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결심한 엄마와 그 시간을 함께 한 세 딸이 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해서 집어들게 된 책이다. 감동적인 실화를 읽게 될 줄 알고 집어든 책이건만, 오히려 읽으면서 속이 갑갑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일단 "엄마" 와 "자살"이라는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나. 울고 싶을때 집어들면 딱일 것 같았다. 기대하던 감동까지는 아니라 해도, 책을 내서 엄마의 자살을 사방팔방 알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딸이라면 무언가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서 글을 쓴 것일 거라고 추측했었다. 맞다, 한 수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읽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 되기에 조금은 당황했다. 작가가 뭔가 알려줄 만한 처지가 못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엄마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고, 엄마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느끼는 것도 없으며, 엄마의 병을 지켜보면서도 엄마의 상태를 이해못하던 딸이 단지 엄마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책을 쓸 줄은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딱 그짝이지 싶다. 그저 넘쳐나는 슬픔과 과잉 감상으로 도배를 해놓았을뿐인데, 저자는 책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단지 엄마의 죽음이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소재정도가 될 거라고만 생각한건 혹시 아니었을지... 

남들에게 주목할만한 드라마틱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그동안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늘 좌절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야,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거야, 이건 좀 팔리지 않겠어? 이렇게 아름다운 미국의 중산층 백인 할머니가 병마에 지쳐서 자살을 감행했다고 하면 분명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거야, 난 그저 엄마를 사랑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면 그리고 엄마 역시 우리를 사랑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면 사람들도 감동하면서 우리를 봐주겠지. 라는...어쨌거나 죽었다잖아? 사람들은 죽음에 약하다고...이런 계산이 작가의 머리속을 실제로 넘나들었는지는 알길이 없으나, 실제로 그랬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이 책안엔 진지한 문제의식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벅찬 현실을 감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만 존재할 뿐...도무지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우리는 도대체 죽음을 얼마나 두려워 하는 것이냐? 한심한 생각마저 들었다. 왜 죽음이 영원한 공포로만 남겨져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봐도 좋을텐데 말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20년 넘게 파킨슨 병을 앓고 있던 작가의 엄마는 울혈성 심부전증, 천식, 만성 폐질환, 골다공증,관절염에, 초기 치매증상까지 겪게 되자 심각하게 자살을 준비한다. 자나깨나 나 죽을래를 동네방네 떠들던 엄마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자살을 위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안락사를 도와주는 협회에도 가입하고, 수면제도 구해 놓고, 마약까지 손에 넣은 엄마는 날짜를 정해 자식들에게 선포한다. 혼자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죽을 때 딸들이 곁에 있기를 원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질색인 딸들, 평상시에도 엄마와 별로 가깝지 않았던 딸들은 엄마의 자살을 지켜봐야 한다는 부담감에 엄마를 말린다. 결국 자살을 방조했다는 죄명에 걸려 들까 걱정한 저자는 엄마에게 아사를 권유한다. 이에 엄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정해진 날짜에 굶기에 돌입하는데...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이 작가의 엄마를 보면서도 든 생각이다. 70이 넘은 연세지만 다행히도 그녀에겐 돈은 많다. 딸들에게 간병비를 구걸하지 않아도 되고 집 안에 도우미에 간병사를 세 명이나 둘 만큼. 덕분에 딸들은 엄마의 괴로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엄마가 죽고 싶을만큼 아프다고 하는데도, 더 살라고 다그친다. 그게 엄마를 사랑하는 거라 생각하고,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는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엄마를 옆에서 간병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진짜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느껴봤다면, 나를 생각해서라도 참고 살라고는 못할테니까.  

 

하지만 그 딸들을 무심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이 엄마는 전형적인 나르시스트형 엄마였다. 딸들에게 관심이 필요한 어린 시절 그녀가 엄마로써 해준 것은 나 나 나 나 나 ...라는 주문뿐이었다. 가엾게도 착한 딸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나빠서라고 생각했고, 엄마를 탓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대신 엄마를 변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엄마는 그저 불행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를 이해한다고 해서 엄마로 인한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고, 더군다나 엄마 곁에 있었을 시에 받을 상처를 잊은 것도 아니다. 결국 세 딸들이 선택한 것은 되도록이면 멀리 엄마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나마 착한 딸이고 사랑받는 딸이고 싶었던 저자만이 남편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자살 소동에 꾸준히 관여하지만...  

 

그렇다. 이들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모녀 사이가 아니었다. 그녀의 엄마는 그다지 생을 잘 산 사람이 못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과거는 죽음에 있어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된다. 그녀가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데도 딸들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편하게 죽는 방법을 엄마가 찾아 올때조차 딸들은 방해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용기를 짜내서 찾은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 못한 채. 엄마가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횡설수설할때는 짜증을 낸다. 엄마에게서 배운대로 그들 역시 엄마보다 자신들이 먼저기 때문이다. 엄마를 그만큼 신뢰하지 못했다는 뜻도 되겠지만. 사랑은 할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랑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기에, 모녀는 죽음 앞에서 우왕좌왕한다. 아마도 그길이 꼭 가야 하는 길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영원히 그 결정을 미루고 말았을 것이다. 하여간 그 혼란 속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어떨 거라고 보시나? 감동적일 거라고? 죽음이 있어서? 글쎄...죽음이라는 말에 무조건 조건반사처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럴지도,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이 책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빠져있었으니 말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모녀 관계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그저 피상적인 고찰에 ,관습적인 반응뿐이었다. 왜 엄마가 자살이라는 수단을 택할 수밖엔 없었는지, 그 과정속에서 본인들이 당한 고통과 부담감들과 당황스러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피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해답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일게다. 오히려 그녀과 엄마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말을 자신의 생각과 안 맞는다고 씹기 일쑤더라. 그들의 말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였더라면, 엄마의 입장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여간, 당신은 어떠신가? 삶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시는가? 열심히 살자, 잘 살자. 그것이 잘 죽기 위한 우리의 최대 전략이 되리니....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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