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의 문제
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윤정숙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부커상 수상작이 아니라면 결코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부커상인데...' 를  되뇌이면서 내려놓고 싶어하는 나를 얼러가며 읽어낸 책이니 말이다. 그렇게 갖고 있는 인내심을 몽땅 내걸고 끝까지 읽어낸 소감은? 앞으론 부커상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 정도? 아무리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해도 모든 책이 다 살만 루시디의 < 한 밤의 아이들>이나 아이리스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아이리스 머독이 <바다여 바다여>로 상을 타긴 했지만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을만한 작품은 아니다. 상이 작품성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말씀. 물론 대개의 경우엔 그렇기도 하기에 기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겠지만서도... 하여간 이 책은 한국인인 나에겐 별로였다. 내가 영국인이었다면 달랐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유대인이었다면 더욱 더 다르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줄기차게 유대인과 비유대인인에 대한 지루한 넋두리를 늘어놓는 책이니 말이다. 언젠가 일본 작가가 자신의 나라를 설명하면서 " 자민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거의 취미로 삼고 ' 일본인론'을 다룬 책이 언제나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는 자의식의 왕국 " 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이여~~~ 기뻐하시라. 당신들에게 감히 대적할만한 상대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들이 바로  "유대인"이다. 어찌나 자신들에게 관심이 많고, 수많은 사람들의 엇갈린 평가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던지...끝내 질리고 말았다. 유대인이라는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고, 그렇게 관심을 많이 받아야 하고, 왜 그렇게 갖가지 분석의 틀을 들이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 만약 내가 유대인이라면 또 모르겠지만서도, 전혀 나와 상관도 없는 유대인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끝도 한도 없이 읽으려니, 그만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딱히 켕기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어쩌란 말이냐. 난 유대인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진짜 부커상만 아니었다면 그쯤해서 포기하고 말았을 거다. 다 그 놈의 왠수같은 부커상 때문에...


언제나 말이지.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호감을 주기란 어렵다. 그래, 정 내게 그렇게 네 이야기가 하고 싶다면, 이란 생각으로 약간의 아량과 드넓은 인내심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상대가 그걸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생각한거지. 결국 그 이야기는 끝도 한도 없이 이어진다. 어디서 끊어줘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그러다 보면 한 두 문장 정도는 괜찮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착한 마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데, 결정적으로 이건 어째 이야기 자체도 재미가 없는거다. 그러게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을 물렁하게 보면 큰일난다. 그들이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경우는 드무니 말이다. 어쩜 없는지도 모른다. 가끔 가다 쓸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재밌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많은 것들을 알려 주는 지표니 말이다.


하여간 결론만 말하면 이 책 지루했다. 그나마 교훈이라도 얻을까 해서 끝까지 읽어봤지만 그냥 지루했을 뿐이다. 여자를 밝히는 세 남자가 등장한다. 90평생 한 여자만 사랑한 전직 언론인 리보르, 성공한 대중 철학자이자 유대인 바람둥이인 샘 핑클러,미남임에도 여자와 관련된 문제엔 늘 마가 끼는 줄리언, 그렇게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리보르의 제자로 동창생인 샘과 줄리언은 친구지만 각기 다른 인생 역정을 거치면서 점차 서로에게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거침없이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실은 공허밖엔 남은게 없는 샘, 그런 샘을 사사건건 질투하다 그의 아내와 바람이 난 줄리언, 연예인 기자를 하면서 수많은 여자들을 거쳤지만 일평생 아내만을 진심으로 사랑한 리보르는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자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한다. 결국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여자 없는 공백기를 맞게 된 셋은 자신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자신들이 삶을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잘못 됐다면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게 아닐까. 그럴 수 있다면 그런 기회와 용기는 어디서 찾아지게 되는 것일까? 다만 문제는 그들이 인생을 되돌리기엔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다는 것. 어디에서도 위안거릴 찾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의 방황은 계속되는데...


중년을 넘어선 세 남자의 일상이 넋두리와 함께 끊임없이 늘어지던 소설이다. 주인공 세 남자가 다들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는데서 일단 소설이 재미없다. 뭐, 어떻게 보면 그들이야말로 하나도 가감하지 않은 실제적인 영국 남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서도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놈의 삶은 얼마나 재미없는 것이냐.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 정도로 끔찍하진 않던데... 그렇게들 무책임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지루하게 주절대지도 않았으며,여자들에게 줄기차게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살면서도 그래도 나름 재미를 추구하면서 살더라.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재밌었다. 이렇게 끔찍하게 지루하지 않았단 뜻이다.


어떻게 소설속 주인공들이 내 주변 평범한 사람들보다 흥미가 없을 수가 있을까? 그게 우선 제일 의아하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거기에 성공한 샘을 둘러싼 줄리언의 질투가 늘어지면서, 그가 유대인이여서 행복한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줄리언의 끊임없는 헛소리를 듣는 것도 짜증스러웠다. 도무지 그게 행복이랑 무슨 관계가 있느냐 싶어서다. 그냥 인간이면 되잖아. 네가 불행한건 네가 유대인이 아니라서가 아니라--즉 좀 특이한 민족의 구성원이 못되서가 아니라--그저 네가 쭉정이 같은 찌질한 인간이여서 그렇다는걸 인정한다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유대인을 동경하면서, 유대인들이 정작 자신의 민족을 갈구는 것을 경악스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유대인이 되면 어떻게 행복해지지 않을까 궁리를 하는 것보단 훨씬 더 생산적일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결국 이 책은 영국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영국인이자 유대인이자, 그리고 왠지 늘 자신은 소외받고 피해를 당하는 주변인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같은 국적을 가지고 같은 언어를 쓰고는 있지만 늘 어딘지 소속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에게. 다시 말해 이 책의 제목은 전적으로 틀린게 아니다. 영국 남자들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니까. 이를 뒤집어 해석해보면 한국 여자에겐 별로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 된다. 그래도 영국 남자들의 문제들을 들여다 보면 남자들에 대한 보편적인 어떤 통찰력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서도, 아쉽게도 그런건 없더라. 그저 주구장천 영국 남자들의 문제만 있었다고 보심 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의문을 표하심 안 된다. 그럭저럭 잘 쓴 책이긴 했다. 무리없이 유려하게 잘 써내려간 책이긴 하다. 다만 불만이라면 치명적이게도 매력이 없다는 것이지. 잘 쓴 책이라면 매력 정도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들어도 되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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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8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사 2012-06-28 18:09   좋아요 0 | URL
진짜로 더 멋있는 영국 남자들도 많은데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휴 그랜트긴 하네요.
워낙 유명하셨잖아요. 매력적이기도 하고...언젠가 오프라 쇼에 나온걸 본 적이 있는데, 의외였어요.
그런 비주얼에 꽤나 냉소적이고 삐딱한 유머를 거침없이 날려 대서요. 생각지 못한 매력을 가진 배우더군요. 그렇다고 사귀라면 손을 내저을 테지만서도요. 아무리 매력이 넘쳐도 바람둥인 별로더라구요.

바다는...뭐,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것보단 "그물을 헤치고" 를 더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도 만만찮은 책이긴 하죠. 제 블러그를 찾아보심 두 권의 리뷰가 있을 거여요. 머독이 진짜 글을 잘 쓰긴 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사랑스러움은 별로 없죠. ㅋㅋㅋ 이런 말을 하다니. 머독이 들었다면 경을 치시겠네요.
하여간 전 머독보단 살만 루시디를 더 좋아해요. 물론 그것도 과거의 루시디를 말하는 것이지만서도요.
루시디도 예전만 못하더라구요. 뭐, 아직 돌아가신건 아니니 앞으로도 희망은 버리고 있진 않치만서도, 어쨌거나 실망스러워요. 좋은 작품 쓰시길 바랐는데. 본인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꽤나 트라우마가 되긴 한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