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을 따라 훗카이도 츠카우라로 내려온 리에는 도야코 호수 근처에 까페를 연다. 까페 이름을 <마니 까페>라 지은 부부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소박한 일상을 묵묵히 일궈 나간다.  그런 그들에게 까페에 온 손님들은 소중한 이웃이 되기도 하고, 동료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욕심없어 보이는 부부와 손님들 사이의 소통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주면서 삶의 평온함을 일깨워 주고 있던 영화다.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남편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빵을 만드는 곳이라.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하고 싶다는 부부의 바람은 일단 시작부터가 순조롭다. 2층에 손님이 묵을 방까지 마련한 그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미리 척척 만들어 주는 눈치의 달인 유리 공예가 요코씨, 리에를 볼때마다 정말 아름다우십니다를 연발하는 우체부 총각, 매일같이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아베씨, 그외 세상에서 가장 먹음직스런 야채를 길러내는 농부 부부등 리에와 미즈시마 부부의 일상은 친숙한 사람들이 늘어남과 함께 풍성함으로 채워진다. 한적한 시골 호수 옆,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있는지조차 알기 쉽지 않은 곳이지만, 그럼에도 부부의 까페 손님은 끊이질 않는다.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수다스럽지 않은 부부는 그럼에도 자신의 까페를 찾아온 손님들의 사연에 예기치 않게 끼여들게 된다. 남자에게 차인 뒤 까페에 놀러와서는 땡깡을 부리는 도시 아가씨,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엄마를 그리워 하는 소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살하기 위해 신혼여행지로 찾아온 노부부등 손님들의 사연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불행하다는 것과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다는 공통점을 가진 그들은 "마니 까페" 의 부부가 내놓은 빵과 음식을 먹으면서 점차 안식을 찾아간다. 늘 남을 배려하는 착한 성품에 부족할게 없어 보이는  삶임에도 종종 까닭없이 우울함에 젖던 리에는 드디어 자신의 행복의 열쇠를 찾아내게 되는데...


맨처음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우리보다 착한걸 더 좋아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하면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일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 진짜 착하다. 착한걸 좋아한다. 심지어는 착한 것에 맹목적이다. 그게 나쁘냐고? 그럴리가. 착한게 싫을리는 없지 않는가. 오히려 착함에 극한에 가까운 신 경지를 개척하는 그들을 볼때면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다만 문제는 그게 종종 지나쳐서 진심이라기 보단 가식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즉,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좋은 인간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메뉴얼에 따라서 말이다. 자신의 본 마음을 표현하기 보단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하고, 또 그렇게 착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어쩜 일본 사회의 아킬레스 건이 되는게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경증적인 사회의 전형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폭발하면 어떻게 될거라 생각되시는가? 집단 광기로 이어진다. 아마 기회만 주어진다면 착한 것의 정반대로 순식간에 달려갈 것이다.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건강하지 않은 사회, 비밀이 많은 사회. 언제 위선의 가면이 벗겨질지 모르는 사회, 이 영화는 그러한 일본사회의 단면을 살짝 들여다 보게 하고 있었다.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물론 나로 하여금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한 것은 이 영화가 단순히 잘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렇게 꼼수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영화를 만들다니, 그건 그만큼 이 영화에 머리를 쓰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감성에는 충실했을지 모르나, 지적으로는 어찌나 게으르던지, 온갖 클리쉐들이 부끄러운줄 모르고 뻔뻔하게 총출동하더라. 오죽하면 나중엔 화면을 향해 팝콘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작작들 좀 하라고. 이 정도면 말이지, 배경으로 나온 자연에 미안한거다. 안구가 절로 정화되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면서 역겹다는 생각을 하는게 쉬운건 아니니 말이다. 하여간 인간이 문제라니까. 그렇게 간만에 맘에 안 든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대충 적어 보자면 이렇다.


일단 클리쉐 투성이다. 동경에서 놀러온 도시 여자는 오자마자 자신이 남자에게 차였다면서 동네방네 떠들어 댄다. 그렇게 시건방을 떠는 여자와 시골 총각은 하루만에 사랑에 빠진다. 귀가 밝다고만 이유를 밝힌 유리 공예가는 사람들이 무언가 필요하다고 말할때마다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준다. 초능력이라고 밖엔 생각되지 않은 능력이다. 아이들을 줄줄이 낳는 농부 부부는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농부는 아마도 얼굴을 찌프리고 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커다란 트렁크를 가지고 다니던 미스테리 아저씨는 결정적인 순간 트렁크를 열고는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이보다 뜨악할 수 없겠다 싶은데도, 뉘앙스를 보니 다들 자랑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정말 함께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 하는 소녀는 리에가 만들어준 호박 수프를 안 먹겠다고 선언한다. 어찌나 연기가 서툴던지, 목석이 연기하는 듯하다. 그래도 뭐, 죽음을 목전에 앞둔 노부인보다는 그래도 나았다.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찌그러져 있던 할머니가 빵을 먹자마자 맛있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어찌나 유치하던지 소름이 돋았다. 내 말하는데 할머니의 소름돋는 연기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잔상이 남을까 싶어 머리까지 흔들었다니까. 트라우마가 되면 곤란하니 말이다. 거기에 왜 할머니가 소녀처럼 행동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복하는게 더 보기 좋은게 아닐까? 왜 할머니가 소녀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스테리 중 하나였다.


아마도 영화를 그렇게 찍을 수밖엔 없었던 것은 감독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예쁘장하고 눈살 찌프릴 일 없으며 마냥 행복해 보이는 유토피아 같은 삶 말이다. 과연 그게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과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영화가 주장하는 대로 행복하기만 할 것인지,내진 과연 이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이 정상적인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비약을 하자면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에 버금가는 인공적인 사회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별게 아닌 것을 대단히 소중한 것인양 말하는 일본인들의 호들갑 역시 점수를 깍아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왜들 그렇게 난리를 펴대던지, 역시 난 무뚝뚝해 보여도 대소사 구분은 할 줄 아는 한국인이 더 맘에 든다.


하여간 이 영화는 영화라기 보다는 한편의 긴 관광지 홍보용 광고나 뮤직 비디오 같았다. 맛있어서 오이씨를 외치는게 아니라, 오이씨를 멋지게 외치기 위해 먹는 듯한 장면들에선 과장된 연기에 짜증이 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바삭 소리가 나게 찢는 장면들도 자꾸 반복되니 싫증이 나더라.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하게 셋팅되어 나온 요리들은 화보집으로 직행해야 할 듯하고, 부부는 하루종일 노동을 하는데도 아무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다, 까페는 늘 깔끔을 넘어 정갈하고, 머리를 자르는데도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무엇을 주문하건" 네, 분부대로 합지요" 라고 대답하는 남편에, 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친절한 이웃들, 멋진 풍경에 맛있는 음식,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요? 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폼만 잔뜩 잡고 있는 영화였지 않는가 한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막 대하고, 그럼에도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한결같이 잘 한다는 설정을 보아하니, 분명 감독이 여자이지 싶다. 나도 여성이지만 말이지, 언제나 남자들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살아도 된다고 믿는 여자들을 보면 당혹스럽다니까. 좀 성숙해도 되지 않나? 알고보면 그게 보기도 좋고 마음도 편한데 말이다. 하여간 이래저래 마음이 들지 않던 영화, 오랜만에 입 맛을 버리게 해준 영화였다. 보실지 마실지는 알아서들 챙기시길. 그런데 나 왜 이 리뷰를 이렇게 길게 쓴거야? 꽤나 열받긴 한 모양이구만...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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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사 2012-06-27 13:59   좋아요 0 | URL
음. 에릭 오르세나의 <두 해 여름>은 저도 읽었어요. 저도 꽤 좋게 본 기억이 있네요. 나중에 에릭 오르세나의 작품들을 다 찾아 읽었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 작품때문인지, 다른 작품때문이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나네요. 하여간 본지 오래되서 내용은 가물가물 하지만서도 말여요. 그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지해서 말해보자면,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보심 되요.
비슷하지도 않다는...특이한 군상도 없고, 새로운 이야기도 없어요. 섬 사람들 이야기도 아니고, 아마 섬이 아닐걸요? 훗카이도가 섬인가요? 하하하...그건 저도 일본은 잘 몰라서리... 하여간 닮은 점 없다는...그렇게 믿으심 될 거여요.

이네사 2012-06-27 14:03   좋아요 0 | URL
책을 찾아보니 <식민지 전시회>였네요. 이 작품을 보고 에릭 오르세나에게 반했었어요.
거기에선가 이런 말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책이 800페이지 정도 넘어가야 이건 좀 읽을만하겠군, 이라고 콘라드가 말했다고 한 거였을거여요. 대충 그 비슷한 말이었는데,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