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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나무 서는 여자 - 하버드 정신과 의사가 만난 기이한 환자들
개리 스몰 지음, 원은주.이규빈 옮김 / 파이카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원제가 재밌다. 정신과 의사가 만나본 가장 기이한 환자들. 제목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 않는가. 지난 30년간 정신과의로 재직한 저자는 그간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 가운데서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했던 몇몇 환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의사가 자신이 치료한 환자의 치부를 드러내놓는 것이 아니냐고 혹시 생각하실 분이 있을까봐 말해두는데, 절대 그런 류의 책은 아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지극히 지적인 호기심였을 뿐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상식적이지 않는 기괴한 병에 걸린 환자를 돌보는 의사인 나는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식이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도와줘야 겠다는 따스한 심성이 저자의 근본을 이루고 있었다. 환자를 단지 조롱하기 위하거나, 특이한 케이스를 가진 객체로 바라보기 보단 살아가고 존중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일단 책을 읽어 내려 가는데 부담감이 없어 좋았다. 아무리 내가 이상한 증례를 가진 환자가 아니라고 해도, 치유할 길이 없어 곤란한 환자를 조롱하는 듯한 글이 유쾌할리 없으니 말이다. 곤란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하하 웃는 이상한 취향이 아니란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어쨌거나 이 저자, 원래 성품이 훌륭하신 것인지 아니면 다년간의 교육의 결과인건지는 모르겠으나--전자라고 생각되어지지만서도--그가 정신과 의사란게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을 진지하게 믿어 주는데다, 치료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재고하고,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고집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자세들을 보자니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그런 자세들이 환자들을 치유의 길로 이끌어 갔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의 경우엔 완치라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고,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종종 확실하고 정석인 치유책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더군다나 그가 정신과 의사를 시작한 것은 30년 전이다. 정신과를 낙오자들의 집합소 정도로 여기고, 주술사가 하는 일과 별다르지 않게 취급을 받던 정신과의 원시 시대 부터 일을 시작하신 것이니, 그가 이룩한 업적에 대해서 과소 평가를 하면 안 되지 싶다. 저자와 같은 분들 덕분에 그래도 이나마 인간의 정신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것이니 말이다.
기이한 환자들이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기이한 케이스들 뿐이다. 벌거벗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병실에서 만난 환자 같은 경우엔 그것이 충격을 주었던 것이 그 환자가 자신이 그러고 있는줄 몰랐더라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제 정신이었다면 절대 그런 포즈를 취할 사람도 아니었을뿐더라,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 어떤 연유로 멀쩡하고 수줍음을 타던 사람이 벌거벗고 물구나무를 서게 된 것인지, 그걸 풀어내는게 정신과 수련의인 그에게 내려진 과제였으니, 저자가 당황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몇개 되지 않은 단서로 결국 원인을 밝혀낸 저자는 나중에 완치되고 만난 환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너무도 얌전한 19살의 처녀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걸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그녀를 음란한 여자로 여겼을 테지.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고, 그 원인을 알게 되면 너무도 음란과는 거리가 멀어서 실망하게 될텐데도 말이다. 그외에도 자신의 왼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절제해달라고 부탁해온 환자의 경우엔 과연 어느것이 정상인지를 생각하게 해줬다. 물론 이 환자의 경우엔 드문 정신병에 걸린 것이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괜찮은 얼굴임에도 마음에 안 든다면서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과연 그런 사람들과 왼손이 맘에 안 드니 잘라달라고 부탁하는 환자가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라고 하던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밖엔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져서 상담을 해보니 자신의 페니스가 작아지고 있다고 두려움을 호소하던 사람이나, 남편과 사별한 뒤 아들만을 집착하고 산 나머지 의대에 간 아들과 소통하겠다고 의대병에 걸려 버린 여자의 이야기나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치매 증상이 나타나던 CEO의 경우가 흥미로웠다. 남편이 이상해요...라면서 정신과 상담을 신청한 여자의 이야기도 주목을 끌만 했는데, 재밌는 것은 뭔지 모르지만 남편이 숨기는 것이 있다고 했던 그녀의 판단이 결국엔 맞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전까진 아내가 이상한거라는 남편의 말을 철썩같이 믿을 수 밖엔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그 남편은 딴집 살림을 차리고도 시치미를 뚝 떼고 살던 싸이코 패스였다고 한다. 그 편의 제목이 <가스등>인 것도 무리는 아닌데,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은 정말로 쉽더라. 실제로 그 남편은 아내가 너무 예민해서 모든 것을 상상해 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줄곧 느끼고 살았다는 아내의 감이라는 것도 무섭고, 아내의 추궁에도 꿈쩍하지 않는 남편의 거짓말에도 신물이 났다. 저자가 말하길, 공감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싸이코 패스는 생각하는 것만큼 드물지 않다고 한다. 확률적으로 100명중 하나라고 하던가? 물론 그들중에서 연쇄 살인을 벌일 정도로 극악스런 경우는 드물지만서도, 하여간 생각하는 것보단 비교적 많다고 하니 제발 부탁건데,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들과 엮이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재밌다. 저자를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하던데,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유머감각을 적절히 섞어서, 자신의 이야기도 변죽으로 울리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할지 본능적으로 아시는 분 같았으니 말이다. 기이한 사례들을 보면서 인간의 정신의 한계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고, 지난 30년간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보는 것도 좋았다. 저자가 처음 정신의로 발을 들여놓던 초기 시절부터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정신학의 발전과 더물어 저자 자신의 발전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저자의 어리버리한 초년 의사 시절에서부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더니, 이젠 든든한 정신과 의사가 되어 있는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데, 솔직하고 유머가 넘쳐서인지 그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려왔다. 환자들의 이야기뿐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도 곁들여 들려 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았는가 싶다. 마치 추리 소설이나 미국 드라마처럼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읽히는게 특징으로, 쉬운 심리학을 원하신다면 집어드셔도 좋을 듯,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것은 덤이지 않을까 한다. 하여간 인간의 심리만큼 복잡하면서도 매혹적인것도 드물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