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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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잃은 35살의 사서 데시레와 엄마를 잃은 노총각 농부 벤니는 묘지를 들락달락 대다 낯을 익히게 된다. 처음 서로를 꺼림칙해 하던 둘은 상대에게 뜻밖의 미소를 발견하면서 관계가 발전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둘이 묘지에서 만났다는 것도, 배경 차이가 심하다는 것도 잊고 순식간에 친해져 버린다. 사랑에 서툰 두 사람에게는 기적이라고 할만큼 극적인 전개였기에 둘은 이 사랑을 언제까지나 지켜 나가고 싶다. 다만 문제는 섹스는 지나치게 좋은 반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둘의 차이가 좁혀지긴 커녕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  해서 이제 둘은 사랑을 위해 상대가 바뀌기만을 기도하게 된다. 나를 사랑한다니 그 정도는 해주겠지 했던 둘의 기대는 왜 내가 너를 위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는데? 라는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데..


음. 이제, 신종 로맨스 소설은 이렇게 쓰는가 보군? 책을 내려 놓으면서 든 생각이다. 영화에서라면 아마도 둘 중 하나가 변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을 것이다. 여자가 사서를 하면서 농장을 하는 남자를 돕던지, 아니면 남자가 여자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오던지... 현실적이진 않지만 해피엔드다. 그것에 비하면 이 책은 현실적이다. 사랑도 하고, 섹스도 기가 막히게 좋지만, 자신을 희생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둘에겐 아예 없다. 오히려 팽팽하게 상대에게 변신할 것을 강요한다. 사랑한다면 그까짓것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둘 다 어찌나 고집스러운지, 상대가 기껏 타협점이라고 내놓은 제안들도 퇴짜 놓기에 바쁘다. 그것 가지고는 성에 안 찬다는 것이다. 완전히 획기적으로 바뀌거나 나를 위해 전부를 포기하기 전에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쯤 되면 이 둘이 가야할 길이 어디가 될지 점쟁이가 아니라도 점치기 어렵지 않다. 결별... 그리곤 생각한다. 다음번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게 좋겠다는...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거기까진 그래도 이해할만하다. 썩 만족스러운건 아니었지만서도, 각자 논리에서 생각하면 그럴듯하니 말이다.


만일 그 지점에서 이 책이 결말이 났더라면 이 책을 그렇게 싫어 하진 않았을 것이다. 냉소적인 뉘앙스로 ' 신종 로맨스'라는 말을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이 책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말로 숨겨 둔 내용이 더 있었던 것이다. 바로 데시레가 갑자기 벤니의 아이를 갖겠다고 난리를 친다는 것. 그녀 왈, 함께 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는 낳아 키울 정도로 벤니를 사랑한단다. 어이가 없어서... 그게 숭고한 사랑이자 희생 정신이라고 이 작가는 생각하는 것 같던데,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데시레가 무식하다고 구박을 해도 전혀 밀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만 잘 하던 벤니가 갑자기 정신이 나간 데시레에게 동조하는건 또 뭐란 말인가? 과연 남자들 중에 너는 필요없고, 너의 씨만 필요해! 라는 여자의 요청에 흔쾌히 승낙할 사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내가 남자라면 당연히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 말이다. 헤어졌음 그것으로 끝이지 어디서 들이대냐고 화를 내고, 애가 장난이냐고 호통을 쳐야 마땅해 보이는데도, 이 주인공은 황송해 하더라.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난 인간이 아니냐고, 나를 전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냐고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것일까? 만약 남자들에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게 정상이라면, 그거야말로 실망이다. 나는 무엇도 아닌 씨뿌리개에 불과하단 선언과 마찬가지니 말이다. 


어쩌면 로맨스 소설이란 열등감은 높고, 자아 존중감은 낮으며, 철이 들지 않는 사람들이 벌이는 사랑 환상곡을 일컫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랑은 하지만서도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짐작도 못하는 사람들의 기형적이고 가학적인 사랑 모습을 진저리나게 미화하는 것일지도... 그걸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작가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오해하고, 평생을 철들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겠지. 사랑한다면 현명해 지라고.아니 사랑하게 되면 현명해진다고, 그런 걸 말하는 소설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그런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설마...이 세상에 행복한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해서 사랑을 조롱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하여간 신종 로맨스 소설의 공식이, 너는 필요없고, 아이만 있으면 돼! 라는 컨셉이라면 난 반대하고 싶다. 아이는 남편을 비롯한 여러 친척들과 더불어 키우는게 좋다.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 아이는 엄마의 외로움을 치유하기 위한 애완용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것이 사랑의 근사한 대용물이나 결과물이라고 생각되어져서도 안 된다. 왜냐면, 아이에게는 그것이 한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제발, 당신들의 인생 문제를 아이로 해결하려는 우는 범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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