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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자들의 집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68
기예르모 로살레스 지음, 최유정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쿠바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던 나는 체제의 억압과 정신분열증으로 두배의 고통을 겪는다. 미국에서 산다면 혹시나 사는게 호전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로 친척들이 사는 마이애미로 온 나는 곧바로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20년만에 처음 나를 본 친척들은 이 애물단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결국 고모는 나를 보딩 홈(미국 사설 요양소)에 집어 넣는다. " 더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그리하여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에 그렇게 도착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 국가의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끔찍하다고 할 수 밖엔 없는 그곳에서 나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그런 삶에 적응해 간다. 정부와 개인에게서 돈을 받긴 하지만 최소한의 물자로 보호소를 운영하다보니, 원장은 집을 사고 차를 굴리지만, 그곳에 사는 원생들은 비참한 환경에 여지없이 노출되게 되는데...
첫문장부터 나를 여지없이 사로잡았다. 이렇게 비참하지만 진실이 담겨있는 문장에서 눈을 떼기란 어려우니 말이다.
" 집 바깥에는 <보딩 홈>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는 이곳에 내 무덤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삶에 절망한 사람들이 흘러드는 변두리의 한 보호소, 대부분이 미친 놈들이었다. 더러는 승자들의 삶을 망치지 말고 외롭게 살다 죽으라며 가족들이 버린 늙은이들도 있었다.
[여기서 잘 지낼 게야.] 고모는 최신형 시보레 운전석에 앉아서 내게 말한다. [더는 할 수 있는게 없다는걸 너도 이해하게 될 게야.] 나는 이해한다.고모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때 구정물 찌들어 넝마 더미를 한 점 지고 공원 벤치에서 아무렇게나 먹고 자는 신세를 면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누추한 곳이라도 마련해 주다니." ---8p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경험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죄스런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더 좋은 환경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그건 어렸을 적, 삶이란게 뭔지 몰랐을때 가질만한 나른한 감상이고. 나라도 이 고모처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더 할 수 있는게 없다는걸, 그리고 그걸 고모 역시 좌절하면서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는걸 안다. 어쩌겠는가. 인간은 신이 아니라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 있는 것을. 타인에게서 엄청난 것들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조만간 실망하게 될지리니...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한 채 이 지옥보다 못한 보딩 홈에 자리를 잡을 수밖엔 없던 작가의 기분이 이해가 되었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조차 해결되지 못하는 곳에서 정신나간 사람들과 비참한 나날들 보내야 했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강렬한 문체로 담아 책으로 남겼다. 사설 보호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탁월하다. 19세기 <올리버 트위스트>도 아니고, 20세기에도 인간을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수용하는 곳이 있다는 점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서도, 아마도 그가 머물렀던 요양소가 그닥 예외적인 곳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만 못한 곳들이 수두룩 하겠지.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라는 질문을 요즘 자주 하게 된다. 다들 저렇게 비참하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정신병이나 기타 질환으로 가족들을 진절머리나게 하는 사람들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역시도 보딩 홈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엔 없지 않을까, 그게 아무리 비참하다고 해도 더는 할 수 있는게 없는 것이니 말이다.
종종 인간이라는 것, 산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 때론 죽음보다 비참한 삶이란게 분명이 있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작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책이 성공한 이후에 말이다. 젊은 시절의 이 비참한 삶을 기억한다면, 그가 47 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져. 그는 그래도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