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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그책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유행인 모양이다. 어쩌다 그 말이 유행이 됐는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이 들려 오면 난 왠만하면 들여다 보지 않는 편이다. 진짜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기도 하고. 그냥 단순한 진실도 감당하기 버거운게 판에 불편한 진실까지 파헤치며 살라고라... 노 땡큐다. 그런 극성 사라진지 좀 됐다. 그리고 그게 그다지 나쁘게 생각되진 않는다. 알지 못한다고 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진실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 불편한 "이라는 말이 정말로 불편해진 요즘, 이제보니 이 책 뒤에 그 단어가 떡하니 쓰여져 있다. <불편한 현실>이라고...아, 참 나...난 그걸 왜 리뷰를 쓰는 지금에서나 봤단 말이냐, 반성이 된다. 그랬다면 시간 낭비, 감정 낭비는 줄였을텐데 말이다. 표지에 쓰여진 문구라고 해서 무시하진 말았어야 했는데 싶다. 아무리 책을 빛내기 위한 미사여구로 쓰여져 있다고 해도, 어느정도는 책 자체에 대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가끔 잊어 버린다. 하긴 다시 뒷 표지를 보니 내가 무시할만도 했지 싶다. 구성이 탄탄하고 조나단 스위프트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작품이라고 써 있으니 말이다.아이고,이러니 내가 표지를 안 읽지. 한숨이 나온다. 이럴땐 그냥 웃는게 나을지도...하하하...하면서.
버트 데보레는 23년간 제지 회사에서 일한 중간 간부다. 제지 일에 관해선--즉 자신의 일에 관한한 --남들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그는--다시 말해 회사에 필요한 인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회사가 캐나다의 제지 회사에 팔리면서 일자리를 잃는다. 8개월동안 이직을 위한 교육을 받아온 그지만 실직의 충격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 곧 같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착각으로 밝혀지고, 2년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그는 모종의 수를 내기로 한다. 자신과 같은 전문가를 하나씩 처지하기로 한 것이다. 신문에 구인광고를 낸 그는 이력서를 보내온 사람들 중에서 자신보다 더 나아 보이는 후보들을 처리해 버리기로 한다. 문제는 그가 평생 남을 죽여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총을 쓰다듬으며 그는 자신에게 용기가 있기를 빌어보는데...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아마도 그가 계획에 성공할 수 없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심한 중년의 사내가 단지 일자리 때문에 살인에 나선다? 그것도 연쇄 계획 살인을? 성공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성공은 커녕 시도에서 끝날 것이라는게 내 예상이었다. 그나마 이 사람은 보통의 경우를 넘어선 것이니 말이다. 다들 일자리가 중요하다는건 알지만서도, 그것때문에 사람을 죽일 생각은 못하니 말이다.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도 이 책속의 주인공이 한 발 나간 사람이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계획 단계에서 그칠 것이라는 것은 내 착각이었고, 그는 벌벌 떨면서도 차근차근 일을 수행해 나간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을 불편한 심정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왜 우리가 싸이코 패스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어감의 뉘앙스를 잘 해석하시길...사전적 의미의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라, 싸이코 패스란 존재에 관한 해석을 좋아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우리는 그들이 타인에 대한 공감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아무런 감정없이 살인을 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안도한다. 그럼 그렇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 악할 수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겐 병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선천적인 병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즉,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충동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일을 벌인 것이라면, 일말의 이해가 되기도 한다.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싸이코 패스가 아니다. 그는 우리와 다름없는 보통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싸이코 패스 못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단지 일자리 하나를 위해서. 그것도 자신에게 떨어질 지 안 떨어질지 알 수도 없는 그런 자리를 위해서 말이다. 이건 불편하다. 차라리 치정이나, 거액의 유산이나, 뭐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이해가 될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저 일자리 하나를 위해서다. 자신의 위신을 세워줄 일자리 말이다. 아....이 한없이 불편함 감정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거기다 그가 죽여대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들이다. 살기 위해 하루종일 알바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일에 주인공보다 자부심도 높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주인공이 잘 안다. 그걸 알면서도 그는 꾸준히 사람을 죽여 나간다. 한번 시작한 일이기에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차라리 묻지마 학살을 보는 편이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싸이코 패스의 연쇄 살인이 더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죽여대는 광경을 보는 것보다 말이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 진다고 하는데, 난감하다. 무엇을 보면서 재밌어 하라는 것이냐? 열심히 사는 사람들, 그저 하루를 조용히 소란없이 보내는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고도 자신의 이익만 차리면 된다는 것을 감명깊게 보라는 것이냐, 아니면 이상한 논리에 빠져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대는 주인공을 보면서 저렇게 미치면 곤란하다는 것을 깨우치라는 것이냐?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런거? 어쩌면 이런 책에 열광하는 인간이 싸이코 패스보다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는 감정이란게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거 도대체 어디다 쓸 건데? 영문도 모른 채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