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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ㅣ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스탈린 치하의 소련, 국가 안보부 요원 레오는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사전에 제거한다는 사명하에 일을 하고 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개인의 이해쯤은 무시해도 좋다고 말하는 국가의 사명에 철두철미하게 동조해야 하는 것이 그의 공식적인 입장, 하지만 일을 해나감에 따라 그는 점점 그 대의라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어느날 기찻길에서 소년이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자 부모들은 아들이 살해되었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범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국가에서 살인 사건이 왠 말? 당국은 서둘러 사건을 사고사로 결론짓는다. 거기에 선량한 수의사가 미대사관 직원의 동물을 봐주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리다 자살하는 사건을 목격하게 된 레오는 본격적으로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런 그를 냉랭하게 바라보는 아름다운 아내 라이사,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하는 짓에 신물이 나있다. 레오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닌 결과로 부부가 되긴 했지만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던 라이사는 국가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냉혈한 남편에게 소름이 끼친다. 두 부부의 갈등은 레오가 동료의 음모로 지방으로 좌천 되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면서도 부부로 함께 살아는 가고 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 지방에서 민병대 소속이 된 레오는 마을에서 아이들이 살해되는 사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시체에 남긴 흔적이나 수법, 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짐작한 레오는 더이상의 피해자가 나오는걸 막기 위해 범인을 잡아야 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는 공식적으로 살인 사건이 벌어질 수 없는 나라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가 연쇄 살인이라고 주장해도 아무도 믿지 않자, 그는 결국 자신의 가장 최고 적이라고 할만한 민병대장 네스테로브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저 전국에 걸쳐 비슷한 유형의 살인사건이 있는지만 조사해 달라는 부탁에 어렵사리 승낙을 해버린 민병 대장은 곧 놀라운 증거앞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전국에 걸쳐 43명의 살인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레오가 모스크바에서 맨처음 발견한 살인 사건을 포함하면 적어도 44명의 아이들이 희생된 것이었다. 거스릴 수 없는 증거를 앞두고 결국 레오와 라이사, 그리고 민병대장은 이 살인범을 무슨 수로든 잡아야 한다는데 동의를 한다. 이에 셋은 죽음을 불사한 살인범 찾기에 나서게 되는데...
중반까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 조금 지루했었다. 중반 이후로 가면서 이야기에 탄력이 붙으면서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 이 책을 내가 세번이나 들었는데, 중반을 넘긴게 이번이 처음이니 말이다. 그만큼 초반 몰입도가 그리 좋지 않다는 뜻이다. 왠지 재밌을 것 같지 않은 초반을 넘어가면 중반 이후로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문제는 거기까지 기다릴 정도로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 해서 후반을 읽어가면서 이왕 이럴 거면 진작에 이랬음 좋잖아? 라면서 불평을 해댔다.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는 여려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미심쩍은 인물에 대한 개성이 그제서야 자리를 잡게 된다는 것, 그전까진 누가 주인공인지, 악당인지가 불분명했었는데, 후반을 지나면서 대략 윤곽이 드러나는 점이 읽는 속도를 높이가 하고 있었다. 더불어 스탈린 치하라는 공포정치 속에서 선량한 인간이라도 상황에 따라 악해질 수 밖엔 없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곳에서 약간의 동정이나 선함은 곧바로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치부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해서 진실을 찾아가기 보단 국가의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정보기관에 속해 있던 레오가 결국 자신의 인간성을 쫓아서 국가를 배신하게 되는 과정이 박력있었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대단한 용기니 말이다. 전체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용기, 그것도 자신의 이익이 아닌 전체의 이익과 양심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추리 소설과 달리 인간에 대한 통찰 역시 들어있던게 아닐까 한다. 더불어, 범인을 잡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모습이 눈물겹기 이를데 없었는데, 솔직히 이걸 영화하 한다는 것에 대해선 반대하고 싶었다. 영상으로 보게 되면 너무 잔인하게 보일게 틀림없어서 말이다.
이야기의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후반을 넘어서 특유의 몰입도로 독자들을 사로잡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는데, 그건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잔인해서였다. 인간의 내면까지 억압하는 국가 체제는 그 어떤 악당보다 무시무시했고, 거기에 놀아나는 인간들의 모습은 지옥에서 온 악마보다 끔찍해 보였다. 단지 혈육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살인을 해대는 연쇄살인범의 존재 역시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세상에 미친 넘들이 많다고는 하나, 과연 단순히 그런 이유로 살인을 한다는게 말이 되는 것일까? 더군다나 그렇게 잔인하게 말이다. 결론을 보고 나니 조금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쉽게 연쇄 살인범을 잡는다는 것도 그랬고. 과정 과정들을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물론 존경스러울 정도였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조금은 극단적으로 치우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했다. 파리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쏜 듯한 찜찜한 기분이랄까. 하여간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음에도 그다지 입맛이 개운치 않았던 소설, 차일드 44였다. 난 그 전에 이 책을 보면서 왜 제목이 차일드 44일까 궁금했었는데, 적어도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다. 차일드 44는 희생자의 숫자를 일컫는 것이었다. 알고나니 그다지 어려울게 없는 단순한 이유였는데, 다 읽기 전에는 정말로 무슨 뜻일까 했다. 이젠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