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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을 적으면서 " 대단한 " 이 어디에 걸리는 형용사일지 궁금해졌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이 대단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호주가 대단하다는 것일까. 실은 어디에 붙는다고 해도 그럴듯 하다. 호주 전역을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며 그 넓은 땅덩어리를 몸소 체험한 빌 브라이슨도 대단하고, 호주라는 대륙 자체도 그러하니 말이다. 호주, 간단히 그 실체가 손에 잡히지는 않는 나라다. 정보가 많으면 파악하기가 쉽겠다 싶지만서도, 이상하게 호주는 그렇게 되질 않는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듣고, 영상을 보고, 체류자들의 경험담을 들어 보아도, 들으면 들을수록 헷갈리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 아마도 그곳이 다른 어느 곳보다 별스런 것들의 총집합이여서 그런게 아닐까? 모든 기괴한 것들이 위화감없이 어우러져 돌아가는 곳, 예외가 정상인 곳, 극단이 흔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 천혜와 극한의 자연이 공존하는 곳, 분명 지구라는 별에 존재하는 나라임에도 어딘지 뚝 따로 떨여져 있는 듯한 고립감이 느껴지는 곳, 섬이라고는 하지만 다양한 환경이 펼쳐지기에 당신이 어디에 떨어지느냐 따라 다른 버전의 설명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호주다. 그렇기에 우리가 호주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국인조차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모호하게 느낀다고 하니 말이다. 자,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빌 브라이슨이 있다. 다행히도 그는 오래전부터 호주라는 곳에 흥미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모을 수 있는 정보를 바리바리 싸들고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의 눈에 비친 호주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우리에게 호주의 참모습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일단 피상적이 아닌 호주, 신격화도 비하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호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받아도 좋지 싶다. 더군다나 그가 누군가. 빌 브라이슨 아닌가. 현존 여행 작가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그만큼 통찰력 있고 유머스럽게 여행기를 쓰는 사람도 드물다.--없다.라고 쓰고 싶었지만 내가 모든 여행 작가를 다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하여간 신나게 읽고 나면 적어도 어슴프레하게 호주라는 나라가 손에 잡히는 듯 느껴진다. 흥미로웠던 점은 빌 브라이슨이 말한 것이, 즉 이방인으로써 그가 고찰한 것들이 자국인인 피터 케리가 쓴 " 휴가지의 진실" 에서 호주를 설명하고 있는 것과 대충 비슷했다는 것이다. 자국인이건 이방인이건 --물론 한 사람은 부커상 수상 작가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빌 브라이슨이지만서도, --둘이 공통된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공통분모를 잘 들여다 보면 아마도 호주라는 나라의 실체에 어느정도 근접하게 되지 않을런지. 그렇다면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여행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을까? 맛뵈기로 대강 살펴 보면 이렇다.
빌 브라이슨이 호주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오래전 부터였다고 한다. 그리고 관심을 갖게 되면 될수록 놀라운 정보들을 속속 접하게 된다. 수상이 바닷가 산책을 하다 실종이 되어도 조용한 나라, 우연히 점심을 먹으려 앉은 곳에서 수억만전의 개미의 시조를 만나게 되는 나라, 어느 섹션에 분류를 해야 할지를 두고 동물학자들이 치고받게 만드는 동물들이 지천에 널린 나라, 지나가다 우연히 금덩어리를 주을 수도 있는 나라, 원주민인 애버리버니를 개 취급하면서 학살했던 나라. 백호주의가 나쁘단건 알지만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선 그다지 미안해 하지 않는 나라, 악어나 해파리 독뱀 독거미등 해로운 동물들이 너무 많아서 오늘 하루 죽지 않고 넘겼다는 사실에 안도를 해야 하는 나라, 그럼에도 그런 사실에 별로 개의치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나라, 천국도 이렇게 아름답지는 못할 거라는 천혜의 경치와 더불어, 인간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극악의 자연환경도 함께 지니고 있는 나라. 세상에 이런 일이! 라며 입을 다물지 못할 만한 정보들 아닌가.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호주를 깡그리 잊고 살아간다는 점에 있다. 빌 브라이슨이 남반구의 그을린 대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호주에 신경을 쓰지 않더라는 점! 그것이 바로 잊혀진 대륙 호주로 빌 브라이슨이 날라간 이유다.
하긴 호주와 빌 브라이슨 궁합이 맞긴 하다. 호기심많고, 특이한 것을 좋아하며, 색다른 것에 궁극적으로 관심이 많은 그이니 말이다. 그런 그가 호주를 쏘삭대면서 발로 뛰어 다녀 만들어낸 결과이니, 뭐...재밌지 않다면 이상할 것이다. 어찌나 구석구석 들쑤시고 다녔던지 자국인들 조차 어디라고요? 라고 말할 정도란다. 감히 이젠 호주인들이 그에게 여행 정보를 얻어야 할 참이다. 여행 작가로써 빌 브라이슨을 좋아하게 하는건 그렇게 발로 뛰어서 정보를 만들어내는 성실함도 그렇지만, 그외에도 자신의 시선에 독자를 동조하게 만드는 재능에도 있다. 무엇이건 간에, 그가 바라보고, 들르고, 만나고, 겪게 되는 일에 힘들이지 않고 독자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예를 들자면 , 그가 만족할 만한 호텔에 묵건, 아니면 형편없는 호텔에 묵건 내가 마치 그 호텔에 묵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웃으면 나도 웃고, 그가 감사하면 나도 감사하며, 그가 흥미진진해 하면 나 역시도 흥미진진해졌다. 체감 온도차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여행 작가로써 빌 브라이슨의 능력은 단연 최고라고 할 만하다. 하여간 호주를 전반적으로 알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이보다 심오할 수는 없게, 그리고 이보다 흥미진진할 수는 없게 호주를 풀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론 재미면에서 <발칙한 유럽 산책>이나 <나를 부르는 숲>에 미치지 못한게 아닐까 한다. 일단 덜 웃긴다. 빌 브라이슨의 괴짜 친구 카츠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못말리는 사고뭉탱이 친구가 아쉬운 이유다. 거기에 호주라는 나라 자체의 매력 역시 좀 떨어진다. 아무리 빌 브라이슨이라고 해도 없는 매력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 않는가. 최선보다 극악을 기억하고 환호하는 나라라니 인간성을 기대할 수도 없다. 휴가지로써는 최고일지 모르나, 그저 그게 다였다. 호주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가면 알수록 헷갈린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더라. 신비감이 있는 호주가 훨씬 더 멋져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왜 아무도 호주에 관심을 안 갖는 거냐는 의문에서 시작된 여행은 어쩌면 그럴만 할지 모른다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조금 허무하다. 멋진 풍광이 넘쳐 나는 곳이었다고 하는데도 이런 결론이 내려져서 말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호주에 가게 된다면 이 책을 떠올리면서 아는 척을 하련다. 빌 브라이슨이 그러던데 말이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날을 기대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