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코리건 -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크리스 웨어 지음,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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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만화라, 만화인 관계로, 그림과는 상관없이 내용이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어든 책이다. 실은 제목을 잘못 읽기도 했다. 지미 코리건인 줄은 모르고, IMMY ORRIGAN으로 읽었으니 말이다. J와 C를 빼먹은 것은 뭐, 그렇다다 치고--책 실물을 보심 알겠지만 두 글자만 유독 안 보인다.--그걸 IN MY ORIGIN으로 읽은 건 또 뭐냐. 내 기원을 찾는다고? 설핏 그렇게 해석하고는 무슨 내용일지 궁금해진 것이다. 조금 후, 그게 아니라 지미 코리건,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제목이라는걸 알고는 어찌나 무안하던지...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 오해로 빚어진 해석이 얼추 맞아들어갔다는 것이다. 어쩜 작가가 그걸 노린 건가 싶기도 하다. 자신의 기원까지는 아니라해도,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었으니 말이다.

 

지미 코리건, 즉 작가의 극중 자아는 47살이 되도록 여자친구 하나 못 만들고 사는 딱한 노총각이다.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직장도 그의 삶을 비참하게 하지만, 하루에 몇번씩 전화를 해대는 엄마도 성가시긴 마찬가지다. 다 크다 못해 늙은 아들을 어린아이처럼 닥달하는 엄마는 아들이 그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날마다 전화를 해서 시시콜콜 별별 이야기를 다 늘어놓는 것을 본인의 의무라고 여길 뿐...엄마를 따돌리기 위해 자동응답기를 설치한 그는 어느날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이제 한번 볼때가 되지 않았냐는 짤막한 물음과 함께 항공티켓이 동봉되어 온 것이다. 평생 아버지를 모르고 살았던 지미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과연 그가 내 아빠일까? 만약 그가 아빠라면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 것일까?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라도 있나? 지금에 와서? 복잡한 생각이 오가던 그는 그래도 호기심에 아빠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그리고 공항에서 만난 아빠, 처음 만나는 참이라 몰라보지 않았을까 했던 지미는 아빠가 자신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에 기괴함마저 느낀다. 난생처음 아빠 노릇을 하느라 애를 쓰기는 하지만 전혀 아빠다운 구석이 없는 그를 보면서 지미는 실망해야 할지, 아니면 기가 막혀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렸을때 지미를 버린 것은 맞지만, 이제와서 미안하다는 변명은 하지 않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아빠. 지미는 자신이 상상하던 아빠와 조금도 닮지 않은 모습에 실망한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씩 아빠의 모습에 적응해 가고, 심지어 연민 비슷한 것마저 생겨나자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데...

 

처음, 늙은 나이인데도 엄마에게 시달리는 지미를 보면서 몹시 불쾌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하구만, 어랍쇼, 난생 처음 떡하니 아버지란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역시 가관이이었다. 왜 아들을 보려고 한 것일까? 늙고 병들었으니 이제와서 아들 덕을 보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이 충분히 가능한 사람이다. 갑자기 지미가 너무 가엾다 못해서, 읽기가 싫어졌다. 요즘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난 부모가 자식들에게 막대하는걸 보면 참고 보기가 힘다. 아마도 나의 경우를 투영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지만서도, 아마 누구라도 그런 상황을 목격하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여간, 불편한 마음에 안 읽을까 싶어 책 맨 뒤를 들춰 보게 됐다. 거기엔 작가의 말이 쓰여져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이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어떻게 하다보니 만화 연재를 하게 됐는데, 그게 연재를 계속할 정도의 인기를 얻는 통에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자신 역시 주인공과 똑같이 아버지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 만화를 그리는 동안 그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30년만의 침묵을 깨고 아버지로부터 온 연락, 작가는 치욕적인 좌절감과 분노를 삼키면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단다. 우려할만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가 상상해오던 드라마 역시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잘 모르는 두 남자가 할 말이 다 떨어졌을때, 얼마나 난처해지는가만 생생하게 경험을 뿐... 예상과 달리 후에도 아버지가 확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한(?)을 풀어준 것에 대해, 죽기 전에 연락 해준 것에 대해 작가는 고마워 했다. 그렇게 자신이 겪은 아버지의 부재와 상상속에서 그려본 만남을 솔직하게 그려낸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했다. 그 말에 접었던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분위기가 밝아지고, 읽을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아마도 지어낸 가공의 스토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인생이, 그리고 진심이 담겨진 것이라는걸 알고 보니 그랬을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처절함이 느껴져서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동안 아버지의 부재와 싸워온 사람에게 현실속의 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라... 이제 그는 어떻게 행동에 나서야 할까? 거기에 올바른 메뉴얼이란게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버지의 부재>라는 소재를 이 작가보다 설득력있게 그려낸 작가는 못 봤지 싶다. 어찌나 잘 그려냈던지 읽는 동안 좀 어지러웠을 정도니까. 아예 없는 것을 상상하며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정말 공허하더라. 와, 이런 더러운 기분으로 산단 말이지? 갑자기 세상의 아버지가 없는 모든 사람들이 가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텅 빈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그릴 경험이 있는 것과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역시 자신이 경험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싶다. 부재하는 아버지를 그리며 사는 것이나, 그런 아버지를 실제로 조우할때의 두려움과 만나는 것이나 섬뜩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런 점에서는 작가에게 고마워 해야 하지 싶다. 이 작가가 아니라면 절대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현실의 아버지를 만나기를 두려워 할 수밖엔 없었던 한 아들의 이야기,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지만, 그림 톤도 그렇고 이야기 전개도 그다지 밝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림은 누누히 말했듯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고, 이야기 전개 마저 그다지 매끄럽지 않으며, 부자지간을 넘어서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대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도 별로였다. 자식을 대를 이어 버리는 가계의 이야기가 뭐 그리 흥미롭겠는가. 가계 자체가 그다지 행복한 패밀리가 못 되는가 보았는데, 대를 잇는 반복되는 불행은 지루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 만의 고유한, 빛나는 장점들이 분명 존재했다. 무엇보다 작가의 냉소적인 유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림이 하도 개발 새발이길래 안 읽을까 고민하던 초반에 그는 다 안다는 듯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 변명의 여지는 없다. 이 책을 읽는다고 뭐, 대단한 것이 생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드느라 수고한 건 인정받았으면 한다." 라고. 책 속에 종이 모형 설계도를 그려놓고는 따라 해보라고 권유하다가, 복잡하다 싶으시면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적어놓는 등, 책 안에서 독자들에게 저자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장면들이 몇 개 있었다. 특히나 그런 부분에선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저자의 개성이 느껴졌다. 만화작가로 그림으로 승부하는 작가는 못 될 지 모르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상상하는 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재치있는데다, 통찰력 있다는 점에서 작가로써의 입지는 굳건하지 않는가 싶다. 그래, 인정한다. 만드느라 수고했다. 고생한게 훤히 보이더라. 하지만 남들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본인이 수고했다는걸 안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런지...

 

자신의 아버지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신 분들은 보시길...감정 이입이 워낙 잘 되도록 그려진 통에 상상하는데 어렵지 않다. 즉, 지미 코리건의 기분이 얼마나 엿같은 기분으로 살아가는지 실제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리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 그럼에도 타인의 경험을 잠시나마 알게 해줬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감사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런 작가가 있기에,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버지 없이 성장한 사람들은 정말로 대단하지 싶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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