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 - Certified Cop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기막힌 복제품 : 원본은 잊고 질좋은 짝퉁을 사라>의 저자인 제임스 밀러의 강연회에 범상치 않은 모자가 등장한다. 열심히 제임스의 말을 경청하던 엄마는(줄리엣 비노쉬 역) 배가 고프다는 아들 성화에 밀려 강연 도중 밖으로 나오고 만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제임스를 가게에 초대한 줄리엣은 진짜로 그가 나타나자 기뻐한다. 줄리엣은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싱글 마더로 특별히 복제품 애호가는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제임스는 복사품도 진품 못지 않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신의 책에 열광하는 줄리엣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는 제임스의 말에 줄리엣은 차 키를 들고 나온다. 그렇게 해서 지적이고 핸섬한 작가와 그의 열성팬 줄리엣은 예정에 없던 드라이브를 하게 된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둘은 서서히 상대방에 대해 알아간다. 제임스는 자신의 의견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그녀가 실은 깐깐하다는 것을 알고는 흥미와 동시에 피로를 느낀다. 


 시골 박물관에 도착한 그녀는 그에게 이탈리아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그림을 소개한다. 그 그림은 18세기에 그려진 복제품임에도 최근까지 르네상스 시대 그림인줄 알려져 있었다. 복제품도 원본만큼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당신의 논리에 적합한 그림이 아니냐는 줄리엣의 말에 제임스는 시큰둥해 한다. 그런 예를 워낙 널려 있어 새로울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살짝 삐진 줄리엣은 제임스가 전화로 아들과 실랑이를 하는 그녀를 예민하다고 충고까지 하자 얼굴이 굳어진다. 분위기를 바꿔 보려 까페에 들어간 둘은 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제임스는 비로서 왜 그녀가 자신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알게 된다. 둘이 대화하는걸 지켜본 까페 주인은 그녀에게 남편을 잘 골랐다면서 칭찬 한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한술 더 떠 제임스가 그다지 좋은 남편이 아니라고 일러 바친다. 이에 나쁜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 단언하는 까페 주인, 그녀는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떡인다. 까페 주인장의 오해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던 줄리엣은 제임스를 진짜 남편처럼 대한다. 갑작스럽게 급진전된 역활 놀이에 어리둥절해 하던 제임스는 곧 사태를 깨닫고는 그녀의 행동에 맞장구를 치게 된다. 장난으로 시작된 둘의 역활 놀이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엉뚱해져 가더니, 줄리엣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 둘의 결혼 기념일이며 15년 산 행복한 커플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줄리엣의 오지랖에 한층 피곤해진 제임스는 태클을 걸게 되고, 결과는 둘이 진짜 부부처럼 다투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신이 난 줄리엣의 신경을 거스르지도 않으면서 사태를 바로 잡으려 애쓰던 제임스는 어느덧 자신이 아내의 바가지에 골머리를 앓는 중년 남편처럼 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던 제임스에게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냐고 투정을 부리는 줄리엣, 제임스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가 그런 것처럼 삐진 아내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장난처럼 시작된 역활 놀이가 결국 진짜로 이들이 부부인가 헷갈릴 정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영화였다. 멋진 두 배우의 앙상블만으로 100여분을 지루하지 않게 끌어간 내공이 돋보이던데, 단지 두 배우의 대화 만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는데도 집중력 흐트러짐 없이 몰두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잘 된 책과 마찬가지로, 잘된 영화는 그 자체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알게 해준 영화가 되겠다.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시나리오에, 서 있는 그 자체로 화보인 중후한 매력의 배우들, 연기란 생각이 들지 않던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연기가 관점 포인트다. 게다가 분명히 하루만에 찍은 영화가 아닐텐데데, 이음새가 보이지 않던 매끄러운 연결은 진짜 하루동안 둘을 쫓아다니면서 즉흥적으로 찍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연출도 없이 배우들의 임기응변만으로 말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설득력이 대단하지 싶다. 얄미울 만큼 깔끔한 연출이나 로맨스 소설을 보는 듯 깜직한 대본, 그리고 제 몸에 맞는 배역을 맡은 듯 쉽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힘이 영화를 한층 더 빛내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원본과 복사품을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우린 진품을 중요시하고 복사품을 천시하지만, 과연 이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낼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싶다. 과연 원본이란 증명이 있으면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 되고, 부부라는 증명서가 있어야 실체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일까? 삶이 그렇게 간단하다면야 편하긴 하겠지만서도, 진실이나 실체란 그렇게 손에 확 잡히는 것은 아니질 않는가.

이 영화속에서도 제임스와 그녀는 원본이 아니다. 쉽게 말해 진짜 부부가 아니다. 그러나 까페 주인장의 오해로 촉발된 둘 사이는 순식간에 진짜 15년을 산 부부처럼 발전하고 만다. 투닥투닥 다투고, 서운해 하고, 이해시키려 애를 쓰고,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토라지고, 다가가고....그런 둘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진짜 부부처럼 대하게 된다. 신혼 부부는 경외의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고, 지나가던 한 남편은 제임스에게 말보다 애정어린 행동을 보여줄 것을 조언한다. 둘의 치고 받음이 어찌나 리얼한지 모든 과정을 쭉 지켜 보고 있던 관객들조차 헷갈릴 정도다. 이것 봐라? 둘이 원래 부부였던가? 아니었던가? 그런 물음 뒤엔 어쩜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게 했다. 원본이 아니면 어떻겠는가. 지금 그들의 대화 속에선 자신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며, 무리한 곤조도 부리고, 상대의 사랑을 확인해 보면서, 일상에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 내에서의 실체가 아닐까 한다. 원본이라는 증명서 한 장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아내는 내용이란 뜻이다. 비유를 해보면, 현재 이지아와 서태지의 결혼이 논란 거리인데, 과연 둘이 결혼했다는 증명서 한 장으로 둘의 관계를 정의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느 순간 둘의 관계가 빈 강정이 되어 부부의 실체라고 할만한 것들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했을 시, 과연 둘의 관계를 원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건 당사자만이 알 수 있고 판정 내릴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일 것이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부부라는 겉모양새가 아니라, 그 안에 채워 넣어야 할 실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라면 친구답게, 아내라면 아내답게, 남편이라면 남편 답게, 부모라면 부모 답게... 그 역활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복제품보다 못한 원본 신세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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