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 이네즈와 함께 파리에 놀러온 길. 소설가인 길은 파리의 모든 것에 흠뻑 빠지고 만다. 여기서 글을 쓰면 잘 써질 것 같다면서 아예 이사 오자고 조르는 길, 하지만 파리가 그저 예쁜 관광지일뿐인 이네즈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자신이 너무 늦게 태어 났다면서 파리의 20년대를 동경해 마지 않는 길, 아부도 할 줄 모르고 미래도 불투명한데다 이단아 분위기를 팍팍 풍겨대는 길을 이네즈의 부모는 탐탁치 않아 한다.우연히 이네즈의 친구인 폴 부부와 조우하게 된 길은 자신이 박학다식하다는걸 기회가 있을때마다 선전하는 폴이 못마땅하다. 거기에 더 맘에 안 드는 것은 밉살맞은 폴의 말을 교주의 그것처럼 떠받드는 자신의 약혼녀. 결국 일행과 떨어져 홀로 파리의 밤 거리를 산책하게 된 그는 길을 잃고 헤매기에 이른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던 그 앞에 멋진 푸조차가 서더니 타라고 손짓을 한다. 얼떨결에 차에 오르게 된 길은 자신을 태운 부부가 본인들을 피츠제랄드 라고 소개하자 어안이 벙벙해진다. 하지만 그 피츠제랄드가 까페에 죽치고 있던 헤밍웨이마저 소개하자 그는 흥분에 몸을 부르르 떠는데...


존경하는 헤밍웨이를 만난 길은 그에게 자신의 소설을 읽고 평가해달라고 간청한다. 이에 단호하고 박력있게 거절하는 헤밍웨이. 자신은 남의 책을 제대로 평가할만큼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면서 거트루드 스타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이에 뛸 듯이 기뻐진 길은 원고를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까페를 나온다. 나오고서야 약속 장소를 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까페로 들어가려한 한 길은 자신이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그는 헤밍웨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다음 날 비정상적으로 들뜬 길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네즈를 남겨두고, 그는 다시 20년대의 파리에 도착한다. 드디어 그 위대한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게 된 길은 그녀가 자신의 원고를 봐준다는 말에 신이 난다. 거기에 그녀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사내가 피카소라니...피카소의 그림을 둘러싸고 비평을 해대던 거트루드는 길에게 피카소의 애인인 아드리아나를 소개한다. 그녀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왜 많은 화가들이 그녀를 그리고 싶어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아드리아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길은 자신이 그녀에게 끌린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데...


 밤이 되면 20년대로 가는 차를 탈 수 있는 파리라. 환상적인 발상이다. 그게 얼마나 신나는 일일지 이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단지 우리가 파리의 20년대를 동경해 보거나, 그 시대를 재현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시대를 방문해 그들을 만나본다는 설정이니 말이다. 단지 설정 하나만으로 그 시대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질 수 없었다. 해서 밤이면 밤마다 새앙쥐가 창고에 숨겨둔 치즈 먹으러 달려가 듯,  그렇게 길이 파리 밤 거리로 나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거부하기 힘든 유혹 아니겠는가. 아니, 거부하면 안 되는 유혹이던가. 하여간 20년대, 당시는 몰랐겠지만 지금은 전설로 남은 사람들이 다 파리에 모여 있었다. 피츠제랄드 부부, 헤밍웨이, 피카소, 거트루드 스타인, 달리, 맨 레이, T.S. 엘리어트 ...이름만으로도 알만한 사람들이다. 그때 파리는 그들이 막 자신들의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을때 서로를 지탱해주던 장소였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서도, 당시 파리엔 그런 에너지가 충만했었다. 그리고 후에 그 에너지가 사방팔방으로 싹을 튀워 나가 거대한 문학과 예술의 사조가 되었지만서도. 그런 면에서 소설가를 지망하는 길이 그 시대를 갈망하고, 동경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파리에서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국적도 쓰는 언어도 달랐던 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을까 ... 그리고 전설로만 남은 그들의 애정사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기타등등...  가장 흥미로운 시대, 파고 또 파도 여전히 호기심이 가시지 않은 시대, 해서 길은 기꺼이 그 시대로 낭만적인 밤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과연 거기서 그는 무엇을 얻게 될까?


파리의 까페, 비오는 거리, 낙조, 매혹적인 밤 거리 등을 아무말 없이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렇게 파리가 아름답구나, 라는걸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이 말이다. 하지만 파리에 대한 예찬이 거기서 멈출거라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오히려 전희 정도였다고 보면 된다. 그 이후로도 감독은 주구장천 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낭만이 가득한 시선으로 보여주니 말이다. 일단 감독은 모네와 베르사이유 궁전과 예술품들을 보여주면서 파리의 예술성에 감탄하게 하더니만, 그것으로도 모자라 파리가 가장 화려했다고 여겨지는 20년대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 정도되면 파리를 사랑하고 경외하지 않게 되기라 어렵다. 아니, 그보단 왜 사람들이 파리 파리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고나 할까. 해서 파리의 모든 매력들을 영화 하나를 보면서 만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장점이다. 거기에 배우들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는데, 미래의 장인을 앞에 두고 공화당 우익(장인의 정치성향)들을 치매 광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길 역의 오웬 윌슨은 삐딱하지만 사랑스러운 소설가의 모습을 깜찍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거기에 정말 그럴 듯하게 헤밍웨이를 연기하던  코리 스톨은 설득력에 부족함이 없었다. 늙은 헤밍웨이만 봐서 진짜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가 그랬을까는 모르겠지만서도, 진짜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으니 말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을 연기한 캐시 베이츠야 뭐, 말해봤자 입만 아픈 배우고, 달리는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나 아드리아나를 연기한 마리옹 꼬티아르 역시 제 역활을 확실히 하고 있었다. 다들 모이니 매혹적인 20년대를 그려내기에 부족함이 없더라. 한없이 낭만적이여 보이는 그 시대를 말이다. 덤이라면  감독이 그 시대를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한다는 것이겠지. 우린 그 당시를 낭만적이고, 좋았던 시대로 여기지만서도, 실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말이다. 아마도 그게 세상사인 것 같다고 우디는 넌지시 일러준다.

감독이 우디 앨런이다. 그런데 그도 늙으셨는지, 누가 미리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디의 작품인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여겨지는 날카로움이 사라져서 말이다. 다른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었지 싶다. 그렇게 별로 우디의 색깔이 진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서도, 그래도 잘 만든 영화긴 했다. 단지 중반을 넘어서 살짝 힘을 잃어간다는 것과 파리의 낭만을 지나치게 미화한 점, 전설적인 소설가와 화가들을  주마등 스치듯 보여주기만 한다는 점이 별로였다. 하긴 그 모든 사람이 한편의 영화에 출연하는데 깊이있는 대화를 나눈다는건 무리겠지. 그런 점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이끌어 내고 상황을 이어나갔다는 자체가 앨런이 대단한 이야기꾼임을 증명하는게 아닐까 한다.

우디 앨런. 아마 그도 죽고 나면 헤밍웨이나 달리처럼 전설로 남게 될 것이다. 후대인들은 전설이 된 그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 대단한 감독이었다고.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운이 좋을까 라고. 그를 더 잘 알지 못해서 안타깝다고...이를 짐작하고 있었던지, 우디는 말한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나고 나서 전설이 될지 모르지만서도, 당시 그들은 그걸 몰랐다고. 그저 삶을 살아내고 있었을 뿐. 그러니 너희들도 너희만의 삶을 살아내고, 전설을 만들어 내라고, 전설과 낭만은 결코 멈추지 않은 시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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