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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추수 감사절 전날,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퀘벡주의 한적한 마을 스리 파인즈에 노부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흉악한 범죄라고 해봐야 이웃 밭에서의 채소 서리가 고작인 마을에 살인사건이라니... 경찰 조차 상주하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마을에 그것도 평생을 베풀고 배려하면서 살던 전직 교사의 죽음은 마을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분명 사슴 사냥을 나온 외지인의 소행이라고 단정한 사람들은 빨리 범인을 잡아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빛나는 경력의 소유자인 경감 아르망 가마슈를 급파한다. 오십줄을 넘긴 가마슈는 날카로운 직관과 관찰력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닌 수사관이다. 사건을 해결하는데에만 몰두한 덕분에 비록 동료들보다 승진은 늦었지만 그런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그와 함께 수사를 당담한 부하 보브아르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처음 수사를 같이 하게 된 신참내기 여형사 니콜은 그에게 배울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면 그의 눈에 들까 그것만이 관심사다. 그녀의 살가움에 반색을 했던 가마슈는 점차 그녀가 수사를 방해하자 짜증을 낸다. 거만하고, 예의 없고, 무례하고, 건방지고,충고를 비난으로, 비판을 재난으로 받아 들이는 니콜의 행동에 상사 보브아르는 눈살을 찌프리지만, 가마슈는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어린 싹을 자르는데 성급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이유다.
한편 사건으로 돌아와, 은퇴 교사 제인 닐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가마슈는 그녀가 화살에 의해 살해되었다는걸 알게 된다.사슴 사냥 시절이라 외지인에 의한 총기 우발 사고일거라고 추측했던 수사관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살인사건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한다. 화살로 심장을 관통해 즉사시키려면, 가까운 거리에서 의도적으로 집중해서 화살을 쏴야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다시 말해 실수로는 심장 관통사가 일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가 살해 의도를 가지고 쏜 것이며, 그것도 명사수에 의한 것이라는 검시결과를 전해들은 가마슈는 범인이 마을 사람들중 한명일거라 직감한다. 더군다나 시체에 남겨진 놀란듯한 표정은 가마슈로 하여금 범인이 그녀와 잘 아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짐작케 한다. 제인 닐의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한 가마슈는 제인처럼 온화한 할머니를 살해할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일까 촉각을 곧두세운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에 곪아 있는 단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25년의 수사 경력상,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동기로도 충분히 살해가 가능하다는걸 알고 있는 그는 죽기전 제인에게 일어난 특이한 사항은 없었는지 묻고 다닌다.
이에 제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클라라와 그의 남편 피터는 제인이 막 평생동안 그려온 그림을 전시하려 한 사실을 알려준다. 지나친 수줍음에 자신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들키는 것조차 꺼리던 제인이 용기를 내서 자신의 그림을 공개하려 했다는 것이다. 평생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그려오던 제인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공개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클라라는 비록 그림을 공개하는 것이 제인에게는 중요하고 이례적인 일이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제인의 살해에 연관되진 않았을거라고 말한다. 대신 마을의 게이 커플에게 욕설과 함께 오물을 던진 14살짜리 아이들 셋에게 의혹을 던진다. 죽기 전 제인이 그들을 훈계했었다는 이유다. 그외 제인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살펴보면, 한달전 엄마의 죽음으로 백만장자가 된 벤은 엄마의 친구인 제인마저 죽자 슬픔을 가누지 못한다. 제인의 죽음으로 대부분의 재산을 상속받은 조카 욜랑드는 기쁜 표정을 가눌 길이 없다. 탐욕과 가식의 대명사로 불릴만한 그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제인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다할 동기를 찾지 못한 경찰은 결국 화살을 따라 단서를 찾아 보기로 한다. 나무로 만은 화살촉에 그녀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마슈는 화살에 대해 문의하러 갔다가 수상하게 행동하는 크로프트 내외를 만나게 된다. 그들을 추궁한 가마슈는 그들의 아들인 필립이 제인이 죽던 날 아침 피가 묻은 화살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제인 닐을 죽인 자는 누구일까? 겨우 14살에 불과한 필립일까? 아니면 필립이 주장하는 대로 그의 아버지인 매튜일까? 매튜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가마슈는 진범이 따로 있다고 확신하게 되는데...
일단 초반 도입부부터 독자들을 끌어 들이는 필력이 만만찮다는걸 알려 드리고 싶다. 캐나다의 위대한 풍광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한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자가 그려놓은 스리 파인스의 경치와 정경과 마을 사람들의 정취에 취해 한눈을 파는 사이, 연약하기 그지없는 노인네 하나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능력도 출중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탐정 경감 가마슈는 제인의 시체를 보고 살인범을 잡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뒷 배경을 조사하던 그는 정말로 그녀가 살해될 이유가 없다는 것만 알게 된다. 그렇다고 주변 인물들 중에 그녀를 살해할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모두를 의심할 수도, 모두를 의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제인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것이 그녀의 그림과 관련이 있을 거란 심증을 굳힌다. 과연 그녀의 그림에 무엇이 있길래 그녀는 살해되었어야 했던 것일까? 심증은 가지만 윤곽은 여전히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범인이 누구일지 독자들의 흥미는 더해만 간다. 그리고 잡히는 범인은, 뜻밖에도 우리의 허를 찌르고 마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본 추리 소설인데, 미스 마플 여사가 재림한 듯 정겹고 완벽하기 짝이 없는 코지 미스테리였다. 이렇게 매력적인데다 새롭게 들리는 이야기를 아직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신선했다. 천국과 다름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 그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탐정, 20대의 치기로 삐딱하게 모든 사물을 받아들이는 골치덩이 신참 니콜, 자신의 천재성을 몰랐던 아마추어 화가 제인 닐, 그녀의 단짝들, 그리고 그녀의 과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이 책을 단순한 코지 미스테리물에서 구원해주고 있었다. 배경 마을을 탄탄하게 구성해 낸 것이나, 등장인물들의 묘사에 모순이 없는 것, 자연스럽다 못해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듯했던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 한시도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은퇴한 사람들의 마을 답게 다들 한가닥들 하시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이에 질세라 무게 중심 팍팍 날려 주시는 우리의 탐정 가마슈는 데뷔작이라는 말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기 그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책을 데뷔작으로 쓴단 말이냐, 감탄스러울 뿐이다. 하여 책을 덮은 다음 난 그녀의 다른 작품 검색에 들어갈 수밖엔 없었다 . 하여간 흔치 않는 스토리텔러다. 제2의 애거사 크리스티는 아니라도 캐나다의 애거사 크리스티 소리는 들을만한 중량감있는 작가가 아닐까 한다. 아니면, 10년이 지난 뒤엔 아가사보다 더 유명해졌을지도...하여간 재밌다. 인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추리 소설이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영리한 플롯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야말로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추리소설이다. 출판사에 바라건대. 제발 빨리 되도록이면 신속하게 2권,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