 만나겠다고 사막을 건너는데 가슴이 먹먹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탈출이 가능했던 데에는 단지 몰리의 영리함만 있는건 아니었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그랬듯이, 선한 보통 사람들이 그들을 돕는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옷을 주며, 잘 도망가라고 길을 알려 준다. 그리고 그들 중엔 백인이 대다수였다. 호주 백인들이 모두 격리 정책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걸 보면서 이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것은 어쩜 그런 보통의 선량한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소극적이긴 하지만 언제나 정의의 편에서 소리 없이 지지를 해주는 사람들, 다름보단 공통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니 말이다.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다큐처럼 건조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 듯 하다.  두가지를 조합해보면 그다지 재밌는 영화는 아닐 거라는 짐작이 되실 텐데, 실제로도 그렇다. 아무리 몰리 일행이 자기 집을 찾아가길 응원한다 해도, 지루하더라. 거기에 마지막에 실화속의 주인공인 몰리 할머니가 나와서 비록 그 탈출에서는 성공을 했지만, 나중에 다시 잡혀 갔다는 이야길 들려주시는데, 맥이 빠진다. 아마도 그렇게 탈출을 했으니 이제 백인들 손에서 벗어나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다시 잡혀간데다, 나중엔 자신의 자식들까지 수용소에 뺐기곤 그 뒤론 못 만났다고 하신다. 할 말이 없었다. 패배한 느낌이랄까. 그럼 이 영화는 왜 만든건데, 라고 조금은 성질이 나더라. 그냥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게 그들의 역사이니 말이다.


참, 실제 몰리는 늙었지만 굉장히 총명해 보이는 분이셨다. 그런 역사속에 살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행복한 인생을 누리셨었겠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인생 한참 꼬여 버린 그들을 보려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이 이런 영화를 찍은 것도 그런 경험만큼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겠지...그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경계의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겠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만 하는게 아니니 말이다. 이런 야만이 가능한 역사로의 퇴보는 전혀 반갑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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