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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맨
폴 진델, 정회성 / 비룡소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배우 지망생인 미소년 존과 작가 지망생인 소녀 로레인은 우연잖은 계기로 친구가 된다.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강박적 청결 주의자 엄마, 남편에게 배신당한 과거를 잊지 못하고 이를 갈며 살아가는 간호사 엄마. 그렇게 예사롭지 않은 부모를 둔 덕분에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두 사람은 현격한 비주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잘 이해한다. 방과 후 장난 전화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던 그들은 전화번호부에 쓰여져 있는 이름 하나에 주목하게 된다. '안젤로 피그나티" 그에게 전화를 건 로레인은 장난전화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 받는 아저씨에게 놀라고 만다. 더욱 더 놀란 것은 그들이 장난전화 용건으로 만든 재단 기부건에 대해 그가 흔쾌히 기부할 의사를 보였다는 것, 장난은 여기서 그만 두어야 겠다고 생각한 로레인과 달리 존은 공짜돈을 받아 내기로 결정을 한다. 결국 아저씨의 집 앞에 서게 된 둘은 자신들은 진심으로 반기는 그를 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자신들의 부모도 그렇게 자신들에게 환대를 해준 적이 없건만, 이 아저씨는 어떻게 된 사람이냐? 처음엔 그를 의심하던 둘은 점차 그 사람이 진짜로 선량한 사람이며 동시에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외로운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어때서 라고 생각한 둘은 점차 자칭 피그맨 아저씨와 같이 하는 시간을 늘리게 된다. 그들에게 무엇을 하건 아까운 줄 모르고 흐믓한 마음으로 내주는 피그맨 아저씨, 존과 로레인은 난생 처음 자신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어여쁘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하지만 좋은 시간들이 어디 그렇게 오래 지속되기가 쉽겠는가. 셋 사이에 서서히 싹트던 우정은 피그맨아저씨의 심장 발작 이후 집 열쇠를 맡게 된 존이 친구들을 불러 들이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데...
아내와 사별한 뒤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피그맨 아저씨와 집에 마음을 두고 싶어도 두지 못해 방황하는 두 청소년들의 아슬아슬한 우정을 그려낸 청소년물이다. 청소년물답게 그 나이쯤에 갈등할만한 고민들을 잘 포착한 것이 눈에 뜨인다. 60년대 만들어진 책이라고 생각하면 당시로썬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솔직하다는 평을 받았을거란 짐작을 하게 한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깨진 가정, 불우한 환경에 시달리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흔적이 이 책속에 고스란히 남겨진게 아닐까 싶다. 알콜중독자 아버지나 간호사 엄마에 대한 묘사가 섬뜩하리만큼 사실적인걸 보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 거의 사실일 듯...방황하는 두 청소년이 자신을 반겨주는 어른을 만나 조금은 안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성장소설이라고 할만하다. 다만, 마무리가 산뜻하게 지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은 의아했다. 왜 그렇게 짓다만 것처럼 마무리를 서둘러 끝내고 말았을까. 초반에서의 능숙한 이야기 구성에 비하면 후반의 마무리가 다소 균형이 맞지 않는다. 60년대 만들어진 소설이 아니라면 지금은 별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마디로 후졌단 뜻... 주인공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만들어 낸 것을 생각하면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었다.
그럼에도, 한가지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두 아이가 피그맨 아저씨와 친해지게 된 계기를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단 하나다. 피그맨 아저씨가 그들을 보면 진심으로 반기고 환대하며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사주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았다는 것. 단지 돈때문이 아니다. 피그맨 아저씨가 해준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준 것이다. 그냥 너희가 존재해서 내 곁에 있어서 기쁘구나 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그의 외로움에서 기인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그의 그런 태도는 아이들의 냉소적인 마음을 금새 녹여 버린다. 피그맨 아저씨가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그는 아이들을 이용할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과연 이 세상에 아이들을 이용하기 위해 감언이설로 아이들을 속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아찔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는 원인은 바로 그들의 가정에 있지 않은가 잘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