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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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셔 정육점집 아들 마커스 메스너는 대학에 들어간 뒤 부쩍 안달하는 아버지 때문에 걱정이다. 그저 공부밖에는 모르는 그를 아버지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면서 닥달을 해대는 것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해도 자신의 말을 곧이 듣지 않은 아버지를 피해 마커스는 멀디 먼 오하이오 대학으로 편입을 한다. 드디어 공부만 할 수 있겠구나, 드디어 정육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어 라면서 좋아하던 그는 대학 생활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는 것에 실망한다. 우선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전혀 배려라는걸 모르고, 간신히 사귄 여자친구는 첫날 데이트에 그와 섹스를 시도한다. 그녀의 도발적인 행동에 기겁을 한 마커스는 그녀가 알콜 중독에 자살을 기도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젠 식겁한다. 그녀를 옹호해줘야 할지, 아니면 멀리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 한 마커스, 자식의 안부가 궁금해진 엄마는 머니먼 길을 찾아와 주지만, 그를 기다리는건 아버지가 이상해졌다는  것과 이혼하고 싶다는 엄마의 폭탄같은 선언이다. 어떻게 된게 산넘어 산인 자신의 청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마커스, 과연 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 

말 많은 아저씨 필립 로스가 다시 돌아와 유감없이 자신의 입담을 과시하고 있던 책이다. 그게 좋은 쪽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작가로써 입이 쉬지 않는다는건 적어도 다행스런 일이지 않을까 한다.  다만 필립 로스의 입은 쉬고 있다고 해도 딱히 아쉬울게 없는게, 읽어가다보면 그다지 더 듣고 싶단 생각이 안 든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작가로서 그다지 썩 좋은 자질은 아닐 듯 싶다.

이 책 <울분> , 단점을 꼽으라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동화는 아니라도 응원 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디다 확 버려 버리고 싶은 성격이었다는 점이 특징일 것이다. 물론 젊은 시절의 혼란이나 방황? 있을 수 있다.  다만 그걸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의 자세,  지나치게 흥분 잘하고 예민한데다 중심 못잡는 이런 스타일,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의 삶을 산 듯 지쳐버린다. 그렇다보니 필립 로스가 책 속 주인공을 죽여줄때마다  이젠 반가운 마음 마저 든다.  자신의 책 속 주인공들을 이렇게 꾸준히도 죽여 버리는 작가도 드물지 싶은데, 읽다 보면 왜 작가가 그럴 수 밖엔 없었을지 이해가 된다. 작가도 죽여 버리는게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의 주인공이라면 그가 죽었을시 친지가 죽었을때보다 더 섭섭해 하는게 정상이건만, 필립 로스의 주인공엔 그런 일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니 더 나아가 감사하게조차 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적어도 현실을 반영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할까? 하지만, 그래도 죽어서 다행이었어요라는 안도감까지 들게 하는건 너무하지 않는가 싶다. 하도 발광 하는 삶을 살아주시는 주인공들을 지켜보다보니, 차라리 죽어서 잠잠하게 있는 그들이 마치 성공이나 한 듯 다행이다 싶으니 말이다. 너무 잘쓴 소설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생명에 대해 존중심을 별로 갖지 않게 해준다는 점에선 마음에 든다. 생명은 너무 소중한 것이니까요, 라면서 호들갑을 떠는 작가를 보면, 저 사람은 아무래도 머리가 나쁘지 싶기도 하니 말이다.

어쩜 1950년대 미국 뉴워크는 진짜 이랬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살고, 이런 분위기 였으며, 이런 등장인물들이 삶을 살면서 고민을 했겠지. 필립 로스가 잘 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한 것이니 그랬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 외에도 그저 평범하게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시대를 더 반영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이 필립 로스식의 소란함으로 첨철된 책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눈에는 왜 언제나 이런 루저만 눈에 뜨이는지 모르겠으나,  그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짐작이 되긴 하지만서도, 이런 루저들의 행보는 그다지 정이 안 간다는 것이지. 그런 점에서 참 일관성있게 싸가지 없는 등장인물을 양산해 주시는 필립 로스, 적어도 개성 넘치십니다요, 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현실적이여서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의 주인공처럼 사는 건 정말로 피곤할 것 같다. 정신 사납고...오죽하면 일찍 죽는게 더 나아보이겠는가? 말 다했다니까.

그럼에도, 한가지는 탁월했던 점은 짚고 넘어가야 겠다. 아들이 독립을 할 나이가 되자 미쳐 버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때문에 진짜 미칠 지경이 되버린 아들의 갈등 말이다. 아마도 그건 아직도 어디에서나 보기 어렵지 않은 설정 같아 보여서다. 그 갈등을 잘 풀어 헤처 나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드물다는 것을 알기에, 그로 인해 모든 것이 꼬여버린 부자의 모습을 잘 포착해 낸데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였다는 생각이다. 그러고보면 건강한 부모 --자식 관계가 가져야 하는 기준 선을 알고 지키는 것도 굉장한 행운이다. 부모--자식 모두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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