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아들의 방>이라는 영화를 좋아하고, 할런 코벤도 그닥 싫어하지 않은 까닭에 집어든 책이다. 두꺼운 것도 마음에 들었고, 페이지를 열어 읽어보니 가독성도 높고, 빠르게 읽히는데다, 걸리적대는 문장도 별로 없어서 역시 잘 집어왔다 싶었다. 할런 코벤은 역시 기본은 하시는 작가였군 하면서 열심히 읽어 내려 갔는데...


이건 뭐,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연속이다. 하도 골때리는 사건 사고가 많고, 여차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데다, 그 강도 역시 만만찮게 높기 때문에 중반을 넘어서니 읽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래도 결론을 알아야 겠다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는데, 드는 감정 한가지는 오직, 아~~~ 지겹다! 였으니...이 책의 구성에 맞춰 라임을 넣어보면 지겨워, 지겨~~워, 정말 지겨워, 놀랍도록 지려워...등등이 되겠다. 하~~~ 요즘 왠만한 추리 소설에 강도가 워낙 세지다 보니, 왠만한 것으로는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강박이 팍팍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이렇게 과잉일 필요가 있나?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아들의 방에 아들역 아담, 그렇게 모범적이도 머리도 좋고 부모와 사이도 좋았다는 녀석이 다른 사람의 실수때문에 그렇게 망가진다는 것이 과연 그럴 듯한 전개일까? 결론을 보고 나니 싱거워도 그렇게 싱거울 수가 없었다. 아니, 그렇담, 아버지랑 엄마랑, 대부랑 그많은 사람들이 난리 부르스를 친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난리 부르스에 과잉 행동에 소동을 부려야 진정한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적어도 부모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그래야 독자들이 감동을 받을 거라고 작가는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조금 유치했다. 심하게 자연스럽지도 않았고, 감동을 짜내는 것 같아서 보기 민망했으며, 무엇보다 아들을 살려 보겠다고 난리 부르스를 춘 부모들에 무척 가여워 보였다. 이상하지? 그들은 정말로 아들을 사랑한다고 하던데, 왜 아들이 문제가 생겼을때 찾아가서 의논할 정도의 상대는 되지 못한 것일까? 자신에게 가장 위기가 닥쳤을때 , 더군다나 미성년일때 말이다. 실수를 하기 마련인 그 나이에, 그리고 그 실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그 나이에 어른답게 행동한다는 것을 하나도 모르는 그 나이에, 당황하게 되면 가장 먼저 찾아가야 하는 것이 부모 아닌가? 그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잖아. 본능적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 아담은 문제가 생겼음에도 가장 마지막에 부모에게 알린다. 부모에게 알렸다면 별 일 아니었을 그런 문제가 커지고 커지고 커지다 못해서 기괴하게 될때까지 두고서 말이다 . 다 해결이 되고 나서야 마지 못해 털어놓는 자식이 무슨 대단한 아들이라고, 아니, 그보다 먼저  아들에게 그런 거리감밖엔 두지 못하는 부모였으면서도 자긴은 굉장히 좋은 부모였다고 생각하는건 또 뭐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다. 우린 청소년 시기 아이들에 대서 전혀 알고 있지 못한게 아닐까 싶다. 어른들 모두다 말이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도 포함해서...


줄거리는 이렇다. 모범생에서 갑자기 불량생으로 거듭난 아들 아담 때문에 고민인 마이크는 아내의 성화로 아들의 방에 감시 장치를 설치한다. 아들이 인터넷으로 하는 모든 것을 스캔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느냐, 아니면 막 나가는 아들을 보호하느냐로 갈등하다 지금은 보호에 치중해야 한다는 결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1 인 아들은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도무지 모범생이던 아들이 그렇게 좌절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마이크와 아내는 이해가 가지 않고, 다만 몇 달 전 자살한 친구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러던 중 마약 파티가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간다는 아들의 문자를 스캔한 마이크는 식겁해서 말리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도 모른채 집을 나가고 만다. 어떻게해서든 집을 나간 아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이크는 GPS를 이용 아들의 뒤를 쫓는다. 하지만 아들을 잡기도 전에 일단의 아이들에게 잡혀 실컷 두둘겨 맞고 마는데...한편 자기 멋대로 삶을 살아온 덕분에 인생이 한없이 망가져버린 매리엔은 의문의 두 사람에게 납치된 후 살해된다. 그녀를 창녀처럼 꾸며 창녀촌에 버린 두 사람은 곧이어 매리엔의 친구를 잡아 역시 죽여 버린다. 과연 둘은 어떤 이유로 연쇄 살인을 벌이는 것일까? 두 여자의 실종을 수사하던 경찰들은 두 여자의 주변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 나가는데... 과연 둘은 어떤 이유로 살해된 것일까? 그리고 두 여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두 사람의 정체는?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어떤 인간은 보기보다 잔인한 면모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또 어떤 인간은 보기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던 소설이었다. 한마디로 이 책을 보고나면 우리가 추측하면서 살아가는 것들이 얼마나 단순하고 멍청한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한마디로 우리는 멍청하게 살고 있으며, 대부분은 거짓으로 살고 있기에 믿으면 안된다는 생각마저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꼭 그렇게 뒤틀려야만 하는 것일까? 정말로 우린 그렇게 살까? 우리의 본마음을 숨기고, 다른 인생을 만들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곳이 바로 인간세상일까? 글쎄...가끔가다 경계성 인격 장애자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종종 정신 분열증 환자나, 심하면 싸이코 패스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는 자체가 이렇게 심하게 뒤틀리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뒤틀려 있으면서도 자신은 전혀 잘못한게 없다고 믿는다는 것도 이상하고...하여간 독자에게 숨돌릴 틈없이 충격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게 두드러진 책이 아니었나 한다. 우린 이런 끝도 한도 없는 충격 요법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치면 모자란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충격 요법도 한두번이지, 끝까지 충격 요법으로 나가면 식상해진다는 것이지. 작가 자체를 믿게 되지 않으니 말이다. 왜냐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야기가 아니라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만들어진 태가 너무도 뚜렷하게 나는...너무도 뻔한 트릭에 감동받는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겠거들랑, 그냥 조용히 침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는가 한다. 하여간 이 책은 여러모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보여주는 작가의 통찰력 있는 문장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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