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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이 책이 미친듯이 웃고 싶어서 고른 것이라는 걸 알려 드리고 싶다. 책을 받기도 전에 그런 기대를 하면 좋지 못하다는걸 알지만서도--기대가 큰 만큼 체감 실망감도 상승함.--그럼에도 저런 표지에, 저런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밖엔 없다. 웃기게 생겼다는 것! ( 일단 눈 반짝) 거기에 기필코 웃고 말겠다는 강력한 염원과 의지까지 ( 두 주먹 굳게 꽉 쥐고) 동반해 주니 도무지 당장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해서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책, 결론만 말하자면 별로 웃진 못했다. 언제 나를 웃겨줄 건가요? 웃겨주긴 하실 거죠? 란 기대로 끝까지 읽어 내려 갔건만 웃음이 나오진 않더라. '미친듯'이는 언감생심이고, 그냥 헤~ 두 번이 다였다. 허풍담이란 제목이 딱히 틀린건 아니니 사기라 할 순 없지만서도,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특히나 " 허풍선이 남작 " 을 읽은 이래로 허풍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웃음을 실실 쪼개는 버릇이 있는 나로써는 당황스런 경험이었다. 뭐? 과장하지 말라고? 웃을 준비 다해 놓고 대기하고 있는데, 하나도 웃기지 않아 봐. 얼마나 뻘쭘한데...예의상으로라도 웃어 줘야 할 것 같은데 나 혼자 박자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이래서 오래 살고 봐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서도, 어쨌거나 신선하긴 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아이고, 날씨가 하 덥다보니, 추운 북극 나라의 허풍을 읽고 있노라면 더위도 짜증도 한꺼번에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건 그저 바람에 그치고 말았으니...오호 통재라다. 그러게 애초에 기대를 많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럼두들 등반기> 가 연상 되자 그만 이성을 잃어 버렸다. 이럴때 보면 자동반사가 딱히 믿을만 하진 못하단 말이지...
내용은 그린랜드 북동부 그 넓디 넓은 땅에 떨어져 살고 있는 소수의 사낭꾼들에 대한 이야기다. 상상해 보라. 남한 절반 정도의 땅에 고작 서른 명 정도가 흩어져 사는 모습을. 서울에 하나, 부산에 하나, 대구에 하나...주요 도시에 딱 한 명씩만 사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게 살고 있는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거기에 1년의 반은 밤, 나머지 반은 낮인데다 온통 주위를 둘러 봐도 하얀 눈과 빙산이란다. 그들이 제정신으로 살고 있다면 그게 아마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제 정신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각자의 기벽과 순진함으로 일상을 살아내는 모습을 담은 것이 이 책이다. 해서 읽다보면 어디까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 진실인지가 내내 헷갈린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북극이라는 곳이 워낙 극단적인데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마저 정상과는 거리가 먼, 그냥 먼게 아니라 멀디 먼 사람들이다보니, 이 책이 허풍담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게 아닐까 의심스러워 진다고나 할까. 일단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그곳의 사냥꾼들이 들려준 놀라운 체험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진실이 바탕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은 된다. 그렇게 북극에서만 가능한 소소한 사실을 베이스로 깔고,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갖가지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의 소동들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북극이라는 곳에서만 가능한 허풍담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예를 들어 보자면...외로운 나머지 수닭을 애완견처럼 기르던 헤르버트는 고독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친구의 끊임없는 수다만한게 없다는걸 알게 된다.(알렉산더, 순회 방문) 그린란드에서 민병대를 조직하겠다는 야무진 야심을 품고 왔던 중위는 며칠만에 현실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난폭하긴 했지만, 매우 효율적이라는게 증명된 방법으로..( 중위 길들이기,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었음.) 매스 매슨은 검은 머리 빌리암에게 가공의 처녀에 대한 상상권을 판다. 빌리암은 비요르켄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자 , 정숙한줄 알았던 그녀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는다.( 차가운 처녀) 죽은 친구 얄을 위해 즐거운 장례식을 준비했던 친구들은 술취한 백작을 관속에 넣고 수장시킨다.나중에 정신을 차린 사냥꾼들은 살아난 백작에게 나사로란 별명을 지어준다. (즐거운 장례식) 문명의 척도라 할 수 있는 화장실을 그린란드에 도입함으로써 생겨난 해프닝을 그린 것(절대 조건)등을 들 수 있다. 총 10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것은 재밌고, 어떤 것은 끔찍하며, 어떤 것은 기괴하지만, 흥미로웠던 점은 배경이 북극이다 보니 어떤 것도 정상이라 할만한게 없었다는 것이다. 해서 허풍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거짓말이 줄줄이 이어지지만서도,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거짓인지 아니면 진실인지...당신이 그곳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모르는거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독특한 북극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고독하고 착하며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비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비록 웃기긴 못했다 해도...그것이 아직까지도 <럼두들 등반기>와 비슷한 의뭉스러운 코미디이지 않을까 기대한 나에게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역시 기대를 많이 하는게 아니었다.
현재 3권까지 나온 시리즈물이다. 원작은 10권까지 있는데, 출판사에선 향후 반응을 봐서 나머지를 출간할 모양인가 보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3권까지 내처 읽고, 그 후 출판사에 4권 출간 압박용 메일을 신나게 보낼 생각이었는데, 일단 그건 다른 독자들에게 맡겨야 겠다. 2권과 3권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 하기 곤란하니 말이다. 설마 1권이 제일 재밌는건 아니겠지?그렇담 진짜 실망인데...그나저나 표지 뒷면을 보니, 이 책이 7세부터 100세 노인까지 강력 추천한다고 쓰여 있더라. 도무지 어떤 기준에서 그런 말이 나온 건지 의문이다. 북극에선 7살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읽어주나?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조상들의 이야기라면서 베드타임 스토리로 들려주고? 뭐, 북극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절대 절대 우리나란 아니다. 만약 이걸 7살 아이에게 읽어줬다간, 나중에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 정신성 외상에 의한 트라우마를 주장하면서. 거기에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걸작이라는 말은 못하겠으니, 부디 표지에 쓰인 모든 문구들을 그대로 믿지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