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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도미니카를 32년간 다스린 독재자 트루히요의 암살 과정을 재 구성한 소설이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인데, 여지껏 읽은 그의 책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지 싶다. 탄탄한 구성에 역사적 인물에 대한 통찰력 있는 파악,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서 이보다 더 극적일 순 없겠다 싶게 소설로 탈바꿈한 문학적 상상력, 흥미진진한 전개에다 숨 막히는 암살 과정과 그 암살범들의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역시 노벨문학상은 아무나 타는게 아니라는걸 증명하고 있었다. 완벽한 필력이다.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이렇게 탁월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쉬운게 아닐텐데도, 전혀 어려워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설렁설렁 쉽게 끄적여 내려간 듯 자연스러운 필체가 역사소설은 읽기 힘들다는 선입견마저 깨주고 있었다..
내용은 도미니카를 독재하면서 갖은 악행을 일삼고 있던 트루히요와 그의 총애를 잃어버린 뒤 자구책으로 딸을 트루히요에게 바치는 장관, 그의 딸로 열 네살의 나이로 칠순의 트루히요에게 바쳐져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라니아, 독재자를 암살하기 위한 암살단의 처절한 노력과 그들의 마지막 순간들을 짜임새 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만의 시각에서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는데, 마치 잘 만든 영화를 보는 듯했다. 암살의 그 떨리는 순간들을 박진감있게 그려낸 것이나 루히요를 조명함으로써 독재자와 그 가족들이 부패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왜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터무니 없는 독재에 순응하게 되는 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점이 압권. 아마 이 한권의 책을 읽고 나면 세상 모든 독재들의 메카니즘을 한 눈에 파악하실 수 있을 것이다. 알고보면 트루히요가 그렇게 독특한 독재자는 아니니 말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도 그저 그런 독재자들중 한명일 뿐이니까. 제목에서 말하는 <염소>는 트루히요를 <축제>는 그를 잡는 암살의 날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제목 한번 잘 지었지 싶다.
트루히요를 그린 다른 소설로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확실히 이 책은 어른의 책이다. 품격 넘치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균형잡혔으며, 통찰력 흘러 넘쳐 주시고, 문체 단단한데다, 부조리를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고통과 아픔 역시 잘 다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선정적인 흥미를 끌기 위해 트루히요의 변태적 색정광을 그린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차분히 설명하려 한 점에서 작가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적어도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트루히요와 동급은 아니라는 믿음 말이다. 독재자의 역사를 아시고 싶으신 분들에게 강추. 문학적인 면만 따진다고 해도 빠질게 없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