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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이트 - 성지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비밀 의식
매트 바글리오 지음, 유영희.김양미 옮김 / 북돋움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엑소시즘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라고 하기에 보게 된 책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했던 단어는 엑소시즘이 아니라 "인문학적"이었다는걸 알아주셨음 한다. 평소 엑소시즘이 전혀 관심 사항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멘을 제외한 다른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들은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 미국 드라마 <슈퍼 내추럴>, 형제로 나오는 훈남 배우들 보는 맛에라도 보려 꾸준히 노력했으나 결국 지치고 말았다. 똑같이 반복되는 퇴마 의식이 금방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 책을 보게 됐냐고? 사람들이 미신으로 여기는 주술의식을 '인문학적으로' 설명한다는 말에 솔깃해진 것이다. 그래? 그럼 어디 나를 설득해 보시지...이런 심정이었다. 만약 내가 설득된다면 , 그건 이 작가가 글을 잘 쓴 것이고, 그의 엑소시즘에 대한 통찰을 인정했다는 뜻인데, 관심없는 분야라고 해도 그런 책들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거란 판단한 것이다. 우선은 남들이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한물간 의식을 새롭게 조명해서 그 의미를 짚어 보자는 취지에 반쯤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반쯤은 기대가 됐다. 그가 만일 그 포부에 걸맞은 책을 썼다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존재에 대해 조금은 뭔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나 혼자 김치국물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더라. 작가는 내 생각과 같은 취지에서 글을 쓴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종종 쓸데없이 상상력 풍부한 내가 그만 '인문학적'이라는 말에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그런 내용이겠거니 짐작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첫 장을 펼쳐 읽는데, 음...실수했군이이라는 말이 뇌리를 팍 하고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게 넘겨짚지 말랬지! 라면서 그저 내 탓을 할 수 밖엔 없었다.
내용은 액소시즘을 전혀 믿지 않았던 미국의 게리 신부가 그 의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된다. 젊은 시절 장의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왠만한 구역질 나는 것들에는 면역이 생겼다고 자부하던 그는 액소시즘을 행하는 신부가(이하 액소시스트) 별로 없다는 말에 흥미를 갖게 된다. 자신이 신을 믿기는 하지만 정말 악마가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악마의 인간의 몸에 현존해 나타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그는 궁금해 한다. 단순히 미신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내진 말도 안 되는 눈속임일지도 모르는거 아닌가. 그는 직접 그 사실을 확인하기로 한다. 결국 액소시즘의 본산인 이탈리아로 가게 된 그는 액소시즘의 대가라는 신부들에게서 사사를 받기 시작한다. 제자를 키우기엔--더군다나 이탈리어를 잘 못하는 미국 제자를--너무 바빠 제자 양성엔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신부들도 게리의 열성에 힘입어 조금씩 그에게 실체를 보여준다. 실제 액소시즘을 목격하게된 게리는 그것이 터무니 없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너무도 리얼한 것이었고, 그것을 없다고 하기엔 귀신들린 사람들--악마가 영혼을 장악한 사람--의 고통이 컸다. 이성적이여야 할 신부들이 미친사람들과 똑같이 날뛴다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액소시스트들이 일을 놓을 수 없었던 것도 그때문이었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연민 말이다. 게다가 한번의 액소시즘으로 극적인 치유가 가능한줄 알고 있었던 게리는 완전히 악마를 몰아내기 까지 몇 일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사실에 끔찍해 한다. 한마디로 귀신 들렸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이었지만, 그를 몰아내기 위해 액소시즘을 행해야 하는 액소시스트들에게도 대단히 지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힘든 과정들을 지켜 보면서 게리는 비로서 액소시스트들이 대단한 휴머니스트라는걸 깨닫게 된다.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과정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것을 확신한 게리는 이제 자신이 액소시스트가 될 준비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전 인생이 액소시스트가 되기 위한 전초작업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는 그 역에 적당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액소시스트가 된 게리가 저자에게 그 과정을 털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오케이. 악마나 귀신 들린 사람이나, 그들을 치유해주기 위해 의식을 벌이는 액소시스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치자. 실제로 있어 보였고, 있다고 해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그 액소시스트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 실수를 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제 정신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말까지 해주면 그들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미심쩍어지는 것이다. 액소시스트중 한 분이신 아모스 신부의 말이다.
"해리포터의 이면에는 어둠의 제왕, 악마의 서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또 해리 포터의 책에서 '백마술'과 흑마술'을 구분하는 것을 비난하며' 마술은 언제나 악마에게로 통하기 때문에 그런 구분은 무의미합니다."라고 지적했다....그는 해리포터에 대한 비난에 이어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 모두 악마에게 점령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이 되면 더 이상은 책을 읽는게 무의미해진다. 그렇지 않는가? 그들이 인간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고마운데, 그리고 그들 덕에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실제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닌데...저런 말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굳이 악마를 들먹일 필요는 없으며, 아니 악마를 들먹이면 곤란하며--책임 소재를 악마에게 돌려 버리는 것이니까.--아이들 읽으라고 쓴 동화책에 무슨 대단한 음모가 있다고 떠든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본인들을 현실 감각 없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아예 전국방송에 대고 자인을 하는꼴 밖에 더 되나? 만일 액소시스트들이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라면 과연 누가 그들의 말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겠는가? 아무리 그들이 하는 일이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신빙성을 본인이 깍아 먹으면서도, 열심이 자신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그런 책이 되겠다. 그렇다면 글은 잘 썼냐고? 횡설수설한다. 자신도 어떻게 써야 집중력 있는지 감을 못 잡은 모양처럼 보였다. 그렇다보니 게리 신부 본인이 액소스트가 되는 과정만을 그린 책으로도 미흡하고, 액소시즘은 '인문학적'으로 설명한 책으로도 한참 미흡한, 한마디로 그렇게 잘 쓴 책은 못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니 놀랄 노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마의 저주를 받을까봐 무서워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무섭긴 무서웠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소장하고 싶을만큼 깜찍한 내용이라곤 할 수 없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