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들기 전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
S. J. 왓슨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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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읽었던 데뷔작 중 단연 최고다." 라고 쓰인 표지 말에 고개를 흔들어 본다. 아니, 이게 최고라고? 얼마나 책을 안 읽었으면 이게 최고냐 싶은 것이다. 일부 데뷔작중에선  보통 작가들의 최고 수준보다 월등한 작품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 책에 최고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그나마 "지금껏"이라는 단어에 강조점을 찍었을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단어 때문에 마지못해 수긍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말이다. 어쩌겠는가? 좋은 데뷔작을 그다지 접하지 못했다는데...그건 봐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간 지금껏이건 앞으로건간에 데뷔작으로 최고라는 말은 전혀 붙일 수 없었던 데뷔작이다. 제목이나 표지가 매혹적이긴 했지만서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표지가 내용의 허술함을 가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작가가 열심히, 아주 열심히 쓴 책이라는 말에 좀 점수를 줬다. 최선을 다해 쓴 글이 이것이라면 작가로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일테니 말이다.

내용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어제에 일어난 일을 기억 못하는 크리스틴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다. 이십대 시절 당한 폭행으로 인해 뇌를 다친 그녀는 거울속의 자신이 낯설기만 하다. 26년을 훌쩍 뛰어 넘어 중년의 여인이 서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자신만이 낯선게 아니라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마저 낯서니 말이다. 벤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지난 26년간 매일 매일 기억이 없는 자신을 일깨워 준 것도 자신이고, 그것이 그들 부부의 일상이라는것을 알려 준다. 아무리 기억이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그를 사랑했다는 느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조차 없다는 것이 크리스틴을 더욱 더 미심쩍게 한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에 식겁하는 그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현실에 더욱 더 좌절하게 만든다. 그런 그녀에게 정신과 의사가 전화를 걸어온다. 남편 몰래 전화를 걸라고 했다면서 그간 비밀리에 상담을 해왔다는 말에 솔깃하는 크리스틴, 그녀는 남편 몰래 자신이 비밀일기를 적어왔다는 말에 찾아본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쓴 글씨로 "벤을 믿지 마라."라는 말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곤 의구심을 갖게 되는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그야말로 열심히 썼다고 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썼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선 작가에게 점수를 주고 싶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상상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게 쉬운건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좀 이야기가 억지 같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26년간이나 한 여자에게 매달리는 남자라? 하...그것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를 말이다. 종종 삶을 낭만적으로 보는 작가들이나 감독들에게서 보는 현상인데, 병을 다루는 것이 꽤나 재밌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사랑만 있다면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을거라고, 아니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는 장면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착각도 참 유분수다. 그런 점이 바로 그들의 통찰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있는 것일 것이다. 아니면 성격에 병적인 어떤 심리가 숨어 있거나...전신마비가 된 여인을 돌보는 영화<그녀에게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작품)를 보면서 난 감독의 시선이 무척 난감하고 불편했었다. 그의 시선을 비록 사랑으로 덧칠을 하긴 해서 헷갈려 보일 수도 있는데, 분명 그는 정상이 아니다. 상상력을 위해서는 그런 병적인 심리는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서도, 그게 진실일거라 생각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말이다. 카프카가 왜 그렇게 유명할 거라 보시나? 그에겐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진실 그대로 바라보는 통찰력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는 그저 통속적인 작가 수준에 머물수 밖에 없는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그게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자를 지극 정성으로 보호하려는 남자가 나온다. 사랑이라는데 이해가 안 간다.  그도 이해가 안 가지만, 이런 저런 단서들을 모아서 자신의 과거를 뚜들겨 맞춘다는 그녀 역시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기억을 못 찾던 그녀가 26년만에 충격 때문에 기억을 찾았다네? 참 그렇게 쉬운걸 왜 26년이나 걸려가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렇게 충격으로 망가진 뇌가 회복이 쉽게 회복된다는 설정 자체가 우습다는 것이다. 해피엔딩, 모든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설정이긴 하나, 주인공이 되면 이렇게 불가능하다는 회복도 되는가 싶어 씁쓸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건 물론이고, 병 자체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없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 애초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에게 집착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일 것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도 모르는 여자를 그대로 여전히 아무 갈등없이 사랑한다고? 웃기고 있네, 사랑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데 말이다. 하여 작가가 열심히 썼다는 말에 점수를 팍팍 주고 싶었지만 노력한 만큼 몰두해서 볼 수는 없었던 책, 바로 이 책이 되겠다. 그래도 이건 맞을 질 모르겠다. 내가 잠들기 전에 읽으면, 잠이 잘 올수도 있다는 것...뭐, 내 경우를 보면 그것도 아니었지만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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