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신뒤 올리버는 아버지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 I 'm gay " 라는, 그것도 그의 나이 75세에...  44년의 결혼생활 내내 그랬었다면서, 고치려 노력을 했지만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버지 할, 그의 말을 들은 올리버는 그제서야 부모님의 냉랭한 결혼생활이 이해가 된다. 서로를 좋아하고 정중했지만 어딘지 연인같지 않았던 둘, 올리버는 불행했던 엄마를 위해 아버지를 미워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아버지를 응원해 줘야 하는건지 당혹스럽다. 흥미로운 것은 게이 선언을 한 뒤의 아버지의 태도였다. 그가 놀라 자빠지게도 아버지는 점잖은 전직 박물관장의 허물을 벗어던지곤 너무도 신나게 게이 생활에 돌입하신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아오셨을까 싶게 활기차게 게이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올리버는 생소함과 동시에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게이 커뮤니티에 가입하면서 활발하게 친구를 심지어는 애인도 사귀던 아버지의 말년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커밍 아웃 4년만에 폐암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암 선고를 받은 뒤에도 여전히 기운차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던 아버지는 결국 암에 져서 돌아가시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가 키우던 개 아서와 함께 쓸쓸하게 살아가던 올리버는 슬픔이라는 주제에 천작해 더 이상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 그를 딱하게 여긴 친구들이 그를 파티에 끌고 가보지만서도 그의 우울함은 감춰지지 않는다. 그런데 뜻밖의 행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프랑스 배우인 안나가 그를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일 때문에 호텔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녀는 자유스러움과 사람을 잘 이해하는 통찰력을 가진 여자였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닮은 꼴인 두 사람은 곧 서로에게 빠지고 만다.  38살에 사랑에 빠진 것이 다행스럽다긴 보단 당황스러운 올리버는 그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어려워 한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엄마와의 가혹한 관계를 쭉 지켜봐왔던 관객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버지가 말년에 보여준 애인과의 열정적이고 우아했던 애정생활을 기억하던 그는 어떻게 아버지가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지가 의아할 뿐이다. 아버지가 보여준 용감함을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그는 안나와의 동거를 감행하지만, 결국 그녀의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별을 선언한다. 이별의 고통에 절절매던 그는 드디어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되는데...



      

< 아서가 올리버에게 안나와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는 장면. 아서는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종종대며 걸어간다.>




" 이제 어쩌지? "  " 나도 모르지."  "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 영화의 제목이 참으로 적절하다는걸 알게 해주는 마지막 장면>


관계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잘 아는 남자가 있다. 부모의 고통스런 관계를 보면서 자라온 탓에 사랑은 그저 고통의 시작일뿐이라고 그는 믿는다. 부모 모두 착한 사람이었다는걸 잘 아는 그로써는 그들의 불행을 사랑탓으로 밖에 돌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딱히 불행하고자 작정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의 게이 선언 후, 그 둘이 맞지 않았던 것이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란 걸 안 다음에도, 그의 믿음은 쉽사리 깨지질 않는다. 고통스러운 관계를 어쩔 수 없어 지속하느니 홀로 있는게 낫다고 생각하던 그는 안나라는 여인을 만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흔들린다는 것이 기쁘기보단 당혹스러운 올리버,  그가 관계에 대해 여전히 견고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이 모든 것이 안 좋게 될 거라는 그의 믿음은 안나의 찌프린 표정 하나에도 전전긍긍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사랑한다면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결국 사랑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오래도록 고통 받느니, 희망을 버리고 그만 두는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였을수도 있지만서도... 그렇게 연인을 떠나 보낸 그는 아버지의 말년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뜻밖에도 아버지가 자신에게 교훈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과연 그건 무엇일까?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인데 의외로 괜찮았다. 우선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눈빛을 바꾸는 것만으로 슬픔을 표현해내던 이완 맥그리거는 그동안 그에 대한 나의 편견을 일거에 불식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말년에 커밍 아웃을 선언한 뒤 진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역을 멋들어지게 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나이가 드셨어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트랩 대령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시더라.  어린 시절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열혈 팬이었던 나로써는 그의 출연이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외 안나 역의 멜라니 로랑은 몇 년전 본 <바스터즈>에서 낯을 익힌 여배우인데, 여전히 아름답고 연기도 안정적이여서 좋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등장인물로 강아지 아서가 있다. 주인공인 올리버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둘의 대화가 정말로 웃긴다. 보면서 아서와 올리버와의 대화가 조카와 내가 나누는 대화랑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놀랐는데, 어쩌면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유가  아이 대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심각하거나 아니면 한없이 추하고 경박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소재였음에도, 깔끔하고 유머스럽게 풀어간 점도 맘에 든다. 원작자 자신의 이야기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구성이 참신한 소설을 보는 듯 신선했다. 억지로 짜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 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동성애와 죽음을 우아하게 다뤄 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했다. 두 주제에 대해 두려움이나 편견을 더하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나 아버지가 게이라는걸을 알게 된 후 주인공이 게이문화에 대해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 하는 과정은 감동적이더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러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하긴 75세의 나이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은... 용감한 아버지와 이해심 넓은 아들 모두에게 박수를. 그리고 그들의 서툰 시작에도. 무엇보다 끝만 생각하지 말라고, 일단 시작해 보라는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을 보낸다. 가보지 않는다면 그 끝이 어떨지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모른다 해도 괜찮다고, 이 영화는 그걸 말하려 했던게 아닐까 한다. 그러니 지레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초심자들이라면 새겨 들어봐도 좋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