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앤 차일드 - Mother and Chil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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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나인 라이브즈>를 통해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찰력있게 풀어낸 바 있는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새 영화다. 이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늘 여자도 아니면서 여성들의 속내를 어쩜 저리도 잘 알까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아버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란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언젠가 마르께스가 영화 감독인 아들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길래 무심코 흘려 들었는데, 그 아드님이 설마 이분일줄이야. 그러고보니, 아버지나 아들이나 뚜렷한 개성에 선명한 통찰력, 그리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이야기꾼으로써의 자질이 뚜렷한 게 비슷하긴 했다. 하지만 설사 그런 공통점이 있다해도 두 분이 부자지간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하여간 2대에 걸쳐 이렇게 걸출한 문학인을 배출해 내다니, 아무리 봐도 마르께스 가문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지 싶다.

 

영화의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14살때 남자친구의 아이를 밴 카렌은 어쩔 수 없어 아이를 입양보내고 만다. 그 후 37년간 카렌은 날마다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아이에게 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뒤벅범이 된 카렌의 삶은 그렇게 지향하는 바 없이 정처없이 흐를 뿐이다. 그런 카렌을 지켜보는 카렌의 엄마는 본인이 딸의 인생을 망쳤다고 후회를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는가. 그저 회한만 움켜쥔 채 그녀에 대한 미안함을 감춘다.  딸에 대한 모정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밀쳐 내기만 하던 카렌은 자신을 바라보는 직장 동료의 시선에 당황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비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카렌은 어렵사리 타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직장 동료와 결혼한 그녀는 너무 늦기 전에 딸을 찾아 보라는 남편의 말에 용기를 내 본다.

 

37년전 14살 생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그 이후 독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 그리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독립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그녀의 직업은 변호사, 여기 저기 떠돌면서도 엄마의 고향인 LA로 돌아오는 그녀는 새로 옮긴 로펌의 상사 폴과 관계를 맺게 된다. 친절한 이웃 여자를 조롱하듯 그녀의 남편과도 바람을 피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폴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부담스럽다. 자신이 임신 했다는 걸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녀가 당연히 낙태할거라 짐작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격렬하게 화를 낸다. 그리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뱃속 태아의 태동을 느끼면서 엄마를 향한 분노가 사그라듦을 느끼던 엘리자베스는 홀로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으로 가면서 엄마가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산모가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엘리자베스는 자연분만을 고집하는데...

 

결혼 후 4년간 임신을 하기 위해 애를 썼던 루시는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입양을 신청한 그녀는 요즘은 산모가 입양 부모들을 심사하고 심지어는 퇴짜를 놓는다는 말에 어이없어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해도 칼자루를 쥔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것임을 어필한 루시는 까다로운 여대생의 마음을 움직인다. 20살의 여대생이었던 임산부는 자신은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키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드디어 자신의 아이를 가진다는 생각에 한없이 들뜬 루시, 그녀를 바라보는 루시의 엄마는 걱정스럽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있는 그녀는 아이를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의 걱정을 루시는 노파심이라면서 일축해 버리는데...

 

아이를 키울 수 없던 여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아이로 인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여자,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고민인 여자 ,이렇게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진 세 여인의 이야기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보여주던 영화였다. 그들이 결국 아이라는 공통점으로 한 지점에서 모여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모정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이 고통받고 ,행복해 하고, 고민하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들이 공감이 갔다. 특히 아이를 입양 보낸 뒤 회환의 삶을 살고 있는 카렌을 연기한 아네트 베닝은 주름살을 감추지 않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장끼 없는 수수한 얼굴로 자신의 연약한 내면과 고통을 까탈스런  겉모습으로 무장한 중년 여인 역을 감탄스러울만큼 자연스럽게 해내시더라. 카렌이 그렇게 그리워한 딸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파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엘리지베스 역의 나오미 왓츠 역시 버림받은 자식만이 가질 수 있는 자괴감을 잘 그려내고 있었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면서 세상 모든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살던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모성에 눈떠가는 모습이 눈물겨웠었다. 본래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지 않고 알게 된다면 좋았을텐데 싶어서 말이다. 하여간 임신을 한 뒤 자신을 버린 엄마의 심정이 어땠겠구나, 추측을 하면서 비로서 엄마를 찾을 생각을 하던 그녀가 무척이나 안스러워 보였다.

 

이에 비해 이들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또 한명의 여인 루스는 진심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 여인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그녀를 보면서 낳지 않은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생각해 보게 했다. 왜 아무도 입양이 이렇게 비인적이라고 내게 말해주지 않은 거야? 누군가 나를 말렸어야지 않아?라고 불평하던 루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비인간적인 과정을 인간적으로 만드는게 또 사람의 능력 아니겠는가. 결국 자신이 겪는 모든 과정이 생부모들도 겪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루스가 엄마로 성장하는 모습은 공감가는 설정이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건 이해를 통해 알게 되건간에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느정도는 배움의 과정이니 말이다.

 

당신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엄마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쉽게 대답이 나올 것 같지만 개개인의 역사에 따라서 전혀 다른 답도 가능하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카렌의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질문을 해봤다. 그녀는 자신의 딸(카렌)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딸의 자식을 버려 버렸다. 그런 결정을 할때 그녀는 어린 딸이 자식을 그리워하면서 남은 평생을 살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돌려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니었겠는가. 그 딸에게도 모성은 있을테니 말이다. 과연 내 딸이라고 해서 그녀의 모성애를 빼앗을 자격이 부모에게 있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다.그렇다보니,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애닳아 하던 카렌이 자신이 딸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읊조리는데 마음이 아팠다.기껏해야 한세상 사는 건데, 아이 곁에 있어 주는 것조차 못한 엄마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그리고 필요할때 곁에 있어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딸의 원망은 또 어떻고...

 

" 함께 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전해지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함께 하지 못한 사랑 역시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웠다. 그것이 탁월한 이야기꾼인 감독의 낭만에 가득찬 설득력에 굴복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이 영화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니 믿고 싶어졌다. 부재한 사랑이라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그리고 그것이 진심이라면 언젠가는 상대에게 닿아 있을 것이라고,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랑은 언젠간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특히나 모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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