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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 여섯 개의 도로가 말하는 길의 사회학
테드 코노버 지음, 박혜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인간은 왜 길을 만들까? 그리고 그 길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라는 작가 자신의 질문에 답해가고 있는 책이다. 놀랍게도 작가는 이 단순한 질문을 통해 세계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를 개괄해 버린다. 페루의 마호가니 목재가 미국 상류층에 전달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욕망이 불러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미국에서 최고급 자재로 인정받으면서 마호가니의 수요는 늘어났지만 공급은 수요만큼 탄력적으로 늘어날 수 없었다. 결국 남겨진 것은 남획에 따른 수량 부족과 불법 채취, 작가는 뉴욕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머나먼 나라 페루에서 벌어지는 소동들을 지켜보면서 나라간 빈부차가 몰고오는 불공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은둔의 나라로 머물렀던 티베트에 길이 뚫리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고찰한다. 과연 티베트 인들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변화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것일까? 서구인들이 티벳의 전통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사이, 그는 과연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것일까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당신이 만일 티벳인이라면 서구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가난하지만 마음은 평안한 삶을 택할 것인가? 어쩜 그것은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환상이 아닐까. 라고 묻는 것이다. 나 역시 작가의 견해에 공감을 표한다. 그외 아프리카의 화물 운전사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에이즈 확산 실태를 점검하고, 더불어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막아보려고 영웅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본다. 팔레스타인에 간 그는 길을 막아서고는 서로에 대한 증오를 노골적으로 키우고 있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들도 지켜본다. 그들의 갈등 해소 방안은? 꿈도 꾸지 마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중국으로 간 그는 돈 좀 벌었다는 표시인 자가용으로 단체 로드 트랩에 나서는 일단의 중국인들과 함께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라고스에 간 그는 빈민촌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도로를 지켜보게 된다. 거대한 혼돈의 아수라장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해 그는 존경을 표해야 할지, 난감해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한다. 아마 나라도 그 길에 서서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상, 길은 인간에게 상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변화를 위해서건, 접촉을 위해서건, 물류의 전달을 위해서건 길은 반드시 필요하니 말이다. 그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정감어린 작가의 시선이 아름답다. 솔직하고, 겸손하며, 넓은 시야에, 균형잡힌 시선은 그가 어떤 주제를 논하건 간에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다정한 통찰력에는 거만함이 없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나건--뉴욕의 상류층이건, 페루의 트럭 운전사건, 티벳의 아이들이건, 케냐의 화물 운전사이건, 이스라엘의 장교건 간에 --선입관이나 특권의식 없이 그저 그 자신으로 만나고 있었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것이 무척 즐거웠는데, 마치 믿음직한 오래된 친구를 만나 그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아주 아주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책이다. 뜸들이지 않고 핵심으로 들어가는 명료함에 예리하고 정감 넘치는 시선, 군더더기 없는 필체, 인간을 향한 다정한 시선등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런 사람의 시선이 옳고 바르다면야, 뭐. 뭘 더 바래야 하겠는가. 그저 입 닥치고 조용히 경청하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