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 우아하고도 쓸쓸한 도시의 정원
토머스 프렌치 지음, 이진선.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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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건 간에 파고 들어가기 전에는 간단하고 쉬워만 보이기 마련이다. 동물들을 아생상태, 즉 자연속에서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물보호론자의 주장만 봐도 그렇다. 얼핏 그들의 말은 옳게 들린다. 내가 동물이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태어난고향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나와 다르지 않는 친구들 틈에서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유와 행복의 기본 아니겠는가. 고향에서 강제로 머나먼 곳에 떨어져, 그것도 우리에 갇혀서 , 친구들도 친척들도 없는 곳에서 살라고 한다면 난 아마 무척 외롭고 슬프며 울적해질 것이다. 내가 그럴진대, 만약 동물이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한다면 그들도 그렇지 않겠는가. 인간과 동물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다를바가 없기에, 동물을 차별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니, 동물도 동물원에 갇혀 살게 하는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동물 보호론자의 생각, 틀리지 않아 보인다. 옳다 못해 이런 추론을 거듭하다보면, 동물원이 갑자기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도 한다. 아무리 갇혀진 동물이 귀여워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서두에 말했듯이 파고 들어가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동물들에 대한 이런 감정 이입이 과연 동물들에게도 옳은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자연이란 곳이 얼마나 생존에 가혹한 곳인지 모르는 우리 인간은 동물들이 우리 짐작과는 달리 속수무책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과연 적자 생존이라는 냉혹한 변명하에, 동물들을 그대로 자연속에 방치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만일 그래서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들이 그대로 멸종해 버린다면, 과연 그것이 우리의 이상과 맞아 떨어지는 결과일까? 그것이 바로 요즘 동물 보호론자들과 동물원 간의 갈등의 촛점이라고 한다. 간단하게 말해 이상주의자와 현실 주의자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이상주의자는 현실주의자를 향해 냉혹한 자연파괴주의자라고 외친다. 이에 질세라 현실주의자들은 그런 이상주의자들을 향해 세상 물정 모르는 성가신 미친넘들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 역시 동물보호론자들을 향해 미친넘들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진짜 동물을 사랑해서가 아닌, 그저 세간의 관심의 포커스가 되기 위해 쇼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고.그럴만도 하다. 왜냐고? 현실을 잘 들여다보면 보호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자, 보호주의자들이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하는 동물들이 처한 현실은 이렇단다. 인간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멸종에 처한 종들이 꽤 된다는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많은 동물학자들과 동물원관계자들이 애를 쓰고는 있지만, 그것 역시 과연 어느정도 성과가 있을지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 더군다나 자연상태가 점점 동물들이 살아가기에 험한 곳이 되어감에 따라, 인간의 개입이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이젠 절박하게 동물들을 우리가 도와줘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들을 자연상태에 두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버리는 꼴이 되어버린... 

 

미국의 한 동물원의 흥망성쇠를 들여다 보면서 동물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메카니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논픽션이다. 쉽게 읽힌다는 점이 장점인 이 책은, 무엇보다 동물들과 동물원 관계자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만하다. 아무래도 동물원 자체가 쇼에 가까운 성격이 있는 만큼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동물원에 어떤 동물들을 들여올지 결정하고, 그 동물들이 어떻게 동물원에서 적응을 해가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사육사들과 어떤 피드백을 갖게 되는지 잘 그려놓고 있었다. 작가는 스와질랜드에서 그대로 두었다간 사살되었을 코끼리를 들여오는 장면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읽어보니 왜 그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코끼리를 들여오는 사건이 동물원이 갖고 있는 산적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우아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지만 성격만은 팜프팜탈 그대로 였던 암 호랑이와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한 침팬지, 부상을 입고 들어온 듀공들을 살리려는 필사적인 노력에, 아기 코끼리를 생산해 내기 위한 사육사들의 노력들이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거기에 동물원에 빠지면 서운한 다른 주인공들, 즉 사육사와 동물원 주인과의 갈등 역시 묘사되고 있었는데,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동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아있는다는 사육사들의 모습은 이 책을 보고 첨 알았다. 어디서건 인간에게 착취란 벗어날 길 없는 모순구조긴 하지만서도, 동물원도 마찬가지라니 놀라웠다. 난 한때 사육사들을 정말 부러웠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동물들과 살면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줄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보니, 일은 많고, 존경은 별로 안 받는데다, 허드렛일을 하는 노예 취급을 받는 박봉의 월급장이에 불과하다고 한다. 충격적인 실상이다. 그러면서도 동물들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는걸 보니, 사육사들이 한층 더 존경스러워 보였다. 더군다나 종종, 사자들이나 뭐 그런 것들에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직장이라지 않는가? 갑자기 내가 사육사가 아니라는게 다행스럽더라. 인간이 이렇게 간사하다. 좋은 것만 보여주면 부럽다고 난리를 치다가도, 단점 몇개만 알려 줘도 당장 식겁해 대니 말이다. 때론 이런 인간이라는게 한없이 부끄럽고, 또 어찌보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사자에게 물려 죽어나 코끼리에게 압사해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말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그냥 심심풀이로 슬렁슬렁 읽어도 상관없고, 색다른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괜찮은 책이다.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간에 통찰력있게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도 만만하게 볼만한 책은 아니니 말이다. 적어도 멍청하게 남들이 하는 말만 받아적는 기자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작가가 자신의 견해가 분명하고, 박학다식한데다, 깊이 있는 정보를 갖고 있기에 자신만의 의견을 이리도 당당하게 쓸 수 있는 것이겠지 싶다. 동물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동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안성맞춤이다. 이렇게 잘쓴 동물기 역시 흔지 않기에 적어도 실망하지는 않으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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