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살의 건축가 승민은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묘령의 여인이 자신을 아는척 하자 당황한다. 누구셔요? 라는 물음에 자신보다 더 당황하는 여인, 그녀는 자신을 서연이라고 소개하면서, 어떻게 나를 잊을 수가 있냐고 서운해 한다. 드디어 그녀가 누군지 알아본 승민은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묻고, 집을 지어 달라는 말에 난감해 한다. 자신은 아직 누군가의 집을 맘대로 지어줄만한 연대가 되지 못했던 탓이다.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음에도 그가 아니면 싫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는 서연, 결국 그녀의 바람대로 승민은 제주도에 있는 땅에 그녀의 집을 지어 주기로 결정을 한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졌고, 3년전 의사와 결혼했다고 말하는 그녀, 승민은 그녀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막연한 저항감을 느끼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뜨악해 하는 그와 달리 적극적으로 그와 친한 척을 하는 서연, 둘을 지켜보던 사무실 후배는 묻는다. 두 분 어떤 사이시냐고? 이에 승민은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데...




90년대, 대학 신입생이던 승민은 건축학 개론 시간에 늦게 들어온 여학생에게 눈이 간다. 그녀가 바로 음대생인 서연, 왜 음대생이 건축학개론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던 남학생들은 그럼에도 여자와 함께 강의를 듣는다는 사실에 저의기 만족한다. 교수로부터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탐방하라는 말에 집 주변을 돌아보던 승민은 마찬가지 이유로 동네를 순찰중이던 서연을 만나게 된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그 동네에 살고 있다는 서연은 자신은 이곳을 잘 모르니 숙제를 같이 하자고 승민에게 제안한다.만나자 마자 죽이 잘 맞아 함께 돌아다니던 둘은 어느새 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승민은 난생처음 찾아온 사랑에 설레면서도 어떻게 서연이 받아들일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승민의 선배를 짝사랑한다고 말하는 서연, 강남에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승민은 점차 주눅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한 학기가 끝나가는 겨울쯤, 승민은 마침내 고백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의 호기는 그만 술에 취해 선배의 차에서 내리는 서연을 보는 순간 쪼그라 들고 마는데...



   <연애의 달인 납뜩이와 함께.승민이는 지금 연애 상담중...>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라는 생각을 되새기게 하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이 영화가 첫사랑을 소재로 한것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풋풋할 수 밖에 없는 첫사랑을 오해하거나, 과장하거나, 불쾌하게 비유하거나, 더럽히지 않을까 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각자의 첫사랑이 다들 다른만큼 얼마든지 다른 변주들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건 몰라도 유아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나 첫사랑을 유린하는 것만큼 불편한게 도 있을까. 그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이 영화 역시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보고난 지금 든 생각은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깔끔하게 첫사랑을 그려줘서, 더럽거나 불쾌하거나, 저질로 그린게 아니라, 그럴듯하게 그리고 포장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그려줘서 고맙다고 말이다.첫사랑이 때론 불쾌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세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나이때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승민이 서연을 오해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게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그때, 그래서 승민은 서연의 마음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15년 후 그녀가 나타나 진심을 토로하기 전까진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모두에게 첫사랑은 아픈 사랑으로 남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서로가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이해력을 지닌 연령대라서 말이다. 사회에 대한 것도, 자신에 대한 것도, 상대에 대한 것도...정확한 이해가 불가하기에 결국 사랑함에도 오해로 끝을 맺을 수 밖엔 없었던 관계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해만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사랑했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잊어 버리고 말이다.


그렇게, 15년전 오해로 멀어지게 된 두 연인이 드디어 만나 회포를 푼 것에 대해선 반갑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긴 했다. 서연은 왜 첫사랑에 그처럼 집착하는 것일까 라는...그녀의 인생이 하도 안 풀리다 보니, 잘못 채워진 첫 단추가 생각났던 것일까? 어쩌면 35살이 되도록 첫사랑을 못 잊는다는 자체가 잘못된 인생이 아닐런지...첫사랑은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고, 우리가 첫사랑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게 된 그 순간이 아니겠는가. 첫사랑이 그렇게 깨져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 첫사랑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가 자신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사랑을 한다는 건 무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첫사랑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안스러운 사람이 아닐런지. 고등학교 시절, 늘 첫사랑 타령을 하던 선생님이 떠오른다.그녀는 50이 넘어서도 그 남자를 잊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 시절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도 그녀를 그만큼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중년의 선생님을 보면서 짠했던 기억이 난다. 극중이지만 서연이 이제는 첫사랑을 잊을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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