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엔 자살하지 마라. 밑지는 장사다. 왜냐고? 나이 들면 사는게 한결 편해지기 때문에? 그랬음 얼마나 좋겠는가 만은 딱히 그렇진 않다. 단지, 아직 삶을 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인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 자신이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게 될런지 그땐 절대 알 수 없다. 절대 안 변할거라 생각한 내 사랑은 일주일짜리 풋사랑임이 밝혀지기도 하고, 당연히 잊을 거라 생각한 사랑은 늘 가슴 한켠에 자리잡아 떠나질 않을 수 있다. 이상주의자가 현실에 부딪혀 초라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일상이 되고, tv에서 떠들어 대던 그럴 듯한 이야기들은 긴가민가를 거쳐 드디어 불신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나를 그리도 이해 못하는 선생님이 도무지 사람 같아 보이지 않더니, 선생님이 되어보니 망나니 같은 학생들이 때론 두렵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들의 복지부동을 볼 때마다 불평했건만, 나는 아예 출근조차 하기 싫다. 뇌물과 횡령과 불륜과 음주운전과 성추행을 그렇게 비난하더니, 어느순간 그게 그리 나쁜 건 아니잖냐고 묻는 친구에게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할지 궁리해야 할 때도 온다.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에 나만 불행한가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서 내 부모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고, 영원히 용서를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여전히 삶은 복잡하고, 여전히 삶은 힘들다. 단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젊은 시절보단 아는게 많아 진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범위도 넓어지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을 과거보단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젊은 이들에겐 무엇을 고민하건 간에 조금은 자신에게 시간을 주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도 모른 채 삶을 마감하는건 너무 재미 없으니 말이다.

 

여기 이 책의 작가들은 둘 다 쉰 살을 넘긴 베테랑 저널리스트 들이다. 내가 왜 서두를 이리도 거창하게 시작했는지 감이 오시는가? 맞다. 그들은 젊지 않다. 벌써 한 세상을 좋이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엔 군더더기가 없다. 이미 살아봤기에 아는 이야기만 한다. 이상을 떠들지도, 자신이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남발하지도, 어깨에 힘 팍 주고 자신의 대단함을 설파하지도 않는다. 그게 별로 먹히지 않는다는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과거에 그들은 이상주의자였지만 지금은 버린지 오래라고. 오히려 속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에 안도를 한다. 해 봤는데, 그게 현실과는 맞지 않더란다.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솔직히 인정을 한다. 가혹한 동물 도살 상태를 생각하면 채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육식은 절대 포기 못하시겠단다. 정치가를 비난하고 자신의 냉소주의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만난 정치가가 의외로 공감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에 놀라워 한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에 반해 언론 플레이를 해야 하는 정치가들을 가엾어 한다. 그들 역시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란걸 이해하는 순간이다. 행복하지 않았던 부모를 생각하면 짠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행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저절로 용서되는 건 아니란다. 덕분에 가족지상주의자가 되어 열심히 가족들을 부양했지만, 과연 아이들이 자신의 노력을 가상타 해줄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단다. 행복한 가족을 꾸리는 동안 어린 시절의 불행이 치유되는 느낌이었으니까. 나름 사회에서 성공을 하긴 했지만 미래가 불안한것은 여전하다. 싱글 마더가 될까 두려워 자신에게 조언을 청하러 온 친구에게 낙태를 권유했다. 그녀는 낙태를 했고, 나중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그렇게 갖고 싶어한 아이는 끝내 얻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한 조언이 그렇게 아픈 결과를 나을 줄은 몰랐단다. 하지만 후회는 앞서는 법이 없으니...

 

그렇게 두 남자가 정치와 인생, 가족과 이데올로기, 나이듦과 가족들의 부양문제, 독일에 대한 자신들의 마음과 외국인을 대하는 독일인의 태도와 정의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늘어놓은 책이 되겠다.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라는 제법 진지한 부제가 붙어 있긴 하지만, 그들의 말이 고루하게 들리지 않는건 그것이 그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지루하거나, 재미 없거나 ,영양가 없거나, 공감이 되지 않거나 , 전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려나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공감이 되서 놀랐다. 그건 아마도 인간이 사는 사회는 어디나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독일 전후의 사정이 우리나라와 얼추 비슷해서일 수도 있으며, 사람의 인식 정도가 경험에 따라 넓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건 간에, 우리나라 실정에 대입해서 읽어도 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특히나 독일인으로써 자기 나라의 정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부끄러워 하는 모습은 어찌나 우리랑 똑같던지... 참 나, 그렇게 독일 정치가들이 불만이시면, 우리나라에 와서 한번 살아보시죠. 라고 말 하려다 그만 두었다. 아마도 자국 정치인들에 대한 불평 불만을 토로하는건 모든 국민들의 피할 길 없는 취미생활 (national hobby) 아닐까 싶어서. 하여간, 깍쟁이 같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정서가 이토록이나 닮았다니, 흐믓했다. 결국 어디에서 살건 간에, 현실의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는가 보다. 대단하게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비극적이거나, 되돌릴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진 않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낼 뿐이니 말이다.  그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생각하면서, 현실과 타협해 과는 과정들이 우리네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적당히 게으른건 용서해도, 적당히 친절한건 용서 못하면서 말이다.

 

하여간 어느순간에도 솔직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남이 어떻게 볼까 두려워 자신들을 포장하지 않으며, 어깨에 힘 빼고 수다를 떤다는 것이 흔한 것도 쉬운 것도 아니니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는 점이 아마도 이 책이 독일에서 공전의 히트를 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한다. 더불어 연륜이 빚어낸 적절한 균형 감각과 타고난 유머감각은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었으니, 중년 두 사내의 전 생을 관통하는 울림있는 수다를 듣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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