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을 감은 인간 - 상대의 양면성을 꿰뚫어 보는 힘
리사 맥클라우드 지음, 조연수 옮김 / 토네이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은 간사하다.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때조차 인간은 그렇다. 단지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뿐. 아니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그렇단 증거를 대보라고 ? 뭐, 멀리 갈것 까지도 없다. 그냥 우리들이 인간관계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우리는 우리에게 잘 하는 사람들은 다 착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 불친절하고 무시하며 경멸하는 사람은 못되고, 인간성이 글러 먹었으며, 앞으로 인생에서 좋을게 없을 거라고 미리 단정짓는다. 만약 그들이 그런 불친절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기 시작하면 , 그가 인간 말종이 되는건 시간 문제다. 마음 먹기 달린 것이 아니고. 만약 이런 평가가 한 인간에게 쭉 몰려 있다고 한다면 뭐, 일관성 있는 판단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하겠다. 문젠 종종 우리가 그렇게 명확하지 않은 관계 속에 내던져진다는 것에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고, 어젠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어제 우린 그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랬다면 그런 관계를 맺지조차 않았을테니 말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린 그를 가리켜 성격이 삐뚤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는 곧장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무리 브레이크를 걸어보려 해도 소용없이 말이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건 이미 그들에게 데일 대로 데여서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기소하고, 선고가 내려 버린다. 선고가 내려진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다시 한번 그 사건을 캐보는게 아니라, 선고 결과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다. 시간은 그렇게 미래로 흘러 가는 것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 재심을 신청해도 결과는 마찬가지기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할 필요는 없다고 우리는 속으로 결심하게 된다.


 뭐,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는건 좋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결국  모든 인간관계가 기소될 수 있는 사항에 걸려 버린다는 점에 있다. 사소한에서 중대한 사건까지, 인간 사회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인간관계는 이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날마다 그렇게 극단으로 달려 가는데는 잘못이 없는 것일까? 작가는 여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고로, 극단으로 가는 성향을 조금 조정하기만 하면 모든관계를 그렇게 파국으로만 끝내지 않아도 된다고, 그걸 설명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것이다. 어떤가? 한번 들어봄직하지 않는가?


작가는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한다. 왜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는지에 대해. 난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펄쩍 뛰시는 분들이 혹 있으실지 모르는데, 생각컨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우물안에 앉아 있기 때문에 우물 밖에 나가서 모든 것을 조망해볼 수는 없다. 전적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그게 나쁜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자신에게 객관적이 된다면 과연 누가 타인을 필요로 하겠는가. 모든 문제를 자신이 풀면 그뿐일테니 말이다. 우리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남이 필요한 것이다. 타인이야 말로 본인보다는 객관적일 수 있는 객체이니 말이다.  원래 대체적으로 주관적으로 살게 디자인 된 인간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에 대해선 한층 더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게 어느 정도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성향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걸 뭐라 하긴 그렇다. 나쁘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그런 면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열망이건, 사태에서 쉽게 벗어나고 싶어하는 의도에서이건 간에 우리는 상황을 간단하게 분류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일명 <나쁜 파일> <좋은 파일> 분류다. 좋은 친구는 일단 좋은 파일에 저장된다. 그러다 그나 그녀가 우리에게 잘못하는 일들이 넘쳐 나게 되면 어느순간 나쁜 파일 쪽으로 분류가 되어 버린다. 이제 그가 아무리 우리에게 잘 한다고 해도 나쁜 파일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 진다. 좋은 면들이 우리에게 안 보이기 때문이다. 좋은 면들이 보인다고 해도 의미를 축소하거나 못 본척 하면 그만이다. 일단 나쁜 파일에 넣어진것을 다시 생각하는 자체가 싫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린 간단한 평가를 통해 한 사람을 좋은 사람에서 나쁜 사람으로 한순간에 보내 버린다. 그리고 그 결정을 영원히 고정시키는 바람에 그 사람에 대해 더이상 열린 마음을 갖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게 이 저자의 주장이다.


타당하지 않는가. 우리가 누군가를 매도할때 그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좋은 면도 있는가 하며 나쁜 면도 분명 존재한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간호사도 알고보면 나르시즘이 심한 불륜녀일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중독에 강박이 그녀를 그렇게 몰아가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겐 그녀가 천사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당신의 가족이라고 가정해 보라. 이유없이 불만이 쌓여갈 것이다. 답답할 노릇인 것은 그 이유를 딱히 댈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당신 친구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정의를 생각한다면 그녀는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만약 그런 사람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이 세상엔 친구를 할 만한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녀가 사회에서 일정한 몫을 하고 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만약 그런 사람조차 없다면 과연 누가 나서서 자원봉사를 하겠는가 말이다. 결국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결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가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모두 완벽하고, 절대적으로 이성적이기만 하다면 과연 보다 나은 사회가 될수 있을까? 가능의 문제를 넘어서, 그렇지는 않을 거라 본다.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울려져 돌아가는 것이 어쩜 인간 사회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너도 불완전하고 나도 불완전하니, 모두를 용서하고 이해하는게 어때 라고?  우리 모두는 언제나 성공할 수 있는건 아니고, 실패했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소소한 배신에 치를 떤다면 그 누구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니, 감정에 절은 왜곡된 시야가 아닌 공정한 진실을 바라보라고 말이다. 왜냐면 나 자신 역시 남을 배신하고, 속이며, 불신하고, 이용해 먹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곰곰히 들여다 보면 남 탓만을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해서 저자는 우리가 애써 감고 보지 않은 한쪽 눈을 뜨고 보라고 말한다. 그게 인간관계를 넓히고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면서... 참고할 만한 일리있는 조언이지 않는가 한다. 만약 당신이 매일 매일을 낙담한 인간관계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한번쯤 이런 책을 드심도 좋지 않을까 한다. 내가 감고 있는 한쪽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될 수 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일단 한쪽 눈을 뜨게 되면, 적어도 마음만이라도 편해질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말이지, 인간은 남을 미워하게끔 태어나지는 않은 듯하다. 일부러 우리가 타인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가장 기쁜 사람은 바로 자신일지도 ...마음이 가벼워 지니 말이다. 한번 경험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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