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헬프 - The Help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대학 졸업후 고향인 미시시피 잭슨으로 돌아온 스키터는 친구들이 다 결혼을 해서 유부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혼보다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작가가 되기 위해 경력부터 쌓기로 한다. 다행히 지역 신문사에 살림정보 칼럼을 맡게 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그녀가 살림에 대해 뭘 알겠는가, 생각끝에 그녀는 친구의 흑인 가정부인 에블린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자신 역시 흑인 가정부 콘스탄틴에 의해 길러졌던 스키터는 친구의 아이를 정성들여 키우는 에블린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동시에 자신의 아이 대신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그렇게 공들여 키운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 못지 않은 상전이 되는 남부의 시스템에서 말이다. 마침 흑인 가정부들과 한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갖가지 소동이 벌어지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스키터는 가정부들의 애환을 들어보기로 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들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제안에 펄쩍 뛰는 에블린, 과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결국 입을 연 자신들만 상처를 입을 거라고 화를 내던 에블린은 결국 스키터의 열정에 지고 만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던 에블린은 더 많은 가정부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말에 친구들을 구워 삶아 보지만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에블린의 절친으로 누구보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못마땅해 하던 미니는 스키터를 만난 뒤 날밤을 새가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과연 그들의 화끈하고 비밀스런 반란은 성공할 것인가? 책이 출판될 거라는 말에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날까 공포에 떨던 미니는 스키터에게 모종의 보험을 제안하는데...
원작을 읽었기에 볼까 말까 망서리다 보게 됐는데, 원작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은 원작의 감상적이고 가식적인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서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주효했다. 원작을 보면서 미심쩍은 마음에 고개를 갸웅뚱하게 만들던 장면들이 이 영화속에선 말끔하게 제거 되었으니 말이다. 한 장면 정도는 눈살을 찌프리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원작보다 더 설득력이 있던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보게된다는 점에서는 나쁠 건 없지 싶다. 아마 영화를 먼저 보고 반해서 원작을 읽으신 분들은 살짝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드실지도... 분위기나, 주인공들의 매력이란 점에서도 차이가 많이 날테니 말이다. 매력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배우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우선 주인공 스키터 역의 엠마 톰슨은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신선하고 귀여웠다.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라고 하던데, 보니 이해가 되더라. 예쁜 것은 둘째치고라도, 아직은 세상사에 서툰 사회 신입생의 모습을 어찌나 똑소리나게 연기하던지. 원작의 주인공이 그녀의 절반만큼이라도 매력이 있었다면 책에 훨씬 더 호감이 갔겠지 싶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다소 유우부단하게 세상에 끌려 가는 듯한 모습이라, 그녀의 반란이 다소 설득력이 부족했다면--도무지 그녀가 왜? 라는 의문이 내내 가시질 않았었다.아마도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면 원작의 그녀가 더 현실적이긴 했을 것이다.-- 영화속 스키터는 당차고 대찬 모습에 단호하기까지 해서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를 무리없이 끌어가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 오랜만에 보는 씨씨 스페이식이나 가정부를 처음 고용한다고 환호성을 지르던 남부의 마를린 몬로, 그리고 흑인 가정부로 나오는 두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각본의 영리함과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로 두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더라는 점에서 영화는 일단 성공했지 싶다. 자칫 잘못하면 교훈만 남발하는 지루하고 지겨운 영화가 될 가능성이 많았는데, 용케 그걸 피해간 느낌이다. 인종 차별이나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걸 웅변조나 설득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 한다는 점도 좋았고. 나름 장점이 많은 영화긴 하지만 그럼에도 남성분들에게 어필하긴 부족하지 않을까 한다. 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고, 그녀들만의 성장이 있는 영화라 그렇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들이 인종차별을 하면 폭력이나 살해로 치닫지만, 여자들은 무시와 격리를 시킨다는걸 깨달았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들의 두려움 표현 방식인 듯...

저번에 책을 보면서도 느낀 것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더 선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과연 낳은 사람과 기른 사람중 누구를 엄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 등장하는 남부 여인네들은 아무도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가정부에게 맡기곤 그만이지. 그들은 아이를 낳기만 할 뿐, 아이를 재우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말을 가르치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자긍심을 심어주고, 아이가 낙담할때 위로를 해주는 것등 귀찮고 더럽고 힘든 일은 다 가정부가 한다. 생모가 하는 일이라곤 아이가 죽지 않았는지 가끔 체크하는 것일 뿐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과연 누구를 진짜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질문에 정답은 아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서도, 과연 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인간의 아이를 감히 속일 수 있다고 우린 착각하고 있던 것은 아닐런지...왜냐고? 내가 바로 그런 아이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정부의 손에 큰 아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긴 했지만, 커보니 그게 그렇더라.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 그러니 엄마 노릇이 힘들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특히나 엄마라는 자리는 거저일 수가 없다는 것을.
<추신--네영카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