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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갤러리 - 현대미술을 움직이는 작가와 경매, 갤러리의 르포르타주
도널드 톰슨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종종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이 책 내용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나 살펴 보곤 하는데, 이 책만큼은 자신만만해도 되지 싶다. 은밀한 갤러리라. 딱 맞는다. 현대 미술 세계의 뒷면을 보여주는 책이니 말이다. 어떤 뒷면? 돈이 오고가는 뒷면이라고 보심 되려나?
우리 같은 서민이 미술계에 그나마 관심을 갖게 되는 기회는 어떤 어떤 작품이 최고 경매가를 갱신했다는 소식이나, 아니면 어떤 회장님 현관에 무슨 무슨 그림이 걸려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을때다. 한마디로 뉴스에 소개될만큼 드라마틱한게 아니라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앵커가 읊어주는 뉴스를 밥을 먹으면서 들으면서 아니, 저게 최고가라고? 눈이 삐었나? 아니면 돈이 썩어 나는가 보구만...이라고 한마디씩 하는 게 우리가 하는 유일한 미술 비평이라면, 그런 말 뒤에는 이런 마음 역시 숨어 있을 것이다. 정말 저게 그만한 가치가 있단 말이야? 그런데 왜 내 눈엔 그게 보이지 않는 거지? 만일 당신이 그런 질문을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이 책을 들어봐도 좋다. 이 책의 작가 역시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우리와 다른 게, 그에겐 정보와 지식과 관심과 호기심을 풀만한 지성과 무엇보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알고 있는 인맥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완 달리 저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 나가기 시작한다. 왜 저 그림은 그렇게 비싼 것일까? 진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대답은? 물론, 그렇다는 것이다. 부자가 될만큼 돈을 번 사람들이--그만큼 돈에 빠삭하다는 뜻.-- 뭐하러 돈도 되지 않은 것에 돈을 쏟아 붓겠는가? 물론 1990년대에 일본 부자들이 미술품들을 묻지마 투자 한 것은 유명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치가 없는 것에 돈을 투자했다고 볼 순 없다. 경졔에도 버블이 있든, 그당시 미술계가 다시 없는 버블장세였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미술품을 산다는 것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똑같더라. 아니, 이 세상 모든 상품시장의 메카니즘과 다를바가 없었다. 물론 물품의 숫자가 한정되었다는 점이나, 그 물건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들이 다른 상품들과 차이가 있겠지만서도, 그외 다른 면에서는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미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이 예술품이라고 우겨도, 콜렉터에게 수집되서, 딜러들에게 중개가 되며, 경매장에서 팔려 나가는 미술품은 그냥 물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고상하다는 예술계 역시 모든 경제 이론들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욕망이 그 어지러운 장세를 더 어지럽게 한다는 점 까지도... 묻지마 투자가 가능한 이유나, 예술품의 품질과는 상관없이 인기가 가격에 영향을 주며, 그렇기에 사람들의 관심의 촛점을 받는 것이--한마디로 악평이 무평보다 낫다는 그런 말--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마디로 점잖다는 미술품도 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천박하다는 (?) 연예인과 다를게 없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경제 현상에 대입해서 미술계를 알기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아이돌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볼만한게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미술품도 마찬가지다. 인기란 것이 무형의 것이긴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를 내릴 정도라면 작품성이 어느정도는 보장된다는걸 이 책을 보고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는건 무언가 있다는 뜻이라고 사람들은 은영중에 생각하고, 실제로 또 그것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의한다. 그렇게 예술품이 주목을 받고, 관심의 촛점이 되고, 인기가 상승하고, 그러다보면 가격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니 작가가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굉장한 드문 기적이었다. 그의 그림이 작품성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도 띄어야 하니 말이다. 여기서 우린 미술품의 가격을 올리는데, 작가의 재능보다 더 중요한 다른 요소를 만나게 된다. 가격을 올려주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컬럭터고 그의 안목은 곧 브랜드화 된다. 즉, 미술품에도 루이 뷔통이나 샤넬, 티파니같은 브래드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미술계에서 브랜드란 곧 컬렉터의 이름을 뜻한다. 누가 누가 그 그림을 수집했었다더라...라는 말 한마디로 그 그림은 가격은 치솟고, 작품성을 보장 받으며, 작가는 명성을 보장받게 된다. 브랜드의 가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된다. 모든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보는 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세상엔 안목이 있는 사람보단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고, 또 돈을 벌려다 보면 안목을 기를만한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안목이 없지만 돈이 많은 분들에겐 컬렉터가 수집한 수집품이었다는 사실은 그 작품을 의심없이 사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그것을 산다고 해도 나중에 투자 가치를 돌려 받을 수 있을 거란 뜻이다. 안목은 없고, 바쁘고, 돈은 어디다 써야 하고..라는 분들에게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과시를 하기 위한 투자 수단으로 콜럭터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만큼 쉬운게 어디 있겠는가? 든든하고 확실한 투자 수단으로 제격이라는 말이다. 이제 확실하게 이해가 되시는지..
왜 미술품이 그렇게 비싸고, 관심의 촛점이 되며, 못사서 난리들인지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보심 좋을 것이다. 재밌다. 무엇보다 그들이 미술품에 그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단지 미적인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투자 목적이나 과시용이라는 설명은 통쾌하기 까지 했다. 가장 단순한 답이 가장 정확한 대답이랬다고...이 대답이야말로 그 예술품이 너무 아름다워서 샀다는 말보다 더 그럴 듯하게 들린다. 물론 인간이 창조한 예술품에 감동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의 자질이겠지만서도 말이다. 그외에 콜렉터가 그림을 구매하는 과정이나 동기도 흥미롭긴 마찬가지였다. DNA에 수집광이란 유전자가 새겨져 있어야 가능할 것 같은 수집광들의 경쟁이 현대 미술사를 새로 쓰고 있는 동력이 된다는 점도...
연막에 가리워진,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겨대면서 일반인들을 무지렁이 취급하는 현대 미술계의 뒷면을 철저하게 파헤쳐 보여준다는 점에서 카타르시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서 조롱끼다 다분한 그런 책이라고 느껴지실 지 모르겠는데, 그건 오해다. 작가 자신이 점잖고 지적인 사람이라서, 어찌나 말도 점잖게 하시던지...읽는 내내 입가에 엄마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흐뭇해서 말이다. 하여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만점, 하고 싶은 말을 가리지 않고 한다는 점에서 만점, 그 말을 천박하지 않게 내뱉을 줄 아는 지성이 있다는 점에서 만점이다. 아, 유머 감각도 넣어야 겠군...충분히 지루해질만한 이야기를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풀어내가는 통에 별로 지루하지 않게 읽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감동만 있었다면 별 다섯개를 주었으련만... 그게 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르뽀식의 까발리는 책에서 무슨 감동까지 바라겠는가. 그저 현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하지 않는가 한다.
미술계는 어렵다? 우리는 별로 어려워 하지 않는데, 갤러리 관계자들은 어렵다고 한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에 적잖이 서러워 하고 기분 상해하셨을 분들은 꼭 보시길...그들의 실체가 낱낱히 까발려 지니 말이다. 그게 뭐냐고? <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왕 아니고 뭐겠나. 아무것도 없기에 무언가 잔뜩 있다고 허세를 떠는 인간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