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때론 "나도 한번 폼나게 살아봐?"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돈 걱정 없이 흥청망청 써보고도 싶고, 남들 보란듯 과시도 좀 해보고, 근사하게 해외 여행도 하고, 멋진 옷도 입어보고, 명품 쪼가리들도 걸쳐 보고, 떵떵거리면서 큰 소리도 쳐보고 , 윗 대가리라고 나를 갈구는 사람에게 대들어 보기도 하고...어차피 죽을동 살동 하면서 살아봐야 한 세상인데, 숨 죽이고 눈치 보면서 사는게 마냥 재밌을 턱은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내일은 어찌 되어도 좋으니 하루만이라도 내 멋대로 살아봐? 라는 생각이 안 든다면 이상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를 하면서도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왜일까? 통이 작아서일까? 아니면 이대로 그럭저럭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일까? 어쩜 아마도 폼 나게 살아보겠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간절한 것이 아니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폼나게 살고픈 바람보다 당장 지키고 살아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것이 도덕이건 윤리건 감옥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건 파산하지는 않겠다는 결심이건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건 간에...

 

그나저나 이렇게 뜬금없이 "폼 나게 살고 싶다" 는 말을 줄창 해대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최익현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폼 나게 살고 싶어 한다. 마누라 바가지 듣지 않게 큰 집에서도 살아보고 싶고, 집안의 기대주 아들 녀석에게 유학 정도는 보내주고 싶다. 딸년들은 좋은 집안에 시집 보내고, 오빠로써 여동생 내외도 잘 살게 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남들 발 아래 빌빌 거리면서 굽실 거리는 것은 그만 하려 한다. 더 이상은 사절이다. 그대신 이제 그가 큰소리를 텅텅 칠 것이다. 좀스럽게 뇌물을 받아 먹으면서 살았던 것에서 이젠 그가 뇌물을 주려 한다. 그게 좀팽이 세관원 최익현의 미래다. 그걸 위해 그는 모든 것을 내팽개쳤다. 조폭의 폭자도 모르는 사람이 그 길로 들어섰다. 막판에 몰렸다는 위기의식이 있지 않고서야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그것도 중년에 내린 과감한 전직, 이제 낙장불입이다. 그는 물러설 수 없다. 아니 못한다. 비록 그 길에서 자신이 깨부셔지건, 망가지건, 쪽이 팔리건, 친구를 팔아넘기건 간에,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죽는다고 해도 폼 나게 부활할 것이다...그게 그의 결심이다. 그렇게 그는 째째한 공무원에서 과감하게 나쁜놈들의 세계로 이직을 했다. 폼나게 한번 살아보기 위해서...사는거 별거 있어라는 심정으로 그가 걷게 될 길은 과연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는 살아남기나 할 수 있을까? 폼나게 산다는 것이 과연 그의 생각처럼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일까?

 

1982년 느물대며 알아서 뇌물을 챙겨 먹던 세관원 최익현은 부양해야할 가족이 조촐(?)하다는 이유로 총대를 메고 해고될 위기에 처한다. 자신만 잘린다는 것이 무척이나 불만이던 그는 순찰 중에 우연히 히로뽕 2킬로를 압수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기회라 생각한 그는 그 기회를 활용하기로 한다. 바로 히로뽕을 일본에 밀수출하기로 마음 먹은 것, 어렵게 부산 최대 조폭 두목과 연줄이 닿게된 그는 현장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나불대다 곧바로 조폭의 2인자에게 얻어 터진다. 히로뽕의 댓가로 거액을 챙겨준 젊은 조폭 두목 최 형배는 그에게 앞으로 이런 곳에 발을 담그지 말라고 경고 한다. 하지만 순식간에 너무도 쉽게 큰 돈을 벌게된 익현에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안 할아버지 뻘이라는 무기로 최형배에게 접근한 익현은 특유의 친화력과 빠른 두뇌 회전력으로 조폭 내에서의 두뇌를 담당하게 된다. 그의 간계로 점차 이런 저런 이권이 들어오게 되자 형배 역시 그를 대부님이라고 하면서 신뢰하게 된다. 그렇게 부산을 접수하게된 최씨 일당, 하지만 그들의 승승장구가 오래 갈 수는 없었다. 자신의 하는 일에 잘 되어 감에 따라 간이 커진 익현이 형배를 넘보게 된 것이다. 왜 자신이 1인자가 아닌지 억울한 익현은 카지노 인허가 권리가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미끼로 형배의 라이벌 조폭과 양다리를 걸친다. 그로 인해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 맞지만 그는 결코 조폭의 세계에서 손을 뗄 생각이 없다. 마침 정부에서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조폭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가운데, 검사에게 붙들려간 익현은 모종의 제안을 하게 되는데...

 

   <본인이 바라는데로 드디어 폼나게 살게 된 최 익현, 그는 점차 1인자 자리를 넘보게 된다. 뒤늦게 조폭 세계에 들어온 사람 치고는 그는 영리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는데...>

 

직설적으로 풀어낸 조폭 영화다. 80 년대와 9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배경도 그렇지만, 실제로 치고 받고 싸우는 장면에서도 어찌나 현실적이던지, 배우들이 가엾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배우님들 고생 많이 하셨어요~~~!)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그들이 싸움을 시작할라치면 어디론가 안전한 곳으로 튀고 싶었었다. 원래 나는 싸움이 나면 도망 먼저 가는 스타일이라서 말이다. 영화라서 참 다행이여요...라는 생각이 들만큼 과격한 격투 장면, '네가 폭력을 알아? 조폭 세계를 알아? 이제 내가 알려 주지 ...'라는 듯한 뉘앙스로 영화에선 내내 조폭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역학관계를 낯낯이 해부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아무리 포장을 해도 친절하지도 아름답지도 보기 좋을리도 없다는 것은 당연지사, 더군다나 이 영화의 감독 양반은 포장을 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보니 조폭들이 저렇게 사는구나,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이구나....라는걸 느끼게 해주는데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 왔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내가 상상하지 못한 그런 세계였다. 오죽했으면 영화관을 나오는데 지금껏 내가 어디 한 군데도 부러진데 없이 살아온 것이 얼마나 기적이었던가 싶더라. 그건 바로 비록 이 설정 자체가 가공의 이야기라고 해도, 관객들을 설득시키는데는 무리가 없다는 뜻일게다.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실재했고 ,그렇게 살았을 거란 믿음을 갖게 하기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현실감나게, 진짜 있었던 일을 보여주는 듯 실감나게 찍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멘트를 남긴 검사 역의 조범석, "내가 깡패라면 넌 그냥 깡패야!" 그는 이 영화에서 건진 가장 큰 수확이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대본이나 연출력의 힘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점수를 주어야 하지 싶다. 비단 주연을 맡은 최민식이나 하정우의 연기뿐만이 아니다. 조연들의 연기 역시 길거리에서 조폭들을 데려다가 쓴 듯 자연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연기를 펼친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코 검사로 나오는 조범석이었다. 그는 정말로 검사같았다. 그것도 흔하디흔한 그런 검사 말고, 조폭 못지 않은 포악의 기름끼가 줄줄 흐르는 검사.... 한번도 검사를 만나본 적이 없기에, 진짜 검사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검사 같을까는 모르겠지만, 그건 상관없다. 현실속의 검사보다 더 검사같은 인물을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왠지 진짜 검사라면 저럴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왔다. 아마도 그가 이 영화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영화 재미가 덜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영화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몰입감이 최고였던 탓일까? 그가 나오는 씬이면 조금 기대를 하고 보게 됐다.  무언가 재밌는 것이 터질 것이란 기대? 내진 이 엉망진창인 세계를 조금은 다스릴만한 구세주로써의 존재로? 하여간 영화를 보는 내내 조연인 그를 보는 맛이 괜찮았는데, 어쩌면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이 아닐까 싶다.연출력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내용도 어설프지 않았는데도, 다음 장면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는 점이 그닥 없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을 놀라게는 하지만 다음 장면이 기대되지 않는다는건 , 엄밀히 말해 좋은 영화의 작법은 아닐터이니 말이다. 다음 장면에 무엇이 나올까 기대를 하면서 몸을 앞으로 내밀고 봐야 함에도, 이 영화는 다음에 무엇이 나올까 꺼려져서 몸을 뒤로 빼면서 봤다. 마지못해 끌려 다니는 그런 기분? 왜 안 그렇겠는가. 정황상 다음 장면엔 최소한 누군가를 패는 장면, 수위가 올라간다면 누군가가 죽이는 장면, 뇌물이 오고 가거나, 협박이 난무하거나, 연줄을 이용해 혐의에서 풀려 나거나...그런 장면들이 이어질게 뻔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의 뒷면이 저렇게 돌아가는구나 학습을 제대로 하긴 했지만서도, 그게 그렇게 유쾌하지도, 대단한 교육을 받은 듯 뿌듯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겐 수컷들만이 공유하는 폭력과 연줄과 힘의 세계를 보는 맛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여간, 폼나게 사는게 그렇게 힘들어서야... 절로 한숨이 나온다. 아마도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아서 우린 그냥 폼이 안 나는 대로, 지금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력하며 살자고 다들 말들 하지만서도, 어떤 분야에 노력을 할 것인지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고 뛰어 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무작정 노력하고 폼 나게 살게 되었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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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영카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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