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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의 뒷모습 - 옥션에서 비엔날레까지 7개 현장에서 만난 현대미술의 은밀한 삶
세라 손튼 지음, 이대형.배수희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9월
평점 :
Seven Days in the Art World 라. 걸작의 뒷모습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일까? 미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같긴 한데, 혹시 어렵지 않을까? 라고 걱정이 되신다면 일단 우려를 내려 놓으셔도 된다. 정말로 쉽게, 쉽게 미술계의 뒷면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니 말이다. 뒷면? 무슨 뒷면? 이라고 물으신다면 작품이 우리 눈앞에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고 보시면 된다. 즉, 미술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술계와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알 길이 없는 모든 과정을 들여다봐주고 있는 책이다. 발상이나 기획부터가 참신하기 이를데 없다. 작가가 의도가 이해되자마자 무릎을 딱 치고픈 심정이었다. 오호! 재밌겠는데? 난 왜 여지껏 한번도 그걸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오히려 그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비록 내가 관련을 맺고 사는 분야는 아니라지만서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쯤 궁금해 할 만도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뭐,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해도 안타까워 할 것 없다. 우리 대신 이 책의 작가인 세라 손튼이 나서서 궁금해하고, 분야를 정해 살뜰하게 알아봐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럴땐 작가의 부지런함이나 오지랖이 반갑기만 하다. 독자인 나는 가만히 앉아서 눈 운동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해서 그녀가 기획하고, 발빠르게 돌아다니고, 만나기 어렵다는 250여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에게서 얻기 힘든 정보들을 눈치와 통찰력으로 어렵게 캐내고, 그걸 또 행여나 독자들이 읽기 버거울까 걱정이 되어 읽기 쉽도록 정서해준 것을 나는 편하게 읽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저자의 고충을 생각하면 읽는다는 행위가 이렇게 안락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작가의 고생이 바로 독자의 기쁨이 되는 이런 독서, 이런걸 놓치지 않는게 바로 노련한 애서가가 되는 노하우 아니겠는가.
자, 아직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안 가신다는 분을 위해 더 쉽게 설명해 보면 이렇다. 어떤 경로건 간에 우리가 접하는 미술품들은 전시관에 걸려 있는게 전부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고, 어떤 사람들 손을 거쳐 유통이 됐으며 ,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되게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컬렉터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건 무엇인지, 현대 미술가들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저 관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요하게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게 다다. 마치 그것들이 어떤 동력의 조력도 받지 않고 그 자리에 놓여 있다는 듯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는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는가? 그들의 속사정이 말이다. 그들이 어떤 탄생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 그 수많은 작가들중에서 스타 작가를 발굴해 내는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이 되며, 걸작이라는 이름하에 걸리기까지 어떤 모종의 역학 관계가 형성되는지 등등...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를 위해 저자는 미술계를 일곱 섹션으로 나누어서, 하루에 한 분야씩 우리에게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그 칠일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대강 미술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미술계란 우리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였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작가가 분류한 일곱 분야를 따져 보자면 이렇다. 맨처음 그녀는 경매시장으로 간다. 세계 3대 경매 시장 중 하나인 크리스티 옥션을 취재한 저자는 경매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눈깜짝할 사이에 진행되는 경매를 지켜 보면서 그녀는 미술 작품이 예술품이 아니라 단지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골적인 순간을 포착해 낸다. 그곳에서 예술성은 돈으로만 환산 될 수 있으며, 팔리지 않은 작품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즉, 인기가 없다면 예술성도 없는 것이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현실 아닌가. 두번째 날에는 대학원으로 찾아간다. 현대 미술계의 거장을 만들어 낸다고 정평이 나있는 LA 칼 아츠에서 그녀는 유명한 미아클 애셔의 강연을 청강하게 된다. 그의 독특한 강의법도 신기했지만, 선생님 못지 않는 각각의 스타일로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도 독특하긴 마찬가지였다. 미래의 거장들을 만나는 의미도 남다르다. 학생들의 자유스러움과 천재성, 그리고 불안을 동시에 지켜보면서, 그녀는 현대에서 화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그게 수지맞는 장사일 수 있을까? 반 고흐를 위대한 천재라기 보다는 생활력 제로의 무능력한 저능아로 기억하는 영악한 학생들이 과연 자신들의 인생을 저당잡혀 예술에 올인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과연 미래의 미술은 어떤 희망이 존재하는 것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셋째 날에 그녀는 컬렉터들의 세상인 바젤 아트페어에서 좋은 작품을 선점하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컬렉터들의 신경전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의 안목이 브랜드가 되는 현장에서, 컬렉터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그들이 펼칠 수 있는 갖은 수단을 다하고 있었다. 미술계를 이끄는 또 다른 손인 컬렉터들을 보면서 그녀는 미술계가 화가만의 것이 아니라는걸 실감하게 된다. 그들도 또한 미술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던 것이다. 네째 날에 작가는 미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터너 상 수상 장면을 따라간다.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작품 값이 수직상승한다는 명망 높은 상에 대한 화가들의 입장과 선정에 따르는 잡음들, 그리고 수상후보들의 속내와 수상에 따르는 심정들을 솔직하게 인터뷰하고 있었다. 다섯째 날엔 미술계의 <보그>지라 일컬어지는 <뉴욕 아트 포럼 매거진> 을 찾아가, 잡지 비평의 파급력과 그들의 진정성, 선정 기준과 작품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알아본다. 여섯째 날엔 현대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마치 공장처럼 도급이나 주문을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게 하는 과정속에서 과연 그것을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해하던 세라 손튼은 현장을 견학한 후 수긍을 하게 된다. 이젠 예술 작품의 의미가 달라질 수밖엔 없었다. 작품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도저히 작가 혼자서 모든 과정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으니 말이다, 결국. 아이디어의 구현에 작가의 이름을 붙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 그녀도 동의하게 된다. 즉, 작품이 프로젝트화 되는 것이다. 거대 기업화, 분업화가 이뤄지는 것은 비단 산업계만이 아니었다. 일곱번째 날엔 그 유명한 베니치아 비엔날레로 날아간다. 피곤함을 무릎쓰고 미술계의 올림픽이라는 비엔날레를 돌아다니면서 그녀는 각국의 큐레이터들이 자신들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비엔날레를 끝으로 미술계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이 된 그녀는 미술계를 관통하는 여정을 마감하기로 한다.
장점들이야 차고 넘치지만서도, 무엇보다 쉽게 쓰여졌다는 점이 칭찬받을만하다. 어려운 용어 없이 자신이 하려는 말을 명확하고 유려하게 써내려 가는걸 보고선 이 작가에게 반하고 말았다. 후속작을 기다리게 만들던 글솜씨였다. 거기에 이해관계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분야들을 선명하게 구분시켜 이해하기 쉽도록 한 점엔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미술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서도, 이 책을 읽고 나니 거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뚜렷하게 상상이 되더라. 그리고 그 모습은 내가 막연하게 상상하던 모습과 전혀 달라서 좀 놀랐다. 그만큼 미술계가 비밀이 많았다는 뜻이겠지. 보통 사람들에게 드리워진 미술시장의 진입장벽을 보기좋게 부셔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기 짝이 없었다. 비밀스런 세계의 진면목을 알아간다는 만큼 흥미진진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거기에 저자가 끊임없이 좋은 비평가란, 좋은 큐레이터란, 좋은 작가란, 이라는 질문을 해댄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 결코 2류에 야합하지 않겠다는 결심같아 보여서 말이다. 근본을 잃게 된다면 결국 길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미술계의 뒷모습, 뒷담화,속사정등을 알게 되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해서 이 여름에 조금은 지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강추~! 작가가 워낙 유머감각과 통찰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아마도 짜증나는 이 여름을 잊는 독서로는 딱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