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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 - 예술가, 컬렉터, 딜러, 경매회사, 갤러리의 은밀한 속사정
리처드 폴스키 지음, 배은경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미술계에 뛰어든 저자는 12년간의 집념 끝에 2002년 오매불망 갖고 싶어하던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손에 넣는다. 안목은 있으나 가난한 (여기서 가난함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비교우위를 말하는 것임.) 미술상인 그로썬 대단한 쾌거요 자부심이었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해도, 돈이 없기 때문에 늘 구경꾼이나 중계꾼에 머물러야 했던 그가 드디어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니 말이다. 돈 대신 집요한 끈기와 기회를 포착하는 순발력으로 앤디 워홀의 작품을 얻게 된 것이라는걸--다른 말로 고생 고생해서-- 잘 알고 있던 그는 어떤 작품보다 그 그림에 애착을 갖게 된다. 절대로 팔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던 그는 뜻밖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쇼핑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여자와 재혼을 했더니만, 생각지도 못한 재정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결혼을 살리느냐 그림을 파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 그는 일단 결혼이라도 살려 보자는 심정으로 그림을 팔기로 한다. 마침 미술 시장은 회복세의 기세를 넘어서 호황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고, 무엇보다 앤디 워홀의 그림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경매 시장에서 자신이 기대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게 된 그는 최고가에 팔았다는 사실에 안심을 한다. 그림을 떠나 보내는 섭섭한 심정을 뒤로 하고, 자신이 산 가격보다 7배나 되는 가격에 팔았다는 사실에 저으기 만족했던 그는 그 이후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자신이 팔 당시 37만 달러였던 작품이 2년 뒤 240만 달러가 되는걸 지켜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30년간 미술 시장에 몸을 담고 있었던 그로써도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던 미술 시장의 광풍기, 과연 2000년대 중반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왜 갑자기 그림들의 가격은 그렇게 비싸진 것일까? 거기엔 모종의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면서 저자는 곰곰히 그 시절을 회상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림들의 가격이 그렇게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때가 미술계가 노골적으로 미술 시장으로 변화한 시기라고 진단하면서, 그림=예술성=돈으로 환산되는 과정들을 한편으론 흥미진진하게 다른 한편으론 가슴 아프게 지켜 보는데...
가난하지만 안목은 있다.= 좋은 그림을 보는 눈은 있지만 그걸 살 수는 없다로 귀결된다. 아마도 거기에 이 저자의 비극이 내재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걸 알아봐도, 그게 내 소유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쉽게 말해 그림의 떡이다보니, 아무리 바라봐도 배가 부르지 않다. 해서 처음 ' 열심히 일하면 나도 언젠간 저런 그림을 소유할 수 있을 것' 이란 기대로 미술 시장에 뛰어 들었던 저자는 점차 현실의 가혹함을 깨닫게 된다. 미술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안목이 아니라 자본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돈이 재주를 부리고 , 돈이 돈을 불러 들이는 광경들을 목격하면서 저자는 점차 지쳐 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가 노력을 한다고 해도 따라가기는 커녕, 소외감만 더 커져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한때는 안목도 없고, 무식하고, 속물 근성에, 괴팍한 성격, 그림을 예술 작품이라서 사는게 아니라 단순히 돈을 쓸데가 없어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냉소와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었다. 아마도 그땐 그가 아직도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절이리라. 하지만 점차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그는 인정하게 된다. 그가 아무리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해도 작품을 소유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것을. 거기다 그의 기를 더 꺾어 놓는 진실이 또 하나 있었다. 그가 작품을 소유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 속물에 허영덩어리였기 때문이었다는 것 말이다. 가식덩어리에 그림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여자에게 빠지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의 손에 남아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는 이제 인정한다. 그가 다시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손에 넣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가격이 너무 올라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부자들은 날마다 돈을 싸들고 최고가 가격 경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뒤에 붙은 동그라미를 세는 것만으로도 지쳐 버리는 숫자들로 말이다. 그런 사태를 씁쓸하게 바라보면서, 저자는 그런 광풍이 미술에 대한 대중성과 낭만을 없애 버렸다고 한탄한다. 미술 시장이 부자들의 투자 수단 내진 돈 잔치의 장이 되어 버리면서 그림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묻는 사람조차 없어 지게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작품이 아니라, 아내와 이혼을 한 뒤, 앤디 워홀을 팔았던 것을 처절하게 후회하게 된 과정들에 대한 기억들 뿐이란건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30년간이나 미술계에 몸 담은 사람으로썬 허망한 현실일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그는 그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고 회한에 찬 그 3년간을 기록해 나간다. 그것이 바로 이 책<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이다. 전작의 신선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필력만은 전작 못지 않다. 유려하게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해서 재밌게 쉽게 쉽게 읽힌다는 점이 장점. 내부자의 시선에서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힘든 미술 시장의 면면들을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고, 미술 시장이 아직도 보통의 계약서가 아닌 구두와 신용으로 진행되며 거래된다는 등 소소한 정보들을 알게 되는 점도 좋았다. 그렇게 거액의 돈이 오고가면서 거래 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니, 지금보다 소송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그외에 그의 시선에 잡힌 미술계의 잡다한 뒷담화들도 흥미로웠다. 기업인화 되어가는 현재 유명 화가들에 대해 그만의 견해들을 살짝 들려 주던데, 다른 사람들에게선 듣지 못했던 이야기라 신선했다. 이 양반, 다른건 몰라도 미디어에 의해 조장된 환상이나 신화를 까뒤집는 면에 있어서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미술계의 뒷담화론에 그칠 수 있는 책을 절묘하게 품위있게 살려 내는 것이 바로 그의 미술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뜻. 어쨌거나 현재의 미술계의 흐름에 대해 저자 역시 잘 적응이 되지 않아 보이는 뉘앙스엔 안심도 되더라.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장점이 많은 책이긴 했지만 다만 단점이라면, 저자의 두번째 작품이 되다보니, 저자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보단 그에 대해 잘 알게 된다는 것이 별로였다. 그에 대한 매력이나 환상이 깨지는 기분이였다고 할까. 전편에서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 속물을 혐오하는 모습에 통쾌해 했었는데, 들어보니 그가 미술계에 발 담게 된 이유도, 여전히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이유도 그 자신이 속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은 나를 씁쓸하게 했다. 그 역시 땀 흘리지 않고 돈 벌고, 거들먹거리며 살고 싶어 미술 시장에 뛰어든 불나방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만은...아마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이 본인으로써는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그가 성공한 분야가 미술계가 아니라 출판계라는 것은 얼마나 특이한 반전인지.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잘 하는 분야와 하고 싶은 분야가 다를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탐욕스런 미술시장에 숨막혀 하던 그가 미술에 대한 애정을 되찾는 모습이나, 드디어 허영기없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 것등은 조금은 안심이 되는 대목이었다. 추세로 보건대, 아마도 다음번엔 파는 과정이 아니라 무언가 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내지 않을까 예상을 해보면서...하지만 리처드 폴스키님! 제발 다음엔 앤디 워홀 이름은 제목에서 빼 주셔요! 이미 당신은 앤디 워홀을 너무 우려 먹었으니 말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