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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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발생한 동경 지하철 사린 살포사건을 르뽀 형식으로 재조명한 작품. 가해자의 시선이 아니라, 피해자의 육성을 듣고 정리한 것이다. 하루키 자신의 일본에 대한 사랑을 짐작하게 할 수 있던 프로젝트였는데, 가해자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피해자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시도한 것은 박수를 받을만지 싶다. 자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시도 못했을 프로젝트지만, 또 그 덕분에 지루함 감이 있는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루키가 사린 피해자 르뽀를 쓴다고 했을때 다들 망서리며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상처는 큰 반면에 그들의 상처를 제대로 짚어주는 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자신은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고, 당신들의 피해를 기록으로 남겨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겠노라는 점이라는 걸 누누히 설명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다짐은 이 책을 다 쓰기전까지 이어진 듯해서, 꼼꼼하게 쓰고 조심스럽게 피해자들을 다룬다는 인상이 짙었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여나 상처를 더할까 조바심 내는 모습에서 그의 성실한 인간성을 보는 듯해서 좋았다.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일본인들 특유의 정서가 그에게도 비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사린 사건이 왜 그렇게 일본인들을 흔들어 놓았느냐고? 뭐, 많은 이론들이 있을 것이고, 어떤 이론을 갖다 댄다고 해도 완벽한 설명은 되지 못할거라 본다. 한가지 문제만으로 해결될만한 사건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루키 자신도 자신만의 견해로 조심스럽게 진단을 하고 있는데, 어느정도는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쪽으로 심도있게 파고 나갔다면 훨씬 더 재밋었으련만, 그는 후기에서 몇 장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어한 것은 가해자들이 왜 그랬냐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인생이 그날 그 시간 이후 어떻게 변했는가라는 점에 있었으니 말이다. 

성실함도 좋다.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지킨 것도 좋다. 자국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것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이 지루하다는 점이다. 왜냐고? 사린이란 독극물에 노출되었을 시 증상이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야가 좁아지고, 어두워지며, 기침이 나오고, 숨 쉬기가 어려워지면, 어지럽고,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마비가 오고, 그 정도를 넘어서면 죽음에 이르는... 과정들이 다 비슷했던 것이다. 정도 차이고,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만정 대다수의 피해자들의 경험들은 대동소이했다. 그렇다보니, 40여명의 피해자의 비슷비슷해보이는 피해일지는 읽는데, 도무지 작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반복되는 말들을 늘어놓아서 어쩌자는 것인지 의아해졌다.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았을텐데 말이다. 같은 책 안에서의 반복은 죽음인데, 40개의 반복이라니...용기를 내서 귀찮은데도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적어 놓은 듯 보이던데, 프로 작가라는 입장에서는 그게 옳은 것이었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피해자에게 촛점을 맞추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의 증상이 비슷하다는 것, 한명의 이야기만 들으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략 유추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은 모든 것을 성실하게 담겠다고 인테부어들과 약속을 했다지만서도, 하루키는 미처 이것은 모르지 않았을까? 개개의 증언이 결국은 하나의 증언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은 반복되는 증언을 청취하다보면 원래의 취지는 생각나지 않고, 단지 지루함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 되고자 했다면 반복되는 이야기를 줄이거나 다르게 편집했어야 했다. 하루키가 그러지 못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 너무 큰 탓이 아니었을까? 결국 이 책은 하루키와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한 개인 문집이 되버린게 아닐까 싶었다. 뭐, 일본 내에서는 기록 문학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그건 됐고, 일본인이 아닌 우리로써는 그다지 읽어봐야 할만한 책은 못되지 않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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