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만나 다행이야 작은 곰자리 20
콜린 톰슨 글.그림, 박수현 옮김 / 책읽는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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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책을 읽었을때는 소리없이 꿋꿋하게 감동을 받았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 외로운 아이 조지, 그가 유일하게 외로움을 달래는 곳은 동물 보호소다. 주인이 버린 동물을 임시로 맡아주는 그곳에, 자신보다 더 가엾은 동물들을 바라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던 조지는 어느날, 자신을 똑닮은 듯한 강아지를 만나게 된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맨 마지막 칸에, 감옥에 갇힌 듯 창살에 둘러쌓여 있는 세 발 달린 개를 보는 순간 말이다.그 개가 마치 다가오는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겠다는 듯 희망없는 눈길로 조지를 바라보았을때 조지는 마음을 굳혔다. 이 개는 절대로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동물 보호소 직원 아줌마에게 뛸듯이 달려간 조지는 그 개를 데려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줌마는 조지가 말하는 개가 "그 개" 가 맞냐면서 의아해 한다. 태어날때부터 세 발뿐인, 아무도 원한적이 없는 개가 정말로 네가 원하는 그 개냐고, 어차피 그 개는 오늘이 여기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 이라는 말에 조지는 한걸음에 다다다다~~~ 할머니에게 달려간다. 그리곤 외친다. 개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빨리 빨리 가야 한다고.


손자의 마음을 알아챈 할머니는 토를 달지 않고 조지를 앞세워 동물 보호소로 달려간다. 문을 닫으려는 아줌마를 간신히 말린 다음 그 둘은 세 발 달린 개 제레미를 입양하게 된다. 과연 그 셋에겐 어떤 미래가 펼쳐지게 될까.
그러니까 , 어른인 내가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인 동화책이었다. 그림도 아름답고, 내용도 아름답고, 마지막 결론은 훈훈하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마음으로 통하는 강아지와 소년의 우정이 , 아무런 조건 없이 단지 우리가 닮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베푸는 사랑이 아름다웠다. 그런 미담에 흔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런 미담이 있다면 그 가치에 대해 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읽어가면서 홀로 그렇게 감동을 받았었다. 조카도 분명 좋아할거야, 라면서 읽어줄때까지 기다리기가 심히 힘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주자니, 걸리는 것이었다. 과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일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는 조카에게 환경이나 기타 그밖에 어른들이 걱정해야 하는 일들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아이에게 들려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조카가 4살때인가? 어느날 전화를 걸어 와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북극의 곰이 살 집이 없어진다면서, 에어컨을 켜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놀란 적이 있다. 유아원에서 선생님에게 배운 모양이던데, 덕분에 그 여름에 한동안은 선풍기를 켠다거나 에어컨을 켤때마다 조카의 눈치를 봐야 했다. 얼음이 녹는 대요!!! 라면서 걱정하는 조카를 달래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일도 있긴 했지만 그런 사정이 아니었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걱정 해야 할만만 일들을 알려 줘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걱정 많은 아이로 자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무엇보다 무능력한 아이들에게 자신이 책임질 일도 아닌 것에 죄책감을 갖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현실을 알려 주는 것이 과연 7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일까? 싶은 것이다. 과연 그게 필요한 것일까?

그래서인가, 기다리던 조카에게 읽어주는 시간이 되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괜히 쓸데없는 책을 읽어주는건 아닌가 싶어서...역시나 내 우려가 맞았다. 조카는 나만큼 감동을 받지 않았다. 단지 슬퍼하는 듯했다. 세 발 달린 개가 있다는 것과, 외로움에 절절 매는 아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둘이 서로가 닮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죽음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개가 나올때나 아이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이가 뭘 원하는지 알길이 없는 할머니를 설명할 때도 난 조금 뜨끔했다. 과연 이런 것들을 아이가 알 필요가 있을까? 과연 이 녀석이 이걸 공포감없이 받아줄까 싶은 생각이 모략모략 들었다. 난 도무지 왜 이 책을 조카에게 읽어주려 한 것이냐? 조카에게 착하게 살라고, 약자를 돌보라고,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싶어서 식겁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른이 자신은 별로 착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착하게 살라고 다그치는 사람이었으니까. 난 조카에게 착하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라고 늘 마음으로 기원한다. 단, 남에게 페를 끼치지 않은 선에서..."노블레스 오블리주" 라면서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부자이고 똑똑하면서 착하기까지 바라는 모양이지만, 내가 조카에게 바라는 것은 그렇게까지 무거운 삶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잘 돌 볼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주었음 하는게 전부다. 그렇다보니, 착함을 은근히 강조하는 이 책이 조카에게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천국이 뭐냐고 묻는 조카의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해주면서, 결국 결론을 내릴 수 밖엔 없었다. 7살짜리 아이에겐 이 책은 무리라고.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그가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역시 조카의 표정을 보니 나보다 이 책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진 않은 듯했다. 조지와 제레미가 서로의 짝을 찾아서 덜 외로워졌다는 것에 안도를 하긴 했지만 ,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살아야지 다짐을 하진 않는 듯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내심으론 이런 책을 읽으면서 버려진 개를 다 자기가 키우겠다고 나서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다. 나는 조카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오지랖의 세계에 먼저 빠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건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그건 조카가 성장하고 나날들을 보내면서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써넣어야 할 일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옆에서 조카가 차곡차곡 자신의 삶을 채워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게 다일 것이고. 남의 일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그게 쉽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단순히 불쌍하다는 감정만으로 쉽게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기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다른 책과 별다르지 않게 받아들이는 조카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가 나보다 감동을 덜 받는다는 건, 동화책을 사준 입장에선 서운한 일일 수도 있지만서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조카의 태도는 오히려 나를 안심하게 했다. 제대로 크고 있구나, 녀석! 조카의 부모와 그를 보살피는 우리들이 그를 우리 식대로, 우리 입맛대로 변형시키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원래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전혀 다른 면에서 내게 안도감을 준 책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아이들에게 적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 슬퍼서다. 결말이 아름답다고 해서 슬픔이 가시는건 아니다.  조지와 같은 현실속에 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제레미와 같이 버림을 받은 유기견들이 많다는 것도, 물론 안다. 현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책 속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결말이 흔치 않다는 것 역시 사실 아니던가. 내가 결국 이 책속에서 슬픔을 읽을 수밖엔 없게 되는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외로움은 가시기 힘들다. 늙은 나이에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할머니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기 어려울 것이다. 세 발 달린 강아지는 끝내 안락사를 당한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것이 현실이다. 그 모든 현실을 적당히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는 이 책은 바로 그래서 동화책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보게 되는것은 이 책 안에 쓰여지지 못한 현실인 것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조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도 캥겼는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조카 역시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싸구려 감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어른이 될 터이니 말이다. 과연, 미래에 이 현실이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동화책속과 같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기정 사실이라면, 미리 이런 책을 읽으면서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거짓을 배운 다음, 그것에 감동을 하고, 가까운 미래에 그 감동이 거짓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걸 알게 되는 것이 순서라면 , 거짓을 일단 배우지 않는다고 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해서, 아이들에게 꼭 읽어줘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각자 부모님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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