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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가락 - 신은 그들의 손가락에 위대한 수갑을 채웠다
사토 다카코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소매치기 현행범으로 잡혀 막 감옥에서 출소한 쓰지는 집으로 오던 길에 신출 귀몰한 솜씨로 지갑을 터는 10대 일당들을 보게 된다. 그들을 막으려다 오히려 오깨를 다친 그는 복수심이 불타 그들을 잡으려 한다. 한편 여장차림으로 점쟁이로 살아가고 있던 히루마 가루오는 쓰러진 쓰지를 보고는 집으로 데리고 온다. 변호사 아버지와 누나를 둔 그는 사법고시를 보라는 주위의 압력을 물리치고 혼자힘으로 살아가려 하고 있었다. 점쟁이로 그럭저럭 살아갈만은 했지만 문제는 그에게 도박중독 증세가 있었다는 것, 집세를 날려 버린 그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전전긍긍이다. 그런 히루마를 본 쓰지는 자신을 도와준 댓가로 돈을 대주기로 한다. 물론 그의 천직인 소매치기를 해서 말이다. 그렇게 난데없는 사건 하나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각자의 사연으로 동거를 하게 된다.쓰지가 10대 소매치기단들을 쫓던 사이 쓰지의 삼촌이라 불리는 소매치기 대장이 전철에 떨어져 손을 잃게 된다. 그가 떨어진 것이 자신이 쫓고 있던 소매치기단의 리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쓰지는 이제 본격적으로 그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건실하게 길거리에서 점을 봐주던 히루마는 자신에게 점을 봐달라고 온 소녀에게 눈길이 간다. 그녀가 잡은 패가 너무도 어둡게 나왔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고 사는게 분명해 보이고, 집에서도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사는 듯한 그녀를 보면서 히루마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람들을 많이 상대한 관찰력으로 그녀에게 무언가 위험한 비밀이 있을 거란 직감한 그는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부탁하는데...
소매기치들의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는 구나, 라는걸 알게 해준 소설이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그래서 그런 자질을 갖지 못한 소매치기들은 그런 자들을 부러워 한다는, 아니 그것을 넘어 존경한다고 하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으니 말이다. 하긴 어떤 재능이건, 특출나게 잘 한다는건 인간의 눈을 휘둥그래지게 하는 법이지.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채 태어나 한마리의 외로운 늑대처럼 살아가고 있던 쓰지는 자신만큼이나 솜씨가 좋은 소매치기를 만나게 된다. 그가 아직은 10대이고, 방식이 거칠다는걸 알게 된 쓰지는 그를 잡아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 과연 그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는게 이 책의 주요 줄거리인데, 작가는 여기서 쓰지란 소매치기범이 범죄자 치고는 진실하고, 비록 남의 돈을 등쳐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인간미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있는 사람임을 우리에게 들려준다.그렇다보니 작가에게 그럴 의도는 없었을지라도, 일면 범죄자를 옹호하는 그런 뉘앙스가 들어있어서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기분이 아리송했다. 그러니까, 소매치기범들도 직업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거야? 위험을 무릅쓰고 기술을 연마하며 타고난 본능으로 신중하게 남의 지갑을 턴다고 하니, 그런 그들의 노력과 담력에 대해 우리는 인정을 하고 박수를 보내줘야 하는 것이냐고. 돈을 잃고 귀중품을 잃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난 그럴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다.
하여간 범죄자에 대한 낭만적인 미화가 눈살을 거슬리게 하던 소설이 되겠다. 다만 장점이라면 가독성은 높다는 점! 범죄 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술술 읽어 나가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원래 이 작가가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일본 서점 대상" 을 탄 작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게, 적어도 읽지 못할 정도의 책은 내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해도 말해도>나 <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같은 전작의 감동을 기대했던 나로써는 적잖이 실망이었다. 그런 작품들에선 사람들 냄새가 났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 낸 주인공들을 전적으로 지지해주고 싶었고 말이다. 왜 갑자기 범죄자와 범죄 세계를 소설의 주인공과 무대로 쓰고 싶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발로 다른 소재로 글을 썼다면 훨씬 더 공감하기 좋았을테니 말이다. 소재를 선택하는데 있어 실패한게 아닐까 한다. 왜냐면, 이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책 주인공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절대 악한으로 볼 수 없다. 말하자면 객관적이여야 할 작가가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주인공을 대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린 소매치기범들을 옹호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의 재능을 높이사서 천연 기념물 정도로 말들어야 하냔 말이다. 그런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한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잘 안다고 해서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설득하는 변명은 반갑지 않다. 그게 논픽션인 소설이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글을 잘 쓴다고 할만한 작가의 입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