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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ㅣ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올케가 홍콩 출장을 다녀 오면서 선물로 쿠키를 사왔다. 어떤 맛인가 싶어서 한 입 베어 문 나는 뜬금없이 과거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있잖니? 예전에 롯데 월드에 쿠키 전문점이 있었어. 요즘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쿠키만 파는덴 드물었거든? 그런데도 거긴 꿋꿋하게 쿠키만 팔았지. 기분이 아주 안 좋은 날이면 거길 들러서 쿠키를 사곤 했어. 그걸 담아들고 버스를 타고 오다보면 기분이 절로 나아지곤 했는데... 커피랑 함께 먹을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흐믓해졌거든. 말하자면 기분 나쁜 날에 대한 보상이랄까, 위로였지. 자주 안 사 먹어서 그랬을까? 그쪽을 지나 칠 때마다 쿠키만 파는데도 어떻게 망하지 않을까 궁금해 했어. 팔려 가지 못해 쌓여있는 쿠키 더미를 볼 때마다 조만간 가게가 없어지는게 아닐까 걱정도 됐고. 그렇게 되면 나는 어디서 그런 위로 거릴 찾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만 슬퍼졌거든, 그렇다고 내가 더 자주 사먹은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던 올케가 한마디 한다.
" 그래서요? 거긴 어떻게 됐는데요?"
" 응? 아, 거긴 망했어.결국..." 그리곤 내가 왜 이 말을 꺼내게 된 것인지 더이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니, 무슨 허무 스토리도 아니고, 결국 망했다는 말을 하려고 그 이야기를 꺼낸 거였어? 골자가 뭔대? 내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무언가 근사한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꺼냈던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왜 그 이야기가 튀어 나온 것인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를 흐른 뒤, 더이상 보탤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금은 무안해지고 계면쩍어진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을 남긴 채...
왜 그 이야기가 튀어 나오게 된 것인지 깨달은 것은 올케가 가고 나서 한참 뒤였다. 선물받아 기분 좋은 아이가 종종 그러하듯, 혼자 은밀하게 쿠키를 꺼내 들고는 호기롭게 딱 한 입 베무는데,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 들었다. 아~~~그 집 쿠키! 그래, 맞아, 그 집 오트밀 쿠키 맛이었구나. 내가 그 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그러나 그 집이 망한 뒤로 다시는 맛 보지 못했던 바로 그 맛~~올케가 가져다 준 쿠키가 추억의 맛을 재현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혀는 기억하고 있었다. 뇌가 미처 그걸 알아차리기도 전에...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맛에 관련된 모든 추억들이 그렇게 한순간에 되살아 나다니... 역시 프루스트 천재였구나. 이런 순간들을 그렇게 정교하게 잡아내다니 말이야. 그리곤 놀랐다. 같은 맛이라는 이유로 오래된 추억은 물론이고, 그때의 감정마저 되살아 났다는 것이. 요리에 관련한 나는 내게 그런 감상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나는 음식에 관한한 별다른 감흥이 없다. 추억마저 별로 없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조리한 음식만 먹어서 그런가, 배가 고프니 먹었다가 전부다. 그런 나와는 달리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분 22명은 음식에 관한한 할 말들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들이 다양한 요리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건데, 흥미롭던 점은 그들의 이야기가 별스럽지 않게 공감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분명 내 것이 아닌데, 다른 이의 추억이라고 해도, 그렇게 생경한 느낌이 없이 듣게 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 아닌가. 왜 그런 것일까? 먹는다는 행위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공감이 가게 하는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하여간, 여기에 글을 써주신 작가들이 말하는 그들의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들" 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간단하게 예만 들어본다면 비싸고 화려한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배고프고 힘들때 먹었던 주먹밥이 맛있다는 백영옥님, 친구가 만드는 과자이라서 더 정감이 어린다는 이브콘의 주인공 조진국님, 연애 시절 남친을 카레라이스 애호가로 만들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안 은영님, 삶이 심드렁해질때 딱이라는 빨개떡 칭송자 박 상님, 피요드르 절경 앞에서 깨닫게 된 진리, 라면은 완전식품이다를 설파하던 김 어준 님, 힘겨운 인생을 싱그러운 커피 내음 한 잔으로 이겨내던 엄마를 추억하던 이 지민님, 언젠가는 맘에 맞는 누군가와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차유진 님, 그리고 와인의 맛과 더불어 인생의 멋을 알게 해준 제주도 박사님을 추억하는 남 무성님등...타인의 추억이고 맛임에도 정겹게 읽기 어렵지 않았다. 어쩜 다들 이리고 쉽게 쉽게 자신들의 추억들을 술술 털어 놓으시던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지 않는 수필을 읽는 맛이 참으로 좋더라. 요즘은 다들 이렇게 쉽게 쉽게 잘 쓰시는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 당신에겐 음식에 관한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 아마 분명 생각나는 어떤 것이 있으실 것이다. 나처럼 무미 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는걸 보면 말이다. 생각이 나지 않으신다고?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이 책에 나오는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나의 머리속에 봉인된 추억들이 모락모락 피어날지도 모르니까. 영혼의 허기를 채우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음식에 대한 묘한 감상과 추억에는 흠뻑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따스한 정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